3화
‹ ›윤태호 상무를 처음 본 건, 회사 창립기념 행사에서였다.
서윤이 나를 데려간 자리였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을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자리에 어울릴 리 없다는 걸,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원했다.
"현우 씨도 이제 내 사람들 알아야죠."
그 말이 왠지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불편했다. 내 사람들, 이라는 말 속에 내가 포함될 자격이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준비하는 내내 손이 떨렸다. 정장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다. 서윤이 골라준 옷이었는데도,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어색했다.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사람처럼.
연회장은 화려했다.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반짝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명품을 두른 채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마저 값비싸게 들렸다. 나는 그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헐렁한 정장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스칠 때마다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서윤은 그런 나와 정반대였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그때마다 완벽한 미소로 답했다. 회장님, 회장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그녀의 옆에 붙어 있는 부속품 같았다.
"괜찮아요?"
서윤이 낮게 물었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네,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
"회장님."
누군가 서윤에게 다가왔다. 키가 크고 말끔한 남자였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슈트가 몸에 딱 맞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번 분기 실적, 제가 직접 정리해서 보고드렸는데 확인하셨습니까."
"확인했어요. 수고했어요, 윤 상무."
서윤이 그를 향해 웃었다. 나에게 보여준 것과 똑같은, 완벽한 미소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저 미소가 나만을 위한 게 아니었구나. 당연한 사실인데도, 왜 그게 그렇게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서윤을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존경 이상의,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건 부하 직원이 상사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소개해 드릴게요. 제 남편이에요."
서윤이 나를 소개했다. 남자, 윤태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경멸을 읽었다. 마치 저런 사람이 왜 회장님 옆에, 하고 묻는 듯한 눈빛.
"아, 반갑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예의 발랐지만, 온기가 없었다. 손을 내밀길래 나도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차갑고 딱딱했다.
"회장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그냥, 우연히요."
"우연이라. 재밌네요."
그가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비웃음이 숨어 있었다. 말투는 부드러웠는데, 그 속에 담긴 건 조롱이었다.
"우연이라는 게, 참 편리한 단어죠. 설명하기 귀찮을 때 쓰기 좋고."
"윤 상무."
서윤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농담입니다, 회장님. 제가 실없는 소리를 했네요."
그가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훑고 있었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서윤이 그의 팔을 살짝 잡았다. "윤 상무, 그만해요."
그 손짓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손끝이 그의 팔에 닿는 순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이유 모를 불편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물었다.
"윤 상무님이랑... 친하세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묻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꺼낸 사람처럼.
"일 때문에 자주 봐요.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서윤이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연회장에서는 따뜻했던 손이, 지금은 다시 차가워져 있었다.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 안이 갑갑했다.
"귀엽네요."
그녀는 웃으며 창밖을 봤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차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흘러갔다. 나는 그 불빛을 보는 척하며, 사실은 서윤의 옆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완벽하게 정리된, 흔들림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대답을 피했다는 걸 알았다. 질문한 것에 답하지 않고, 다른 말로 넘어갔다는 걸. 그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며칠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서윤은 여전히 바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는 이미 출근한 뒤였고, 밤에 잠들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넓은 집 안에서 나는 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텔레비전을 봤다.
그런데 그 바쁨의 이유 중 하나가, 윤태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히 그녀의 일정표를 봤다. 서윤이 샤워하는 사이, 식탁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이 켜져 있었다.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시야에 들어왔을 뿐이다.
[19:00 윤태호 상무 - 개인 미팅]
회사 일이라기엔, '개인'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회사 미팅이면 그냥 '회의'라고 쓰면 될 텐데. 굳이 '개인'이라는 두 글자를 붙인 이유가 뭘까.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봤다. 글자가 지워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그날 저녁,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늦게 들어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뭘 하지도 못한 채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다.
향수 냄새가 평소와 달랐다. 남성용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그녀가 쓰는 향수와는 다른, 낯선 냄새였다.
"오늘 회의 많았어요?"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네, 좀 길었어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었다.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구두를 벗어 정리하는 손짓이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목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숨이 가빠졌다. 재킷 주머니를 뒤져 흡입기를 찾았다.
칙- 칙-
두 번 흡입했다. 조금씩 숨이 돌아왔다. 손끝이 여전히 차가웠다.
서윤이 놀란 듯 다가왔다.
"괜찮아요? 왜 그래요?"
"괜찮아요. 그냥 좀... 답답해서요."
거짓말이었다. 답답한 게 아니라, 무서웠다.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몸을 통째로 조여왔다.
그녀가 나를 안았다. 등을 쓸어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그 다정함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한 습관인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
"괜찮아요, 정말로."
나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익숙한 냄새와 낯선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어깨너머로 침실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새 넥타이가 보였다. 내 것이 아니었다. 훨씬 큰 사이즈였다. 색깔도, 무늬도, 내가 가진 어떤 넥타이와도 달랐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건, 누구 거지.
서윤의 품에 안긴 채로, 나는 그 넥타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