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석 달 전 그날, 나는 그 세단에 억지로 태워졌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 세단이었다.
문이 열리고, 정장 입은 남자 두 명이 나를 짐짝 다루듯 잡아끌었다.
저항할 틈도 없었다.
뒷좌석 문이 닫히고, 세단이 출발하고 나서야 나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도현이었다.
십 년 만이었다.
편지 속에서만 존재하던 얼굴이, 실제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키가 훌쩍 컸고, 어깨가 넓어졌고, 눈빛은 예전보다 훨씬 짙어져 있었다.
도현은 옆에 앉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많이 컸네."
그 말투는 예전 편지 속 소년과 똑같았는데, 목소리는 훨씬 낮고 굵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십 년 동안 편지 주고받던 애가, 왜 이런 차에 나를 태우는 거야.'
"너…… 진짜 왕세자야?"
내가 겨우 물었을 때, 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는 것만으로 심장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동네 풍경이 낯설게 스쳐 지나갔다.
"놀랐어?"
"당연하지. 십 년 동안 편지 주고받은 애가 왕세자였는데."
도현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진작 말했으면 네가 편지 그만 보냈을 거잖아."
맞는 말이었다.
오메가인 내가, 알파인 왕세자와 얽힌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다면, 아마 도망쳤을 거다.
편지지 위에 적었던 유치한 안부들이, 사실은 궁궐 담벼락 안쪽에서 쓰인 거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열두 살짜리가 왕세자랑 펜팔을 했다니.'
우습고, 무섭고, 이상하게 억울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매주 몰래 만났다.
도현은 늘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정했다.
동네 놀이터 뒤편, 사람 없는 만화 카페, 문 닫은 서점 앞 골목.
도현은 한국에 있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당분간 여기서 지낼 거야"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왜 하필 여기야.'
'경호원도 없이 이렇게 다녀도 되는 거야.'
'너 진짜로 나 좋아서 온 거야,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야.'
물음들은 내 안에서만 굴러다니다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밤, 카페 뒷문에서 도현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골목은 어두웠고,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도현의 얼굴 반쪽을 비췄다.
"좋아해."
간결한 말이었다.
"십 년 동안, 계속."
나는 그 순간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십 년 전부터라고.'
'그 편지 한 장 한 장이, 다 그런 마음이었다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메가의 체취가 알파를 자극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반대였다.
도현의 페로몬이 나를 압도했다.
숲 같은, 서늘하면서도 짙은 향.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저 혼자 도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파의 이빨이 오메가의 목에 닿는다는 게 뭔지 알았다.
마킹.
표시.
소유의 흔적.
따가운 통증과 함께,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는 감각이 몸을 덮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와 도현 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내 목 뒤에는 옅은 자국이 남았다.
억제제 패치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옅은 붉은빛.
가끔 씻고 나와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자국이 꼭 나한테만 보이는 낙인 같았다.
지금, 나는 저녁 약속 장소인 카페 골목으로 걸어가고 있다.
가방끈을 고쳐 메며 걸음을 서둘렀다.
수업이 늦게 끝난 탓에 벌써 십 분이나 지나 있었다.
'또 늦었네.'
'저번에도 늦어서 한소리 들었는데.'
카페 문을 밀고 들어서자, 도현은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 짧게 정돈된 머리카락, 무표정하지만 눈빛만은 나를 놓치지 않는 얼굴.
테이블 위에는 손도 대지 않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늦었네."
"수업 늦게 끝났어."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도현이 손을 뻗어 내 목덜미의 옷깃을 살짝 젖혔다.
손끝이 스치는 감각에 순간 숨이 멎었다.
"많이 가려졌네."
"당연하지, 이거 티 나면 큰일 나잖아."
말을 하면서도 나는 주변을 살폈다.
카페 안에는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도현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큰일이라니."
"너 왕세자잖아. 나랑 이런 거 밝혀지면……"
"밝혀지면 뭐."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책임 안 질까 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책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나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지금.'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는 사이, 그의 손이 다시 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나는 도현의 손을 밀어냈다.
들어온 사람은 다행히 다른 손님이었다.
안도하며 옷깃을 다시 여미려는데, 그런데 그 손이 급하게 떼어지는 바람에, 옷깃이 완전히 젖혀졌다.
마킹 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 안 돼.'
손이 늦었다.
하필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아!"
다혜였다.
태권도 대표팀 훈련이 끝나고 오는 길인 듯,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머리는 아직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고, 가방을 한쪽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던 다혜의 걸음이, 몇 걸음 앞에서 뚝 멈췄다.
다혜의 시선이 곧장 내 목덜미로 향했다.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진 채로, 다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와 도현을 번갈아 바라봤다.
카페 안의 소음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저거 봤어.'
'분명히 봤어.'
목덜미를 가리려고 손을 올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