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선화왕국은 지도에서 찾으면 손톱만큼 작은 나라였다.
인구는 적었고 자원도 없었다.
산 몇 개와 항구 하나, 그게 선화왕국이 가진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알파와 오메가라는 두 번째 성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전 세계 인구의 극소수만이 갖는 이 성별은, 알파에게는 지배적인 페로몬과 발톱 같은 소유욕을, 오메가에게는 알파를 끌어당기는 체취와 주기적인 발열을 안겼다.
그리고 이 성별은 국가마다 취급이 달랐다.
어떤 나라는 이걸 법으로 관리했고, 어떤 나라는 아예 존재를 지웠다.
한국은 후자에 가까웠다.
오메가는 있었지만, 없는 것처럼 취급됐다.
한국에는 오메가가 드물었다.
나 강서준은 그 드문 경우였다.
열여덟 살, 서울의 한 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고, 겉으로는 평범한 남학생으로 보였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아무도 내가 오메가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목 뒤에 억제제 패치를 붙이고 다닌다는 것과,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를 결석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패치는 매일 확인해야 했다.
떨어지면 그날로 끝이었다.
오메가라는 사실은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숨기지 않으면 알파들의 표적이 됐다.
뉴스에는 종종 그런 사건이 실렸다.
오메가라는 게 알려진 뒤 실종된 사람, 감금된 사람, 그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은 사람.
한국은 아직 그런 나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덟 살이던 나는 놀이터에서 낯선 남자아이를 만났다.
검은 세단이 뒤에 서 있었고, 아이는 나보다 훨씬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다.
셔츠에 주름 하나 없었고, 신발은 흙 한 톨 묻지 않았다.
또래 애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애는 자기 이름이 이도현이라고 했다.
선화왕국에서 왔다고, 잠깐 한국에 머무는 거라고 했다.
나는 선화왕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신기한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날 그 애와 그늘 밑에서 개미를 구경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도현은 개미가 줄을 서서 먹이를 나르는 걸 한참 들여다봤다.
"쟤들은 왕이 있대."
"왕?"
"여왕개미."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헤어질 때 그 애가 종이에 주소를 적어 건넸다.
글씨가 또박또박했다.
여섯 살짜리 글씨라기엔 너무 정갈했다.
"편지해."
짧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십 년 동안 지켰다.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계절이 바뀌는 걸 편지로 알았고, 서로의 생일을 편지로 축하했다.
내 방 책상 서랍에는 그 편지들이 순서대로 쌓여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랍은 두꺼워졌고, 나는 매달 그 서랍을 여는 게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됐다.
도현은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편지 곳곳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요즘 바쁘셔."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웃어야 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늘 나중으로 미뤄져."
그런 문장들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이 애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편지 속 문장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무거워졌다.
내가 열두 살 때는 "숙제가 많아"였던 게, 내가 열여섯 살 때는 "회의에 들어가야 해"로 바뀌었다.
또래 애가 회의에 들어간다는 게 이상했지만, 그때도 나는 깊게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확신하게 된 건 열여덟 살, 인터넷 뉴스에서 선화왕국 왕세자의 얼굴을 본 날이었다.
우연히 클릭한 국제뉴스 한 줄이었다.
사진 속 소년의 눈매가 낯설지 않았다.
기사 제목은 선화왕국의 후계, 라는 문구로 시작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도현.'
그날 이후로 나는 편지에 답장을 쓸 때마다 손이 떨렸다.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다.
상대는 한 나라의 왕세자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그것도 숨겨야 하는 오메가였다.
이 두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런데도 편지는 끊기지 않았다.
도현은 여전히 도현이었다.
편지 속에서는 왕세자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아는 그 애였다.
그게 나를 계속 답장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리고 석 달 전, 그 편지들이 갑자기 멈췄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처음엔 바쁜가 보다 했다.
한 달째,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 달째 그랬을 때 나는 그가 나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서랍 속 편지 뭉치를 괜히 한 번 다시 묶었다.
이제 그만 정리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날, 학교 앞 골목에서 나는 검은 세단을 다시 보았다.
십 년 전과 똑같은 차종이었다.
번호판은 달랐지만, 그 위압적인 크기와 광택은 똑같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거릴 정도로 그 차는 골목에 어울리지 않았다.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그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낯이 익으면서도 완전히 낯설었다.
키가 훌쩍 컸고, 눈빛은 더 짙어졌지만, 그 눈매는 여덟 살 그날 그대로였다.
"오랜만이야, 서준아."
그 목소리에 다리가 굳었다.
십 년치 편지가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현은 그런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창문을 다시 올렸다.
차는 그렇게 조용히 멀어졌다.
그날 이후로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나는, 대학교 3층 강의실 창가에 앉아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교수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면에는 발신자 표시 없이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오늘 저녁, 카페. 늦지 마.]
나는 그 문자를 두 번 읽고서야 답장을 눌렀다.
짧게, '알겠어' 라고만 썼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조금 차가웠다.
'또 어디로 끌고 가려고.'
입가에 웃음이 걸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렇게 문자로만 부르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늦지 마, 라는 말은 매번 똑같았다.
마치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요즘 도현은 조금 이상했다.
평소보다 말이 없었고, 눈빛이 무거웠다.
전에는 카페에 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로 한 시간을 채우던 애였는데, 요즘은 창밖만 바라보다가 시간이 다 되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끔은 통화 중이던 휴대폰을 나를 보자마자 서둘러 끄기도 했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나도 몰랐다.
옆자리 여자애가 필기 좀 보여달라고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디게 흘러갔다.
창밖으로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나는 또 그 카페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