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백 일이 지났다.
한가의 저택은 그날을 위해 아침부터 붉은 등을 내걸었다.
대문 앞에서부터 마당까지 등불이 줄지어 매달렸고, 하인들은 그 아래를 종일 오가며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백일잔치는 원래도 큰 경사였으나, 도윤의 출생을 둘러싼 이변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유독 컸다.
그날 밤의 자줏빛 번개를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던 그 순간, 한가의 지붕 위로 떨어진 빛이 대낮처럼 마당을 밝혔다는 말이 성 안에 두루 퍼져 있었다.
하인들은 아기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히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행여 옷깃 하나 잘못 여며 불길한 조짐이라도 될까, 늙은 유모조차 손끝을 떨었다.
"장군감이시라던데, 어찌 이리 곱기만 하실까." 유모가 중얼거리며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갈무리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여종이 킥킥 웃었으나, 유모는 곧 정색하며 조용히 하라 눈짓했다.
이 집의 아기는 이제 예사 아기가 아니었다.
한무진은 아침 일찍 아기의 방으로 들어섰다.
부인이 도윤을 씻긴 뒤, 마른 천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는데, 부인이 아기를 위해 특별히 피운 향이었다.
"오늘은 눈을 좀 오래 뜨네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한무진은 방문턱에 잠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기가 이렇게 오래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아기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숨을 멈췄다.
도윤의 두 눈이, 하나로 겹쳐 보였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동공이 마치 거울처럼 정확히 겹쳐, 마치 하나의 눈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동(重瞳)이었다.
한무진은 고서에서 그 단어를 딱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상단을 이끌고 서역을 오가던 무렵 우연히 손에 넣은 낡은 책에서였다.
그 책의 저자는 중동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하늘이 내린 눈이라. 이런 눈을 가진 자는 반드시 세상을 바꾼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그는 그것이 자신의 핏줄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이... 정말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영감, 왜 그러세요?" 부인이 그의 표정을 보고 놀라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궁금함이 뒤섞여 있었다.
한무진은 대답 대신 손끝으로 아기의 눈꺼풀을 살짝 벌려 다시 확인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쌍둥이처럼 태어났던 두 개의 눈이, 백 일 만에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알기로, 중동을 타고난 이는 옛 기록 속에서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태어날 때부터 온전한 형태였다고 했다.
백 일에 걸쳐 서서히 겹쳐지는 눈이라니, 그런 이야기는 어떤 고서에도 없었다.
"이건... 축복이겠지요." 부인의 목소리에 기대가 실렸다.
그녀는 남편의 굳은 얼굴을 살피며 애써 밝게 말을 이었다.
"우리 도윤이가 큰 인물이 될 징표인 게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한무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서는 기쁨보다 불안이 먼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귀한 것일수록, 노리는 자가 많은 법이다.' 그것은 그가 상인으로서 평생 배운 이치였다.
상단을 이끌며 귀한 물건을 운반할 때마다 그는 늘 그것을 숨기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값나가는 것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다가 도적을 만난 동료 상인들을 그는 여럿 보았다.
아들의 눈이 그 이치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그는 자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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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숨기려 했으나 이미 산파의 입을 통해 대략적인 이야기가 새어 나간 뒤였다.
산파는 그날 밤 자신이 받아낸 아기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웃 여인들에게 술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점점 부풀었다.
누군가는 아기의 눈에서 빛이 난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기가 태어날 때 하늘의 별이 떨어졌다고도 했다.
한가의 문턱을 넘는 손님들마다 그 눈을 궁금해했다.
한무진은 애써 웃으며 손님들을 맞았으나, 속으로는 계속 무언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보여줘야 하나, 감춰야 하나.'
잔치를 치르는 내내 그 물음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스승 선우탁이 직접 저택을 방문했다.
제자의 백일잔치를 축하하러 온 것이라 했다.
선우탁은 마당에 들어서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로는 시종 하나가 따라붙어 조심스레 예물함을 받쳐 들고 있었다.
"자네 아들이 그렇게 귀한 것을 타고났다는 소문이 벌써 성 전체에 퍼졌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다.
한무진은 반갑게 스승을 맞았다.
두 손을 모아 깊이 허리를 숙이고, 마당 한가운데로 그를 안내했다.
"과장된 소문일 뿐입니다, 스승님." 그는 겸손하게 답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다.
선우탁은 그가 아는 몇 안 되는, 세상의 이치와 학문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그런 스승조차 소문을 듣고 이렇게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이, 한무진에게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선우탁은 아기를 안아보고 싶다 청했다.
한무진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스승의 청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부인에게 눈짓을 보내 아기를 데려오게 했다.
부인이 조심스레 도윤을 안고 나와, 선우탁의 두 손에 건넸다.
선우탁의 두 손에 도윤이 안겼다.
노인은 아기의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을, 한무진은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마당에 모인 다른 손님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한무진의 눈에는 그 시간이 유독 더디게 흘렀다.
"참으로... 대단하군." 선우탁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투에는 놀라움 이상의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한무진은 그것을 감탄이라 여겼다.
'스승님도 이런 눈은 처음 보시는 게지.'
그는 스스로 그렇게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아기를 돌려받는 순간, 선우탁의 손가락 끝이 아주 짧게 도윤의 눈가를 스쳤다.
스치듯-
그 감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무진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짧은 순간, 선우탁의 눈빛이 아주 미묘하게 변했다는 것만은 놓치지 않았다.
마치 값을 매기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제자, 이 아이는 조심히 키워야 하네." 선우탁이 말했다.
"세상에는 남의 것을 탐내는 자가 많은 법이지."
한무진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그는 그 말을 스승의 애정이라 여겼다.
젊은 시절부터 선우탁은 늘 그에게 조심성을 가르쳤고, 이번에도 그 연장선일 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 밤, 선우탁이 저택을 떠나며 마당을 돌아본 눈빛은 결코 애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등불에 비친 노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걷혀 있었고, 그 눈은 마당 깊은 곳, 도윤이 잠든 방을 오래도록 향해 있었다.
시종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야 노인은 겨우 몸을 돌려 대문을 나섰다.
지호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당 구석, 등불이 미치지 않는 그늘에 서서, 동생의 백일잔치를 위해 몰려든 손님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았다.
동생의 눈에 온 저택이 떠들썩한 것이, 그의 속을 조용히 긁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는 이런 소란이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저 평범하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성이 갓난아기 하나의 눈을 두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고작 눈 하나로..."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 목소리에는 부러움인지 서운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이는, 마당 구석에 서 있던 하인 하나뿐이었다.
하인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서둘러 등불의 심지를 다듬는 데 열중했다.
밤이 깊어지고 손님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에도, 한무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는 홀로 마당에 나와 선우탁이 떠난 대문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스승의 마지막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것이 단순한 기우인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를 예감한 것인지, 그는 판단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남의 것을 탐내는 자가 많은 법이지.'
스승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훈계로만 여겼으나, 지금 다시 떠올리니 어쩐지 그 말이 스승 자신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한무진은 그 생각을 애써 지웠다.
'설마, 스승님이.'
하지만 그 밤, 그는 끝내 도윤이 잠든 방문을 몇 번이나 열어 확인하고서야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