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90cm 아내는 살인자

2화

신혼집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였다. 거실 통유리 너머로 강물이 반짝였다. 낮에는 은빛으로, 밤에는 도시의 불빛을 받아 붉은빛과 금빛이 뒤섞인 색으로 흘렀다. 나는 종종 그 강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곤 했다. 넓은 거실, 값비싼 그림들, 매일 새로 채워지는 꽃병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거실 한쪽 벽에는 이름 모를 화가의 추상화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 놓인 대리석 테이블 위에는 늘 새로운 꽃이 꽂혀 있었다. 월요일에는 백합, 목요일에는 장미. 누가 그 꽃을 사 오는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꽃병이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공간은 늘 추웠다. 난방을 아무리 세게 틀어도, 발끝이 시렸다. 두꺼운 러그 위에 앉아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서윤은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나는 하루 종일 혼자였다. 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창밖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채웠다. 가끔은 요리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넓은 주방에 혼자 서 있으면, 도마 위에서 칼이 부딪히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탁, 탁, 탁. 그 소리가 적막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식탁에는 늘 한 사람 분의 그릇만 놓였다. "오늘도 늦어요?" 전화를 걸면,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러웠다. "미안해요, 현우 씨. 회의가 길어졌어요." "괜찮아요..." "저녁은 챙겨 먹었어요?" "네. 대충..." "대충 말고 제대로 먹어야죠. 냉장고에 반찬 넣어뒀는데."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부재를 사과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챙기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다정함이 진짜인지, 아니면 어떤 습관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회장이었고, 나는 그저 그녀의 남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 전화를 끊고 나면,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꺼졌다. 그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녀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서윤은 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손수 밥을 차려주고, 내 흡입기를 챙겨주고, 내가 불안 발작을 일으키면 몇 시간이고 옆에 앉아 등을 쓸어줬다. 지난주에는 새벽 세 시에 발작이 왔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헐떡이고 있었다. 서윤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내 등을 쓸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어줬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로 숨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확신했다. 이 여자 말고는 아무도 나를 이렇게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현우 씨는 아무 데도 안 갈 거죠?" 그녀가 물을 때마다, 나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확인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당연하죠, 어디를 가겠어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그녀의 미소는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 뒤에,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걸, 나는 느끼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내 손목을 잡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힘을 세게 주곤 했다. 그게 애정 표현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결혼 두 달째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회사에 방문했다. 한성그룹 본사 최상층.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도시가 점점 작아졌다. 문이 열리자, 대리석 바닥에 내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또각. 또각. 회장실 앞에 서자, 비서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 "회장님 배우자분... 이시죠?" "네, 맞아요." 비서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 뭔가 감춰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놀람인지, 동정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들어가세요." 회장실 문을 열자, 서윤이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 건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집에서 듣던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들어가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짧게 끊듯이 말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탁. 전화를 끊은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바꿨다. 다시 부드러운 얼굴로. 그 전환이 너무 빨라서,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표정 하나가 바뀌었다. "현우 씨, 여기까지 웬일이에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 그녀가 웃으며 다가와 나를 안았다.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좋은 향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결재 서류 사이로, 낯선 이름이 적힌 봉투가 보였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점심은 먹었어요?" "아직요. 현우 씨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죠." 그녀는 나를 데리고 회장실 옆 작은 응접실로 이동했다. 이미 준비된 것처럼, 테이블 위에는 정갈한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밥을 먹는 내내, 그녀는 내 접시에 반찬을 올려주며 다정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방금 전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방금 그 목소리는 뭐였을까. *** 그날 밤, 나는 잠든 척을 하며 그녀의 휴대폰을 훔쳐봤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이 켜지자 방 안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서윤은 옆에서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인데.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잠금 패턴은 알고 있었다. 우리 결혼기념일. 그녀가 직접 알려준 숫자였다. 메시지함을 열었다. 대부분 업무 관련 연락이었다. 임원진과의 회의 일정, 계약서 검토 요청, 비서실에서 온 짧은 보고들. 평범했다. 그런데 하나, 낯선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윤태호 상무] 최근 대화가 세 시간 전이었다.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십니까.] [다음에요.] 그게 전부였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스크롤을 더 올려봤다. 대화는 몇 주 전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짧았다. 사무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짧음이 더 신경 쓰였다. [그 일은 처리됐습니까.] [네, 걱정 마세요.] [다행입니다.] 무슨 일을 처리했다는 걸까. 회사 일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왜 저녁 시간을 물어보지. 왜 이렇게 짧게 답하지. 나는 액정 불빛 속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완벽했다. 흠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보던 날카로운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무방비한 얼굴. 그런데 그 완벽함이, 처음으로 무섭게 느껴졌다. 이 여자는 대체 나에게 뭘 숨기고 있는 걸까. 나는 통화 기록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망설였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궁금증이 두려움을 이겼다. 통화 목록을 눌렀다. 윤태호. 그 이름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떠 있었다. 통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짧으면 1분, 길어야 3분. 하지만 그 짧은 통화가,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을 내려놓는데, 손끝이 화면을 스치며 진동이 울렸다. 부르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서윤이 눈을 떴다. "뭐 해요, 현우 씨?" 낮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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