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부터 이서린의 수업은 정말로 굶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흘을 물만 마시고 버텨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수련이야, 그냥 학대잖아.' 나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천무대제의 자존심이란 게 이런 데서까지 발휘될 줄은 몰랐다.
굶는 사흘 동안, 나는 이 몸의 기억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어머니 백부인(白夫人)에 대한 기억이었다.
어머니는 강도현이 아홉 살 되던 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날 밤, 그녀는 어린 강도현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도현아, 너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단다. 절대 그걸 자랑하지 말고, 절대 드러내지 마라. 세상에는 네 안의 것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린 강도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은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한서옥은 정말로 그의 성맥을 뜯어갔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건가.' 나는 이 몸의 마지막 온기 같은 기억을 붙잡고 씁쓸해졌다. 천무대제로 살면서 부모를 그리워한 적은 없었는데, 이 몸의 기억은 자꾸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아, 진짜 이건 좀 반칙이잖아.'
그 기억 속에는 또 다른 얼굴도 있었다. 선유나(宣柳娜). 삼장로의 딸이자, 강도현과 어릴 적 함께 자란 청매죽마(靑梅竹馬)였다.
둘은 세가의 뒷마당에서 매일같이 검을 맞대고 놀았다. 그때의 강도현은 진짜 천재였다고 한다. 오품 성맥을 타고나 세가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선유나조차 그를 이기지 못해 울며 돌아가던 날이 많았다.
"오늘도 내가 이겼다!" 어린 강도현이 검을 치켜들며 소리치면, 선유나는 눈물을 훔치며 발을 굴렀다.
"다음엔 꼭 이길 거야! 두고 봐!"
하지만 성맥이 뽑혀나가고 강도현이 폐인이 되어버린 뒤, 선유나는 발걸음을 끊었다. 사람들 말로는 지금 그녀는 응기 칠층(七層)까지 올라 세가 제일의 천재로 불린다고 했다. '아이러니하지. 옛날엔 내가 걔 울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걔가 세가 최고고 난 폐인이라니.'
사흘째 밤, 나는 배고픔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그 기억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유태식이 이서린을 겁박했던 그 순간까지도, 이 몸의 기억 속엔 온갖 굴욕이 쌓여 있었다. 하인들의 조소, 친척들의 냉대, 강도명의 비웃음.
'다 갚아줄 거다.' 나는 배고픔 속에서도 그렇게 다짐했다. 천무대제로서의 자존심과, 강도현으로서의 원한이 뒤섞여 하나의 결심이 되었다.
사흘째 되던 새벽, 방문이 벌컥 열리며 이서린이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도련님. 방금 세가 본채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한서옥 부인이... 도련님을 정식으로 세가에서 축출(逐出)하자는 안건을 장로회에 올렸다고 합니다."
'벌써? 이 여자 성질 급하기도 하네.' 나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이서린의 다음 말에 웃음이 멎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강도명이 아니라, 천화신궁의 이현모가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