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이 된 기적의 아이

1화

묵천대륙 남쪽, 한가(韓家)의 아침은 늘 짐꾼들의 발소리로 시작되었다. 창고를 드나드는 수레바퀴 소리와 서기들의 붓 긁는 소리가 뒤섞여, 한가의 상단이 그날도 무사히 돌아가고 있음을 알렸다. 짐꾼 하나가 비단 더미를 지고 지나가며 목청을 높였다. "조심히 놓으라니까! 이거 하나에 은자 스무 냥이 걸려 있단 말이다." 동료가 뒤에서 낮게 대꾸했다. "알았으니 그만 소리치게. 어르신 들으시면 또 잔소리 늘어지네." 그 말대로였다. 한무진은 그 소음 한가운데 서서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화령경 후기의 수련자였으나, 그는 검보다 저울을 먼저 쥐는 사람이었다. 서기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 남쪽 상단에서 들어온 견직물 값이 어제와 다릅니다. 어찌할까요." 한무진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유를 물어보고, 그 다음에 값을 따지게." 서기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급하게 값만 따지면 사람을 잃는다.' 그것 역시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상인의 검은 저울이다." 그것은 그의 스승 선우탁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한무진은 그 말을 지금도 되새겼다. 왜냐하면 힘으로 얻은 것은 힘으로 빼앗기지만, 신용으로 얻은 것은 그렇지 않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선우탁은 그의 스승이자, 소령경 중기에 이른 이름난 수련자였다. 신령지(神灵指) 비술로 세 손가락만으로 화강암을 뚫는다는 소문이 대륙 전역에 돌았고, 한무진은 그런 스승을 삼십 년 가까이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검을 배우기 전에 먼저 사람을 배우게." 선우탁은 그렇게 말하며 어린 한무진의 손에 저울을 쥐여준 적이 있었다. 당시 한무진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가에는 오래된 그늘이 하나 있었다. 대를 이을 만한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자 한지호는 화허경 후기에 머물러 있었고, 성실했으나 천재라 부를 만한 구석은 없었다. 매일 새벽 검을 휘두르고, 밤이 늦도록 내공을 다스렸다. 그럼에도 경지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한무진은 그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탓하지 않았다. "애비는 화령경까지 십 년이 걸렸다. 너는 아직 시간이 있다." 그는 종종 그렇게 지호를 다독였다. 하지만 지호의 눈빛은 그 말에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만 밤이 깊으면 홀로 앉아, 가문의 대가 언젠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삼켰다. "영감, 오늘도 늦으시는 거예요?" 부인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곧 끝날 거요." 한무진의 목소리엔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부인의 배는 이미 크게 불러 있었다. 달이 다 차서, 언제 산기가 올지 모르는 몸이었다. "의원 말로는 며칠 안에 나온다더군요." 부인이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당신은 좀 쉬고 있으시오. 여기는 내가 마무리하겠소." 한무진이 붓을 내려놓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금만 참으시오. 이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말이, 너무 큰 바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아이만은 특별했으면 좋겠다.' 그는 속으로만 그렇게 빌었다. 부인이 옅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도 처음엔 평범했다면서요. 그런데도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한무진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부인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을 뿐이었다. +++ 밤이 깊었다. 부인의 방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산파가 급히 불려왔고, 한무진은 문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였다. 그는 몇 번이나 문에 손을 댔다가 다시 거두었다. '들어가 봐야 할까. 아니,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지호도 소식을 듣고 뛰어왔으나, 그의 얼굴엔 기대보다 무심함이 더 짙었다. "동생이 생긴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지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한무진은 그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들의 그 말이 오래도록 걸렸다. '저 아이도 나름의 상처가 있겠지.'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방 안에서 산파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부인의 신음이 한층 높아졌다. 하인들 몇이 물을 나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도 한무진은 문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르신, 안에 들어가 보시는 게..." 늙은 하녀가 조심스레 권했다. "아니다. 여인의 산실에 사내가 들 자리는 없다." 한무진은 그렇게 답하며 자리를 지켰다. 스승 선우탁이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다림도 무공이다. 참지 못하는 자는 결국 큰일을 그르친다." 그는 그 말을 곱씹으며 두 손을 굳게 쥐었다. 그때였다. 하늘이 갈라지듯 울었다. 쿠르릉- 먹구름 한 점 없던 밤하늘에, 자줏빛 번개가 내리쳤다. 한무진은 눈을 의심했다. 번개는 한 번이 아니었다. 연달아 세 번, 저택 마당의 나무를 태우고, 지붕의 기왓장을 흔들었다. 쩌적- 쿠르르릉- 불에 탄 나무 냄새가 순식간에 마당을 뒤덮었다. "이게 무슨..." 지호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잃었다. 하인들이 놀라 마당으로 뛰쳐나왔고, 개들이 미친 듯이 짖었다. 누군가는 바닥에 엎드려 하늘을 향해 손을 모았고,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재앙이 오는 겁니까!" 하인 하나가 겁에 질려 외쳤다. 한무진 역시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건 자연의 조화가 아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화령경에 이른 그의 기감이, 하늘의 이변을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읽어냈기 때문이다. 방 안에서는 부인의 마지막 신음이 터졌다. 산파가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아드님입니다!" 산파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 한무진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방으로 뛰어들었다. 방 안은 아직도 산기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부인은 지친 얼굴로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 곁에 갓난아기가 눕혀져 있었다. 갓난아기는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여느 아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무진이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하늘의 번개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마치 그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당의 소란도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개들의 울음소리마저 멈추었다. 한무진은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은 아직 감겨 있었다.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무엇이 있었기에, 하늘이 저리 울었을까.' 그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불안이 가슴 한켠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기대도 함께 스며들었다. 산파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저도 삼십 년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괘념치 마시게. 무사히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니." 한무진이 애써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향해 있었다. "이름은... 도윤이라 하겠소." 한무진이 아기를 안은 채 말했다. 부인은 지친 얼굴로 옅게 웃었다. "좋은 이름이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힘겨웠으나 따뜻했다. "하늘 도, 윤택할 윤이오. 하늘의 은혜를 입고 윤택하게 살라는 뜻으로 지었소." 한무진이 나지막이 설명했다. 부인이 손을 뻗어 아기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 아이도 언젠가 아버님처럼 훌륭한 상인이 되겠지요." 한무진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 하늘을 가른 번개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호는 문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번개가 그친 것도, 그저 우연이겠지.'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다독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만 그날 밤 그친 자줏빛 번개의 잔상이, 오래도록 그의 눈동자에 남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 지호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무진은 그날 밤을 결코 잊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의 시작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이후로, 한가의 하늘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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