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사장님 계세요?"
도훈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종소리가 딸랑, 하고 울렸다. 골동품점 특유의 퀴퀴한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카운터 안쪽에서 허대수가 고개를 들었다.
"또 너냐. 뭘 그렇게 자꾸 오냐."
허대수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함께, 감출 수 없는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허대수의 눈매가 좁아졌다. 열여덟 살짜리 학생이 이렇게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처음엔 그저 골동품에 관심 많은 애송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올 때마다 던지는 질문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눈치챈 건가.'
허대수는 카운터 밑에 손을 슬쩍 얹었다. 언제라도 뭔가를 집어들 준비였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늘 만약을 대비해야 했다.
"할 말이 뭔데."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도훈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종이 한 장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가 나무 표면에 닿는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거 보세요."
허대수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인쇄된 신문 기사 스크랩이었다. 정확히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미래의 기사였다. 도훈이 기억을 더듬어 직접 작성한 가짜 초안이었지만, 그 내용은 소름 끼치도록 구체적이었다.
'조선 왕릉 도굴 사건, 형제간 분배 다툼으로 살인극.'
'용의자 허 모씨, 동생과의 갈등 끝에.'
허대수의 얼굴이 굳었다. 눈동자가 종이 위를 몇 번이고 훑었다. 마치 글자가 잘못 읽힌 게 아닐까 확인하듯이.
"......이게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 안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데, 곧 일어날 일이기도 하고요."
"뭔 개소리야, 너 지금."
허대수가 카운터를 쾅 내리쳤다. 손바닥이 나무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렸다. 도훈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겉으로는 겁먹은 척, 속으로는 이미 승부를 봤다.'
'이 정도 반응이면, 진짜배기라는 뜻이렷다.'
"동생분이랑 요즘 사이 안 좋으시죠. 지난번 왕릉 건 배분 문제로."
허대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운터를 짚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저는 그냥, 알아요."
도훈은 천진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순진한 고등학생이었다. 교복도 안 입고 사복 차림으로 골동품점을 드나드는 게 이상해 보일 법도 했지만, 허대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눈빛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협상가의 것이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
'그것이 검이 되고, 방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하는군.'
'수백 년 살아도 이런 재미는 못 봤거늘.'
허대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는 도훈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분명 어린애의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등골이 서늘했다.
"뭘 원해. 돈이냐?"
"아니요."
도훈이 고개를 저었다.
"창고에 있는 물건들이요. 전부는 필요 없어요. 그중에 도검류만."
"뭐?"
허대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두려움도 잊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검이 왜 필요해, 애새끼가. 학교 축제에 쓸 거냐?"
"수집이 취미라서요."
도훈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도검들 대부분이 왕릉에서 출토된 오래된 부장품들이었고, 그 안에는 청동 방울보다 훨씬 짙은 잔존 영기가 깃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백 년 왕실의 기운을 품은 검이라면.'
'단전을 채우는 속도가 몇 배는 빨라질 것이다.'
'한 자루, 한 자루가 곧 내 회복의 씨앗이거늘.'
허대수는 한참을 침묵했다. 도훈이 쥔 종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보의 무게를 가늠하는 눈치였다. 카운터 위의 형광등이 지지직, 낮게 떨렸다. 가게 안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만약 안 준다고 하면?"
"이 종이, 경찰서에 가져다줄 거예요. 아니면—"
도훈이 한 박자 쉬었다. 그 잠깐의 정적이 허대수에게는 영겁처럼 느껴졌다.
"동생분한테 먼저 보여드릴 수도 있고요."
허대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너, 이 새끼가."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가 주먹을 쥐고 카운터를 돌아 나오려는 순간—
도훈의 눈빛이 순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선을 넘으려 하는군.'
도훈은 미세하게 단전에 남아 있던 한 톨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며칠간 청동 방울에서 흡수한, 쌀알만큼 미미한 그 기운을.
그리고 그것을 눈빛에 실었다.
찰나, 허대수는 걸음을 멈췄다.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저 눈빛 하나였을 뿐인데,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마치 거대한 짐승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기분이었다.
'뭐, 뭐야 이건.'
허대수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 앞에 선 것처럼,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애새끼가 아니다. 이건, 애새끼가 아니야.'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등이 진열장에 부딪혀 오래된 도자기 하나가 흔들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났지만 허대수는 그것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 도훈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왜 그러세요?"
허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허대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린 학생 하나 상대하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이었나. 아니, 두려운 건 학생이 아니었다. 그 학생의 눈빛에서 스쳐 지나간 무언가였다. 마치 심연을 들여다본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였다.
"......줄게. 도검류 다."
허대수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 있었다.
"창고 안에 있는 것만 다 주면, 종이는 잊는 거지?"
"물론이죠."
도훈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거래 성립이네요."
악수를 나누는 손, 허대수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날 오후, 도훈은 낡은 트럭 한 대를 빌려 허대수의 창고에서 도검 백여 자루를 실어냈다. 창고는 어두컴컴했고, 곰팡이와 녹슨 쇠 냄새가 진동했다. 나무 상자마다 도검이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대부분이 부식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도훈에게는 그것 하나하나가 보물이었다.
트럭에 짐을 나르는 작업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허대수도 마지못해 거들었는데, 도훈의 눈치를 살피며 몇 번이나 곁눈질했다.
'이 힘 없는 몸으로 무거운 걸 나르려니 죽을 맛이구나.'
'그래도 이 정도 고생쯤이야.'
도훈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훔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겉으로는 그저 낑낑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이제 시작이다.'
트럭 짐칸에 쌓인 도검들을 바라보며, 도훈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녹슨 칼자루 하나하나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미세한 기운이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가웠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창고를 정리하던 중, 허대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처럼.
"참, 이번 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특별전 하는 거 알아? 신라 금동 무사상 전시. 거기 관계자 하나가 나한테 진품 감정 부탁했었는데."
도훈의 귀가 번쩍 뜨였다. 손에 들고 있던 녹슨 검 한 자루가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금동 무사상.'
'신라 시대 유물.'
'그 정도 격이면.'
도훈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짐승처럼, 동공이 미세하게 커졌다.
'그 안에 담긴 기운, 상상도 못 할 만큼 짙을 것이다.'
'천 년을 넘게 지켜온 왕실의 수호신이라면, 이 도검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겠지.'
도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한 척, 창고 안의 도검들을 정리하는 시늉을 계속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허대수, 이번엔 네가 나를 인도할 차례구나.'
허대수는 도훈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무거운 상자를 트럭에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