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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무월리에 도착한 건 해가 완전히 뜬 뒤였다. 밤새 걸었다. 흑정굴에서 나온 몸으로, 잠도 못 자고, 먹은 것도 없이. 회로는 아직도 뜨거웠고 다리는 남의 다리 같았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은 건, 멈추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아서였다. 작은 마을이었다. 관리국 지부 하나, 잡화점 하나, 여관 두 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는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고, 새벽 공기 사이로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났다. 배가 고팠다. 지금 이 순간, 흑정굴의 비밀이나 실종자니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건 뜨끈한 밥 한 그릇이었다. '속물이군.' 또 들려왔다. '죽다 살아 나온 인간이 밥 생각을 먼저 하다니.' "살아야 밥을 먹지, 밥을 먹어야 사나." 혼잣말인데 지나가던 노인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 걸음을 서둘렀다. 초능력자 등록소는 마을 어귀 낡은 건물이었다. 벽에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게, 몇 년째 방치된 느낌이었다. [초능력자 등록법 제3조: 각성자는 발견 즉시 관할 지부에 등록해야 한다.] 벽에 붙은 문구였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글씨도 절반쯤 지워져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문을 밀었다. 문이 삐걱거렸다. 안은 좁았다. 책상 하나, 낡은 측정 기계 하나, 그리고 그 뒤에 앉은 직원 하나. "등록하러 왔는데요." 카운터의 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꾀죄죄한 옷차림, 팔에 남은 상처, 눈 밑의 다크서클까지. 어디서 얻어맞고 온 사람 취급하는 시선이었다. 사실 얻어맞은 거나 다름없으니 할 말은 없었다. "등급은?" "모르는데요." "측정부터 하시고." 직원이 귀찮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 쪽으로 걸어갔다. 기계는 낡아서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었다. 이거 제대로 작동하나 싶을 정도였다. 측정은 간단했다. 손바닥을 기계에 올리면 끝이었다. 차가운 금속판에 손을 대자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등급: B. 특기: 검의(剑意). 잔여 성장 가능성: 미측정.] 직원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방금까지 시큰둥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B급이 흔치 않은데. 언제 각성했어요?" "4년 전이요." "4년이나 됐는데 이제 등록해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스승이 등록을 극구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이 사람한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설명한다고 믿어줄 리도 없었고. '스승님이 반대해서요'라고 하면 아마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게 뻔했다. '말을 얼버무리는 재주는 여전하군.' 또 들려왔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직원이 서류 몇 장을 뒤적이더니 도장을 찍었다. 쿵, 쿵.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자, 여기. 등록증이요. 앞으로 관리국 통제 구역 출입할 때는 이거 챙기세요." "네." "참고로, B급이면 3개월마다 재측정 있어요. 잊지 마시고." "3개월이요?" "성장 가능성 미측정자는 다 그래요. 규정이니까." 귀찮은 규정이 하나 더 붙은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정신도 없었다. 등록증을 받고 나오자, 마을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흑정굴 인근 실종자 3명, 관리국 조사 중] 나는 그 문구를 뚫어지게 봤다. 실종자. 흑정굴. 방금 내가 죽다 살아 나온 그곳. 게시판 앞에 선 아주머니 하나가 옆 사람한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굴 원래 저주받은 곳이라니까. 몇 년 전에도 그랬잖아." "이번엔 셋이나 없어졌다며?" "관리국에서도 손 못 대고 있대. 뭔가 있는 게 분명해." '뭔가 있군.' 스승이 말했다.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무천이 관련 있는 건 확실하겠죠."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다.' 확신이라니, 근거는. 물어보려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쳤다. 손끝이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화들짝 놀랐다. 어제 흑정굴에서 겪은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 흑정굴 갔다 왔어요?" 돌아보니 여자였다. 나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고, 마을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가이드 명찰에 이름이 박혀 있었다. 조은서. 짧은 머리에, 눈매가 또렷했다. 조끼 주머니에는 지도 한 장이 접혀 꽂혀 있었고, 손에는 두꺼운 노트를 들고 있었다. 관광객 상대하는 가이드라기엔 눈빛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어떻게 알았어요?" "팔에 그 상처, 흑정굴 벌레 자국이거든요. 저 여기서 가이드 일 해요." 그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긴장한 건가. 나는 잠시 그 손을 내려다봤다. 악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아침 공기 탓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관리국 조사팀도 못 들어간 곳을 어떻게 나왔대요?" "운이 좋았어요." "거짓말."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대화가 이렇게 빨리 끊길 줄 몰랐다. 나는 그녀를 다시 봤다. 눈이 안 웃었다. 입은 웃는데, 눈은 나를 관찰하듯 훑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벌써 상대하기 피곤한 유형이라는 걸 직감했다. "뭘 원해요?" "정보 교환." 그녀가 바로 답했다. "실종자들, 저도 알아요. 관리국보다 제가 더 많이." 이건 이래서 이상했다. 마을 가이드가 관리국보다 정보가 많다니. 관리국 지부가 바로 코앞에 있는 마을에서, 일개 가이드가 그보다 더 많이 안다는 건 앞뒤가 안 맞았다. '조심하는 게 좋겠다.' 스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 정도로 정보에 자신 있는 자라면, 뭔가 뒷배가 있거나, 아니면 직접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았다. 관련이 있다면 위험하다. 뒷배가 있다면 이용해도 된다. 둘 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보가 필요했다. 흑정굴 안에 뭐가 더 있는지, 실종자와 한무천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혼자 알아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고, 시간은 지금 나한테 가장 부족한 자원이었다. "좋아요." 내가 말했다. "교환하죠." 조은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미소가, 이상하게 뒤끝이 남았다. 웃는데 눈은 안 웃고 있었다. 마치 원하는 대답을 정확히 받아낸 사람의 표정 같았다. "그럼 저녁에, 여관 뒤편에서 봐요." "몇 시요?" "해 지고 나서."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아요? 나도." 그녀가 잠깐 멈췄다. 그 짧은 정지가 마음에 걸렸다. "은서." "성은?" "필요 없어요, 지금은." 성을 숨기는 이유가 뭘까. 사소한 거였지만, 사소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녀가 돌아서서 걸어갔다. 마을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가이드라기엔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었다. 군인 같기도 했고, 아니면 뭔가에 훈련된 사람 같기도 했다. '저 아이, 뭔가 숨기고 있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알아요." '알면서 왜 약속을 잡은 것이냐.' "정보가 필요하니까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 알겠지.' "아는데, 지금은 그거보다 급한 게 있으니까요." 스승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평소라면 한마디라도 더 얹었을 텐데. 그런데 지금 당장은, 그 숨기는 게 뭔지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실종자 셋. 흑정굴. 그리고 내 안에서 아직도 뜨거운 팔뚝의 회로.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륵. 민망할 정도로 크게. '이 판국에 배가 고픈 것이냐.' "사람이 살아야 뭘 하든 하죠." '대단한 정신력이군.'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헷갈리는 말투였다. 아마 후자겠지. 나는 잡화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 했다. 흑정굴도, 실종자도, 조은서라는 여자도, 다 배를 채운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이 마을에 온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일이 산더미였다. 등록증 한 장, 이상한 게시판 문구 하나, 그리고 눈이 안 웃는 여자 하나. 전부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고, 저녁이 되면 그중 하나는 반드시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빵집 냄새가 다시 코를 스쳤다. 그래, 일단 저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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