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이 된 기적의 아이

5화

잔치의 소동 이후, 한무진은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들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밤새 촛불 아래 앉아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찾아갈 수 있는 자, 믿을 수 있는 자, 그리고 힘을 빌려줄 수 있는 자. 그 셈이 끝나기도 전에 새벽이 밝았고, 그는 결국 오랜 거래처인 무림 문파 청검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이라면, 적어도 문파의 이름을 걸고 내 말을 들어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청검문의 대전은 예전과 다름없이 위엄이 넘쳤다. 벽에 걸린 검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장로는 한무진을 반갑게 맞았으나, 그 반가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동이라...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청검문의 장로가 차를 마시며 웃었다. "허나 아기의 눈이 어떻든, 그것이 우리 문파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제 아들의 눈을 노리는 자가 있습니다." 한무진이 다급히 말했다. "그것이 제 스승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순간 장로의 표정이 굳었다. 찻잔을 든 손이 멈추었고, 대전 안의 공기마저 차갑게 식는 듯했다. "선우탁을 의심한다는 말인가." 그가 낮게 물었다. "확신은 아닙니다만..." "확신도 없이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장로가 언성을 높였다. "선우탁은 이 대륙에서 존경받는 대선배요. 자네가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닌가 싶군." 한무진은 그 말에 얼굴이 굳었다. '늙어서 헛소리를 한다고...'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서른 해 가까이 상단을 이끌며 쌓아온 그의 안목이, 이 자리에서는 늙은이의 착란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됐네, 됐어." 장로가 손을 내저었다. "돌아가서 아이나 잘 돌보시게. 근거 없는 소리로 큰 어른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 하지 말고." 한무진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청검문을 나섰다. 대전 밖으로 나오자 시종들이 그를 흘긋거리며 수군댔다. 그 시선이 그의 등 뒤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는 다시 상단 연합의 어른들을 찾아갔다. 그곳은 그가 반평생 얼굴을 맞대고 은자를 주고받은 자들의 모임이었다. 믿었기에 찾아간 곳이었으나, 그곳에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한 원외, 요즘 잠을 못 자시나 보군." 한 원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여기서 할 자리가 아니지 않소." 또 다른 원외는 대놓고 실소를 터뜨렸다. "선우탁 대협을 의심한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리요." 좌중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번졌다. 누군가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누군가는 대놓고 고개를 돌렸다. 한무진은 그 냉대와 조롱을 하나하나 견뎌야 했다. 그가 평생 쌓아온 신용도, 이 순간에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실보다 익숙한 명성을 더 믿었기 때문이다. 상단을 세우며 그가 지켜온 신조, '상인의 말 한마디는 은자 백 냥의 무게를 가진다'는 그 신조조차, 이 자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스승님의 명성이... 정말로 허상이었단 말인가.' 그는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가마 안에서 그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살고 있었고, 그의 세상만이 무너지고 있었다. 서른 해 가까이 사제로 지내며, 그는 선우탁을 아버지처럼 여겼다. 스승은 그가 처음 상단의 문턱을 넘던 날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 "상인의 검은 저울이다." 그 가르침 하나로 그는 지금의 한가를 일으켰다. 저울처럼 정직하게, 저울처럼 흔들림 없이 살라는 그 말을, 그는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그 가르침이, 실은 제자를 방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저울을 만든 자가, 정작 저울을 속이는 자였다면.' 그는 그 생각에 몸서리쳤다. 가마가 흔들릴 때마다 그의 속도 함께 흔들렸다. +++ 밤이 깊었다. 저택은 조용했으나 한무진의 방 안에서는 등불 하나가 밤새 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맥 중 가장 은밀한 정보통을 불러들였다. 대륙 곳곳의 뒷골목 소식을 파는, 늙은 정보상이었다. 그 노인은 낮에는 저잣거리에서 점을 봐주는 늙은이로 통했으나, 밤이 되면 은자만큼의 진실을 파는 자였다. "선우탁의 최근 행적을 알아봐 주시오." 한무진이 은자 꾸러미를 내밀며 말했다. "특히, 그가 최근에 만난 자들과, 배운 술법의 근본을 알고 싶소." 정보상은 은자를 받아들며 눈을 가늘게 떴다. 꾸러미의 무게를 손끝으로 가늠하는 그의 표정에는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 "위험한 부탁이오, 한 원외." 그가 낮게 말했다. "선우탁의 뒤를 캐다가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텐데." "알고 있소." 한무진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소." 정보상은 잠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 얼굴에는 이미 각오가 서려 있었고, 그것이 진심임을 노인은 알아보았다. "사흘 뒤에 다시 오시오." 정보상이 그렇게 말하고는 그림자처럼 자리를 떴다. 한무진은 그 사흘을 뒤척이며 보냈다. 잠자리에 누워도 눈은 감기지 않았고,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밤 도윤의 방을 지켰다. 유모가 놀랄까 싶어 발소리를 죽이며 문턱을 넘었고, 아기의 숨소리가 고른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환술로 흐려놓은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틀린 것이라면 좋겠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아기의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감쌀 때마다, 그는 그 온기에서라도 안심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사흘 후, 정보상이 가져온 소식은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노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고, 목소리는 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우탁이 최근 반년 사이, 신령지 비술의 원본이라는 고서를 은밀히 구했다는 소문이 있소." 정보상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고서의 이름이... '이안신령록(移眼神灵录)'이라 하더군." 한무진의 손끝이 떨렸다. 등불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이안(移眼)... 눈을 옮긴다는 뜻이 아닌가.' 그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잔치에서 스승이 도윤을 바라보던 그 눈빛, 그 이상하도록 집요한 시선이 이제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게다가 최근 그의 제자, 자네 아들 지호와 그가 은밀히 여러 번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소." 정보상이 덧붙였다. 한무진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숨이 목 끝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지호의 그 냉정한 눈빛이, 이제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릴 적부터 지호는 유독 말이 없었고, 그것을 그는 그저 성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그 침묵이, 실은 무엇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까지도...' 그는 차마 그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정보상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방 안에는 한무진 혼자 남았고, 등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조심스러운, 그러나 분명한 발소리였다. 한무진이 고개를 들었을 때, 문 앞에는 지호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으나, 그 뒤로 저택의 담장을 넘어오는 낯선 기척들이 하나둘 느껴지고 있었다. 바스락- 하는 소리가 담장 저편에서 연이어 들렸다. 횃불 빛이 마당 저편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한둘이 아니었다. 한무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설마... 벌써.' 그는 도윤이 잠든 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퇴로는, 이미 절반쯤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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