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천민, 신선이 되기로 했다

4화

### 4화 '꿀꺽, 꿀꺽' 신선주가 목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불덩이를 통째로 삼킨 것처럼 명치께가 뜨거워지더니, 그 열기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순간, 태영의 몸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으윽...!" 뜨거운 기운이 온몸의 혈맥을 타고 돌기 시작했다. 마치 불덩이가 뼈마디마디를 태우는 듯한 고통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쳤고, 관자놀이에서는 핏줄이 툭툭 불거져 올랐다. "크윽... 크아악...!" 태영이 땅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쳤다. 손톱이 흙을 파고들었고, 등줄기가 활처럼 휘어졌다. "태영아!" 오씨 부인이 놀라 달려나오려 했지만, 박노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 "부인, 참으시오." "저, 저러다 우리 아이 잘못되는 거 아닙니까!" 오씨 부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걱정 마시오. 이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오. 지켜만 보시오." 박노인의 목소리는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낡은 몸이 죽고 새 몸이 태어나는 것이니,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아프다고 배를 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외다." 그 말에 오씨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손을 모아쥐고 태영의 이름만 되뇔 뿐이었다. 한 시진에 걸쳐, 태영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었고,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색을 달리했다. 때로는 몸이 새우처럼 굽었다가, 때로는 활처럼 뒤로 젖혀지기도 했다. "크아아악...!" 한 번씩 터지는 비명에 오씨 부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때마다 박노인이 나직이 고개를 저었다. "고비를 넘고 있는 것이오. 조금만 더 참으시오." 그러나 새벽 무렵이 되자 발작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태영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했고, 몸부림도 잦아들었다. 태영이 눈을 떴을 때, 몸이 놀랍도록 가벼웠다. "...이게 무슨..."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절로 힘이 넘쳤다. 어제까지 몽둥이 몇 대에 나가떨어지던 몸이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겨웠던 몸이, 지금은 마치 깃털을 두른 것처럼 가벼웠다. 태영은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뻗어보았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낯설었다. 주먹을 쥐어보니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어떠냐?" 박노인이 웃으며 물었다. "몸이... 다릅니다. 뭔가 가득 찬 느낌입니다." 태영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마치... 텅 비어 있던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기(眞氣)라는 것이다." 박노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기하는 법을 가르쳐 주마. 이 늙은이가 며칠은 이 마을에 머물 것이다." 박노인은 그렇게 태영의 곁에 남기로 했다. 오씨 부인도 이 신비로운 노인에게 아들을 맡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밤새 마음을 졸였던 그녀였지만, 아침이 밝고 아들이 멀쩡히 눈을 뜨고 웃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정말 고맙습니다." 오씨 부인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 인연이 닿아 이리 된 것이니, 부인은 그저 아이를 잘 돌봐주시기만 하면 되오." 그로부터 며칠, 태영은 새벽마다 박노인이 일러준 대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골랐다. 처음에는 숨 쉬는 것조차 서툴렀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도는 것이 뚜렷이 느껴졌다. "들이쉴 때는 배꼽 아래로, 내쉴 때는 손끝 발끝까지." 박노인의 가르침은 짧았지만 명확했다. "급하게 하려 들지 마라. 진기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억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류하는 법이다." 태영은 그 말을 새겨들으며 매일 아침저녁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 며칠은 다리가 저리고 등이 아팠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이 그 자세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귀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태영아!" 오순돌(吳順乭)이었다. 마을에서 '무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몸이 약하고 어수룩한 소년이었다. 태영과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순돌아, 여기서 뭐 하냐." "너, 너 소문이 대단하더라! 촌장 아들놈 다섯을 혼자 다 팼다며!" 순돌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밤에 장정들도 다 쫓겨났다며? 진짜야? 어떤 노인이 도왔다던데." "...대충 그렇게 됐다." 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우와, 나도 그런 힘 있으면 좋겠다. 맨날 애들한테 얻어맞기만 하는데." 순돌이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어깨가 유난히 작고 좁아 보였다. 순돌은 태영보다도 더 밑바닥이었다. 몸이 허약해 밭일도 제대로 못했고, 그 탓에 마을 아이들에게 늘 놀림을 받았다. 걸음걸이마저 어딘가 어설퍼서, 아이들은 순돌이 지나갈 때마다 그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곤 했다. 태영은 어릴 적부터 그런 순돌을 여러 번 감싸주었다. "뭐 하고 있냐, 아침부터." "약초 캐러 가는 길이야. 우리 아버지 다리가 요즘 부쩍 안 좋으셔서." 순돌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밤마다 앓는 소리를 내시거든. 의원 부를 돈은 없고, 그나마 산에서 캐는 약초라도 달여드려야지." "같이 가자." 태영이 앞장서 걸었다. 순돌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박노인이 멀리서 두 소년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묘하게 순돌에게 머물렀다. '저 아이... 몸은 허약하나, 기맥의 흐름이 심상치 않구나.' 박노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순돌의 걸음걸이 하나하나, 숨쉬는 박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었다. '맥이 좁고 얕으나, 그 안에 흐르는 결이 예사롭지 않아. 마치 씨앗이 딱딱한 껍질 속에 갇혀 있는 형국이로다.' '하늘이 내린 그릇이 따로 있다더니, 저런 곳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그러나 그는 아직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팡이를 짚고 서서, 산길을 오르는 두 소년의 등을 오래도록 눈에 담을 뿐이었다. 산길에서 태영과 순돌은 약초를 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뭐냐?" 태영이 낯선 풀뿌리 하나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아, 그건 독초야. 손대지 마." 순돌이 황급히 손을 쳐냈다. "어? 어떻게 아냐?"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약초꾼이셨거든. 다리 아프시기 전까진 이 산 구석구석 안 다녀보신 데가 없어." 순돌의 목소리에 오랜만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참, 너 그거 들었냐? 요즘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거." 순돌이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소문?" "밤마다 뒷산에서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더라. 벌써 몇 사람이 봤다는데." "귀신?" 태영이 눈썹을 찡그렸다. "응. 그래서 요즘 송도사(宋道士)라는 분이 마을에 와 있잖아. 그분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촌장님이 굿을 크게 벌인다더라." "송도사?" "황포 입은 도사님인데... 눈이 좀 이상하게 생겼어. 삼각형처럼 째져서. 근데 촌장님이 엄청 떠받든다더라고." 순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한 번 봤는데, 마주치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더라. 웃는 것 같은데 웃는 게 아니야, 그 눈이." 태영은 어딘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뒷산은 원래 산짐승도 많고 밤에 소리도 잘 울리는 곳이잖냐. 그런 걸 갖고 귀신이니 뭐니." "그런가? 근데 촌장님이 왜 저렇게까지 그 도사님을 떠받드나 몰라. 굿 한 번에 곡식이 몇 가마니가 나간다던데." 순돌의 말에 태영도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촌장이 곳간을 그리 쉽게 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보다, 이거 봐라." 순돌이 캐낸 약초 뿌리를 들어 보였다. 흙이 잔뜩 묻은 뿌리였지만, 순돌의 손에 들려 있으니 마치 보물처럼 보였다. "이거면 우리 아버지 다리 좀 나아지실 거야." 순돌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번졌다. 태영도 따라 웃었다. "더 캐자. 많을수록 좋잖아." "그래, 저기 저 바위 밑에 더 있을 것 같은데." 두 소년은 다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톱 밑에 흙이 잔뜩 끼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산 아래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봐, 저놈 아니야?" 마을 아이들 몇이 순돌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무치다! 무치!"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손에는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대여섯 명이나 되는 무리였다. "또 시작이네." 순돌이 한숨을 쉬며 몸을 움츠렸다. 익숙한 듯한 체념이었다. 그 순간 순돌의 어깨는 마치 겨울바람 앞에 선 마른 풀잎처럼 작아 보였다. "약초는 무슨, 그거 다 내놔라!" 아이들 중 하나가 순돌의 바구니를 낚아채려 했다. 태영이 그 손을 탁 쳐냈다. "...뭐야, 너?" 아이가 놀라 물러섰다. 태영의 눈빛에서 뭔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 자식... 저 소문난 놈 아니냐?" 다른 아이가 태영을 알아보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그 촌장 아들들 팼다는..." "가, 가자!" 아이들이 황급히 도망쳤다.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산길을 내달렸다. "고, 고맙다 태영아." 순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부러운 눈으로 태영을 바라보았다. "넌 좋겠다. 그런 힘이 있어서." "됐어. 어서 가자." 태영은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며칠 사이 갑자기 얻은 힘이었다. 자랑할 것도, 자랑스러워할 것도 아니었다. 두 소년은 다시 산길을 걸었다. 순돌은 조금 전 겁에 질렸던 것도 잊은 듯,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약초 바구니를 흔들었다. 그러나 태영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들은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뒷산의 귀신, 그리고 송도사.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순돌의 말대로라면, 촌장이 그 정체 모를 도사에게 곡식을 퍼주면서까지 매달릴 만큼 사정이 다급하다는 뜻이었다. 그저 산짐승 우는 소리를 두고 그리 호들갑을 떨 리는 없었다. 태영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뒷산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아침 안개가 봉우리를 휘감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뿌옇게 뒤덮인 산자락이었다. 그날 밤, 태영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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