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밤, 이서린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등불을 밝혔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세가 사람들은 제가 그냥 도련님 시중드는 몸종인 줄 알고 있죠." 그녀가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원래... 은거(隱居)한 무인(武人)입니다. 도련님 어머님과의 인연으로 이곳에 남았을 뿐이고요."
'은거한 무인이라니, 팔뚝에 상고 무맥 표식을 달고 다니는 은거자가 세상에 어딨어.'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겉으로는 태연히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뭘 원하는데."
"도련님 몸에서 방금 느낀 기운." 그녀가 정색했다. "그건 성맥도 아니고, 흔한 내단의 잔재도 아닙니다. 저는 삼십 년을 무공에 바쳤지만 그런 종류의 기운은 딱 한 번, 옛 전설 속에서만 들어봤습니다."
"뭔 전설."
"상고 제일금지체(上古 第一禁地體). '천지를 삼키는 성체(天地呑星體)'."
방 안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 것 같았다. '천지를 삼키는 성체라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나는 겉으로는 표정을 굳혔지만 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왔다. 구백 년을 살면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이 몸에 들어와서야 처음 듣는 이름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게 뭔 뜻인데."
"세상의 모든 기운을 삼키고 되새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체질입니다. 성맥이 빼앗겨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몸이라야 온전히 발현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체질입니다."
'이 몸에 성맥이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거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곰곰이 씹었다.
"그러면 넌 뭐, 그걸 알아보고 날 도우려는 거냐."
이서린이 옷깃을 여미며 낮게 웃었다. 그 웃음에서 처음으로 시녀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졌다.
"도우려는 게 아니라, 가르치려는 겁니다."
그녀가 손끝을 살짝 튕겼다. 순간 방 안의 등불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나조차 반응하지 못한 속도였다. 천무대제였던 시절의 나조차도, 이런 종류의 압도적인 절제된 힘은 흔히 보지 못했다.
'이 여자, 세가에 처박혀 있을 급이 아닌데.'
"응기(凝氣) 후기(後期)입니다." 그녀가 태연히 말했다. "세가 삼장로의 딸도 응기 칠층(七層)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던데, 저는 그보다 위입니다."
'이 여자 은근히 자랑도 하네. 시녀 코스프레하던 여자가 갑자기 뭐 이렇게 당당해.'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래서 사제(師弟) 관계를 맺자는 거야?"
"정확히는— 도련님이 저를 사부라 불러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싫으시면 그만이고요."
'싫을 리가 있나. 천무대제 자존심이 문제긴 한데, 지금 몸은 그냥 폐인이잖아.'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사부님."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 입안이 텁텁했다.
이서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죠. 참고로— 첫 수업은 굶는 것부터입니다."
'뭐? 굶는 게 무슨 수업이야!' 나는 항의하려 했지만 그녀는 벌써 등불을 끄고 방을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