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하늘을 삼킨 폐인

1화

천계(天界) 구천궁(九天宮)의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균열은 하늘 한복판에서 시작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나는 그 균열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천무대제(天武大帝) 선우강. 구백 년을 살며 단 한 번도 무릎 꿇은 적 없던 이 몸이, 오늘은 다르다. 사방에서 검기(劒氣)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채채챙— 챙— 나는 그것들을 흘리고 쳐내고 부러뜨렸다. 팔이 뻐근했다. 아니, 뻐근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뼈째로 갈리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하나를 베어내면 둘이 붙었고, 둘을 쳐내면 다섯이 몰려왔다. '이 씨발놈들, 순서 정해서 덤벼도 될 것을... 예의라는 걸 배운 적이 있기는 한가.' 칠천군(七天君)의 봉인검(封印劒)이 내 좌측 어깨를 뚫고 들어왔다.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이상한 감각이 어깨에서 등줄기까지 훑고 지나갔다. 명왕전(冥王殿)의 마존(魔尊)들은 등 뒤에서 목을 노렸다. 나는 피를 토하면서도 웃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강, 미안해요." 서하란(徐夏蘭). 내 여자였다. 삼백 년을 함께한 여자였다.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잔주름까지 외우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지금 내 뒤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내 등에 검을 꽂아 넣은 채로. 푹. 소리는 그렇게 짧았다. '아, 이건 좀... 너무 성의없는데. 삼백 년 배운 검이 이 정도밖에 안 됐던 거야?' 나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여자의 검질 솜씨를 평가하고 있었다. 한심한 새끼. 이 와중에 그런 게 눈에 들어오냐. "왜." 나는 겨우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올라왔다. "왜, 하란아." "당신이 너무... 강해서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진짜였는지 연기였는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시간도, 자격도 이제는 없었다. "천제(天帝)께서 말씀하셨어요. 당신을 없애야 다음 시대가 온다고." '다음 시대? 지랄하고 있네. 그냥 내가 눈에 거슬렸다는 거잖아. 구백 년을 버텨온 늙은이가 자리 안 내주니까 무서웠던 거잖아.' 나는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구백 년 만에 처음으로.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그저 허탈했다. 사위(四圍)에서 몰려든 자들의 검이 다시 내 몸에 박혔다. 하나. 둘. 셋... 나는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의미가 없었으니까. 몇 개가 더 박히든 죽는 건 똑같았다. 저놈들도 그걸 아는지 검을 꽂아넣는 손이 점점 더 대충대충이었다. '이것들도 지겨운가 보네. 나 하나 죽이는 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겠지.'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온갖 기억이 밀려들었다. 내가 처음 검을 쥐었던 날,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흐르던 그 어린 날. 사부에게 매타작당하던 날, 엉덩이가 시퍼렇게 부어 사흘을 앉지도 못했던 그날. 서하란의 첫 웃음, 그때는 저 웃음이 이렇게 끝날 줄 몰랐던 그 순진했던 날. 천도(天道)를 깨우친 순간의 전율, 세상이 통째로 열리는 것 같았던 그 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낯선 얼굴이 떠올랐다. 본 적 없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마르고 병약하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몸에, 눈빛만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저건 누구... 왜 저런 게 지금 보이는 거야.' 생각을 끝맺지 못했다. 세상이 하얗게 지워졌다. ... 두 번째로 검이 내 심장을 관통했을 때, 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서하란의 웃음이었다. 그건 확실히 진짜였다. 삼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낮고 진득한 웃음. '그래, 좋다. 이렇게 끝나는 것도. 다음에 만나면— 아니, 다음이 있기나 할까.' 마지막 생각은 그거였다. 지독하게 태평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지쳤을 뿐이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나는 분명히 느꼈다. 무언가가,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죽음보다 더 깊고, 더 끈질긴 무언가였다. '이게 뭐지.' 마지막 물음은 답을 얻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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