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저녁이 되기 전, 나는 관리국 지부 안쪽 사무실로 불려갔다.
부르는 방식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직원 하나가 다가와서 "잠깐 저쪽으로 오시죠"라고 했는데, 그 말투가 딱 취조하는 사람 말투였다.
협조 요청이 아니라 소환이었다.
'긴장할 것 없다.'
스승이 말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
"잘못은 없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죠?"
'그거야 네가 원래 그런 성격이니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관공서만 가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타입이었다.
전생에 세금 미납으로 시달린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런 데는 적응이 안 됐다.
복도를 지나며 벽에 붙은 공고문들을 훑었다.
[흑정굴 봉인등급 유지 안내], [실종자 수색 협조 요청], [무단 진입 시 벌금 최대 500만 원].
500만 원.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다리가 살짝 풀렸다.
'벌금이라니, 지금 그게 문제인가.'
스승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먼저 말했다.
"문제죠. 큰 문제죠. 저 통장에 잔고 얼마 있는지 아세요?"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럼 조용히 하세요."
지부장이 직접 나를 맞았다.
나이 든 남자였고, 명찰엔 '박준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얼굴에는 오래 서류를 들여다본 사람 특유의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눈 밑이 검고, 안경 렌즈에는 지문이 몇 개나 묻어 있었다.
"앉으시오."
의자는 딱딱했다.
등받이도 없이 그냥 철제 의자였다.
심문받는 기분이 물씬 났다.
"B급 각성자가 흑정굴에서 살아 나왔다는 게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확인은 됐고."
지부장이 서류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흑정굴은 3년째 봉인 등급이오. 무단 진입만으로도 벌금감이지."
벌금이라니, 지금 그게 문제인가.
아까 스승이 한 말을 내가 그대로 속으로 되뇌었다.
근데 진짜로 문제였다.
저 서류 어딘가에 5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목이 탔다.
"저기, 그게 고의는 아니었고요."
"고의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소."
지부장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규정은 규정이니까."
여기서 규정 얘기가 나오면 답이 없다.
관공서 논리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도장 하나 없으면 안 되는 그 논리.
"실종자들 조사에 협조하면, 벌금은 없던 일로 하겠소."
이건 거래였다.
지부장 입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하고, 나는 벌금을 피하고 싶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셈이었다.
좋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생각보다는 대화가 될 만한 자로군.'
"관공서 사람이잖아요. 원래 이런 건 다 계산기로 하는 거예요."
'계산기?'
"주판이라고 하면 아시겠어요?"
'무례하구나.'
"조건은요?"
지부장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글씨가 작아서 눈이 아팠다.
"흑정굴 재진입, 실종자 위치 확인. 위험하면 즉시 철수."
"위험하면 즉시 철수라는 게, 그게 판단 기준이 누구 기준이에요?"
"당신 기준이오."
"제 기준으로 위험하면 저는 이미 흑정굴 안 갔죠."
지부장이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웃는 것도 피곤해 보였다.
"그럼 최소한의 상식적 판단이라고 해두지."
"보상은?"
"등급 재측정 우선권. 그리고 관리국 지원금."
지원금.
그 말 한마디에 아까의 500만 원이 머릿속에서 스르륵 지워졌다.
괜찮았다.
생각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이 정도면 손해는 아니다.'
"압니다. 저도 계산은 하거든요."
'주판으로 말이냐.'
"…비꼬는 거예요?"
'그럴 리가.'
거짓말이었다.
백 퍼센트 비꼬는 거였다.
"하죠."
지부장이 서류를 밀며 서명란을 가리켰다.
나는 이름을 적었다.
서준.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손이 아직 흑정굴의 긴장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악수를 하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복도 끝에 낯익은 조끼가 보였다.
조은서였다.
마을 가이드 조끼, 등에 붙은 관리국 협력업체 마크까지 그대로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눈을 피했다.
그냥 피한 게 아니었다.
아주 명백하게, 시선을 급하게 돌리는 그런 각도였다.
누가 봐도 뭔가를 숨기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마을 가이드가 관리국 지부장실 근처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관광객 안내가 여기서 볼일이 있을 리 없다.
서류 창구도 아니고, 지부장실이 있는 안쪽 복도였다.
'수상하지 않은가.'
스승이 다시 말했다.
"압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조은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웠다.
어깨가 살짝 굽었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지금은 캐물을 시간이 없었다.
지부 직원이 뒤에서 서류 사본을 챙겨가라고 불렀고, 그것까지 처리하고 나니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하나를 지나는데 뭔가가 내 발을 붙잡았다.
작은 손이었다.
처음엔 소매치기인가 싶어서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전생 습관이다.
낮은 확률의 위협도 일단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어 있다.
"거기, 아저씨."
돌아보니 어린 여자아이였다.
키가 작고, 눈이 유난히 크고, 옷차림은 마을 사람 같지 않았다.
색이 이상했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옷인데, 마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재질이었다.
신발도 맨발에 가까운 얇은 것이었는데, 골목 바닥이 저렇게 차가운데 발이 시릴 것 같았다.
"아저씨 아니야."
내가 먼저 정정했다.
스물몇 살짜리한테 아저씨 소리 듣는 건 억울했다.
"그럼 오빠?"
"…뭐, 그러든가."
솔직히 오빠도 살짝 억울했지만, 아저씨보다는 낫길래 넘어갔다.
아이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상처 난 팔이었다.
흑정굴에서 긁힌 자국이 아직도 벌겋게 남아 있었다.
"피 나."
"아, 이거? 괜찮아. 별거 아니야."
"안 괜찮아."
아이가 손바닥을 갖다 댔다.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처음엔 그냥 손이 따뜻한 애구나, 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 온기가 점점 안으로 파고들었다.
피부 표면이 아니라 상처의 결 안쪽까지.
[상처 회복 중.]이라는 문구가 눈앞에 떴다.
순식간이었다.
찢어졌던 상처가 아물었다.
살이 붙는 그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뺐다.
"뭐, 뭐야."
"의료술."
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넌 서준이지."
내 이름을 아는 낯선 아이라니.
순간 뒷목이 서늘해졌다.
관리국에도 서류에 이름이 있었으니 어디서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골목까지 따라와서 이름을 부를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몰라. 그냥 알아."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도 헷갈리는 눈치였다.
정말로, 그 표정은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냥 자기도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진유리."
진유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이상하게 마음 어딘가가 울렸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선가 스친 것 같은 그런 착각.
'……저 아이.'
스승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건 이상했다.
스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말을 흐린 적이 없었다.
항상 확신에 차 있거나, 확신에 찬 척을 했다.
"알아요, 얘? 뭐예요?"
'모른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가, 죽은 스승이 살아 있는 아이를 알 리가.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그 말을 되짚었다.
낯설지 않다.
모르는데 낯설지 않다.
그게 말이 되나.
진유리는 내 팔을 계속 만지며 눈을 감았다.
집중하는 표정이었다.
어린애가 짓기엔 지나치게 진지한 얼굴이었다.
[검의 회로 활성도 12% 상승.]
건조한 알림이 또 떴다.
나는 그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12퍼센트.
숫자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흑정굴에서 목숨 걸고 얻은 각성 수치를 생각하면 이건 절대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저 안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하고 겨우 올린 게 그 정도였는데, 이 아이는 손 한번 대고 그만큼을 그냥 얹어줬다.
"이, 이거 지금 뭐야."
"치료 중."
"이게 치료야? 성장인데?"
"둘 다."
아이는 태연하게 답했다.
손을 떼자, 팔뚝이 뜨거웠다.
아까 흑정굴에서 새 검의를 각성했을 때보다 더 명확한 감각이었다.
혈관을 따라 뭔가가 도는 느낌, 그게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다.'
스승이 낮게 말했다.
"뭐가요."
'저 아이의 술법이, 네 회로와 너무 잘 맞는다.'
너무 잘 맞는다는 말이 걸렸다.
그냥 잘 맞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맞는다.
전생에도 이런 식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우연은 대부분 우연이 아니었다.
"그게 왜 문제예요?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 것과 예사롭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다.'
스승치고는 꽤 진지한 어조였다.
평소 같으면 어투에 여유가 배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여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다시 봤다.
진유리는 여전히 내 팔을 잡고 있었고, 눈은 이제 반쯤 뜬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호기심도, 경계심도 없이, 그냥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얼굴.
"너, 원래 여기 살아?"
"몰라."
"부모님은?"
"몰라."
대답이 너무 즉각적이고 짧아서, 모른다는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름 빼고는 전부 백지인 애.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마을에서 나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과 얽히고 있었다.
조은서, 흑정굴, 그리고 지금 이 낯선 소녀까지.
그리고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아직 제대로 풀린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