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봉인된 마신의 후계자

3화

유하 신왕과 마주 앉은 곳은 우리 동네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정말 아무 특징도 없는, 시내 어디에나 있는 그 카페. 통유리창 너머로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옆 테이블에서는 고등학생 커플이 시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신계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응팀 두 사람은 유하 신왕이 손짓 한 번 하니까 그대로 굳은 채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게 아니라, 공기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접어버리듯 스르륵 오므라들었다. 마치 종이를 반으로 접듯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진짜로, 저 정도 힘을 가진 사람이 카페 메뉴판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게 더 무섭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괜찮으십니까." "…네, 뭐."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 방금 사람 두 명을 순식간에 처리한 사람이, 지금은 진동벨을 손에 쥐고 있다. 저 진동벨, 저 사람 손에 들어가니까 왜 이렇게 안 어울리는지. 신계에서 온 존재가 카페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검은 정장 같은 걸 걸치고 있었는데, 옷감이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명 아래에서도 그림자가 진하게 남았다. [유하 신왕은 태현 신존께서 가장 신뢰하셨던 신왕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목소리가 다급하게 귀에 속삭였다. 아니, 이미 대응팀도 얼려버리는 사람한테 예의 안 갖출 배짱이 어딨겠냐고. 그냥 존댓말 쓰는 거 말곤 방법이 없잖아. 내가 무슨 협상할 카드가 있어. 진동벨이 울렸다. 유하 신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한 잔을 내 앞에 놓았다. 빨대 껍질을 뜯는 손짓이 어색했다. 마치 이런 걸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저기, 아까 그 말… 마지막 선택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유하 신왕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걸 봤다. 아메리카노가 쓴 걸 처음 알았나. 저 표정, 사람 죽인 표정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태현 신존님은 나흘 전, 흑마 제존과의 결전에서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흑마 제존. 그 이름이 나오자 목소리가 몸속에서 미묘하게 반응했다. 뭔가 시린 느낌이었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훅 끼치는 그 서늘한 공기 같은. "흑마 제존이 누군데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정보가 과도하면 위험합니다.] 과도한 정보가 위험하다는 그 말이, 나한테는 이미 이 상황 자체가 과도한데. "그리고 그 직후, 혈영 신존과 파사 명존이 신존님을 급습했습니다." 혈영. 그 핏빛 갑주. 내가 환상 속에서 본 그 목소리. 갑자기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억지로 열리려는 것처럼. "괜찮으십니까." "…네, 그냥 좀." 유하 신왕의 눈이 나를 훑었다. 걱정하는 건지 관찰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저 사람 표정은 원래 이렇게 무표정한 건가, 아니면 나한테만 이런 건가. "신존님은 마지막까지 신왕들을 지키기 위해 신기 천화신극을 자폭시키셨습니다." "자폭…이요?"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결계였습니다."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등골이 서늘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옆 테이블 커플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시험 잘 봤다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그 평범한 대화가 지금 이 테이블과 너무 멀게 느껴졌다. "신존님을 오래 모신 분이신가요?" "삼백 년 정도 되었습니다." 숫자를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삼백…년이요?" "신계의 시간은 이곳과 다르게 흐릅니다.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설명한다는 말이 벌써 열 번째다. 이 사람들 나중이 언제인지 궁금해지네. "돌아가시기 직전, 신존님은 두 가지를 남기셨습니다." "두 가지요." "첫째는 따님인 채연 공주님을 보호하라는 것." 딸이 있었구나. 그 남자한테. 사람 죽인 얘기 듣다가 갑자기 가족 얘기 나오니까 마음이 이상하게 훅 가라앉았다. "둘째는… 이도훈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숨이 턱 막혔다. "그게… 저요?" "그렇습니다." [정보량이 많습니다. 침착하십시오.] 침착하라는 말이 제일 안 침착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걸 이 목소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사람이 갑자기 죽은 신 얘기 듣고 자기 이름 나오는데 어떻게 침착하냐. "근데 저는 그 세계에 가본 적도 없는데요. 태현 신존인지 뭔지 이름도 처음 들었다고요."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카페 안이 조용해서, 순간 몇 사람이 이쪽을 쳐다봤다. 아, 진짜 창피하네. 신계 얘기하다가 목소리 커진 고삼이라니. 유하 신왕은 그런 시선을 신경도 안 쓰고 차분히 이어갔다. "신존님께서는 마지막 순간, 당신의 신력이 채연 공주님의 신력과 공명한다는 걸 감지하셨습니다." "공명이요? 그게 뭔데요." "쉽게 말하면… 두 분의 근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연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주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니. "그러니까 지금 저랑 그 공주님이랑… 뭐, 운명공동체 같은 거예요?" "비슷합니다." "비슷한 게 아니라 정확히 뭔지 알고 싶은데요." 유하 신왕이 잠시 말이 없었다. 컵에 맺힌 물방울이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정확히는, 두 분의 신력이 같은 근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신존님께서는 그 근원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것이 흑마 제존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랑 걔 힘을 합쳐야 그… 그 무서운 놈을 막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이해하고 싶어서 이해한 게 아니라 이해가 되니까 이해한 건데, 뭔가 칭찬받은 것 같은 이 상황이 더 짜증 났다. "저기요, 저는 그냥 평범한 고삼이에요. 성적도 평범하고 집도 평범하고—" 말하다 보니 서러워졌다. 아니 진짜, 억울했다. 남들은 야자하고 학원 가고 그러는데 나는 지금 신 죽었다는 얘기 듣고 있잖아.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화면에 뜬 이름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손이 저절로 떨렸다. "잠깐만요." 전화를 받았다. "도훈아, 너 학교 왜 안 왔어? 선생님이 전화 왔던데."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평범한 게 소중하다는 걸 갑자기 깨달아서였는지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냄비 소리, 텔레비전 소리, 평범한 집안의 소리가 마치 다른 세계의 방송처럼 들렸다. "어, 좀… 아파서." "어디가 아픈데? 목소리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병원 갔다 왔어? 밥은 먹었어?" "먹었어, 걱정 마." "저녁에 죽 끓여놓을게. 일찍 와." "응." 전화를 끊고 나니, 유하 신왕이 조용히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관찰이 아니라 뭔가 다른 감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이 계시군요." "…네." "태현 신존님께도 딸이 있으셨습니다. 그 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셨습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지.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를 한참 들여다봤다. 얼음 조각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신존님도… 딸 걱정하면서 죽었어요?" "마지막 말씀이 채연 공주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대답이 너무 간결해서, 오히려 더 아팠다. 자기 목숨을 걸면서도 마지막에 부른 게 자식 이름이라니. 엄마가 방금 나한테 죽 끓여놓겠다고 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그 평범함이 사무치게 소중해졌다. "당신이 이 일을 거부한다 해도 저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요." "다만 흑마 제존의 봉인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봉인이 약해진다는 말에, 몸속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용해졌다. 마치 그 정보 앞에서 숨을 죽이는 것처럼. 카페 안의 온도가 갑자기 낮아진 것 같았다. 옆 테이블 커플의 웃음소리도 어느새 멀어졌다. "봉인이… 얼마나 약해졌는데요." 유하 신왕이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 잠깐의 침묵이 대답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태현 신존님이 계셨을 때는 봉인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존님이 돌아가신 지금—" 말이 거기서 끊겼다. 유하 신왕이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한참이나.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인지, 그는 끝내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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