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이 된 기적의 아이

4화

상단 연합의 봄맞이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한가의 마당은 등롱과 비단 휘장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붉은 비단이 처마 끝에서 바람에 흔들렸고, 그 아래로 등롱의 불빛이 은은하게 번져나갔다. 각지의 원외들과 표두들이 속속 도착했고, 술과 음식이 넘쳐났다. 누군가는 가마를 타고 왔고, 누군가는 표사들을 대동한 채 걸어왔다. 모두가 한가의 융성함을 눈으로 확인하러 온 자들이었다. 한무진은 손님들을 맞으며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는 오랜 세월 상단을 이끌어온 자였고, 표정을 다스리는 법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원외." "먼 길 오셨습니다, 표두." 인사말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하지만 도윤이 안겨 있는 부인의 곁을 그는 눈으로 계속 좇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잠깐이라도 부인에게서 떨어지면, 이내 다시 그쪽으로 되돌아갔다. '별일 없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소문은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사그라들 것이라 믿었다. +++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마당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커졌다. "한 원외, 소문이 자자하더군." 임대현이 술잔을 든 채 다가왔다. 그의 걸음은 이미 취기가 오른 듯 느슨했으나, 눈빛만은 또렷했다. 그의 목소리엔 은근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소문이야 늘 부풀려지는 법이지요." 한무진이 담담히 답했다. 그는 잔을 들어 답례하듯 가볍게 기울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손님을 응대하는 주인의 태도였다. "그렇다면 확인해보면 될 일이 아닌가." 임대현의 눈이 부인이 안고 있는 아기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보다 계산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아기의 눈을 좀 보여주시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의 잔이 멈췄다. 쨍- 하고 술병이 상 위에 닿는 소리마저 유독 크게 울렸다. 좌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한무진과 임대현 사이에서 오갔다. 악사들의 연주 소리조차 잠시 잦아든 것처럼 느껴졌다. 한무진은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아기는 아직 낮잠 시간입니다. 눈을 뜨지 않을 것입니다." "낮잠이라... 그렇다면 잠깐 눈을 열어보게 하면 될 일이지." 임대현이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오늘을 위해 준비를 해온 사람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굳이 참석한 이유도, 애초에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제가 직접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임대현이 부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발걸음이 유독 무겁게 들렸다. 부인의 팔이 반사적으로 아기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표정만은 애써 평온을 가장했다. "허락 없이 아이를 만지는 것은 예가 아니지요." 한무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게 깔렸다. "예? 상단 연합의 잔치에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 예가 아니라면..." 임대현이 비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그 손끝이 부인의 어깨에 거의 닿을 듯했다. +++ 그 순간, 지호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걸음은 서두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빠르기였다. "임 원외." 지호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낮고 정중했으나, 그 안에는 물러설 뜻이 없다는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동생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저희 한가에 대한 예도 아닙니다." 임대현은 잠시 지호를 노려보았으나, 곧 손을 거두었다. "허, 형제간의 우애가 남다르군." 그가 냉소를 지었다. "소문의 주인공을 저리 감싸는 것을 보니, 필시 사실이라는 뜻이겠지."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던진 말이었다. 몇몇이 낮게 웃음을 흘렸고, 몇몇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무진은 그 순간 지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뜻밖의 도움이었다. 평소 지호는 이런 자리에서 앞서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호가...' 그는 잠시 안도했다.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남이 동생을 지키려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오늘 벌어진 소동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지호의 표정을 본 순간 사라졌다. 지호의 눈은 임대현이 아니라, 부인의 품에 안긴 도윤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에는 형제의 정보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물건의 값을 재는 상인의 눈빛 같았다. 한무진은 그 눈빛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젊은 시절, 처음 상단을 물려받으며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눈빛과 닮아 있었다. '이문을 재는 데엔 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것이 상인의 도리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었다. 지호가 지금, 그 말을 몸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쓸데없는 소동이었소." 한무진이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그는 손을 들어 악사들에게 다시 연주를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임대현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술잔을 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탁- "소문이 진짜가 아니라면, 무엇이 두려워 감추는 것인가." 그가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한가의 막내가 하늘이 내린 눈을 가졌다는 소문,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륙의 경사요. 하지만 만약 거짓이라면, 한가는 대륙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 아니겠소!" 그의 목소리는 마당 전체에 퍼지도록 일부러 크게 낸 것이었다. 잔치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이 말을 듣고, 저마다의 판단을 내리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좌중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저리 감추려는 것부터가 수상하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 말들이 파도처럼 마당을 훑고 지나갔다. 한무진은 그 순간을 견뎌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한가의 신용을 결정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표사와 표두들이 오가는 상단 연합의 세계에서, 신용을 잃는다는 것은 문을 닫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제 아들의 눈이 어떻든, 그것이 대륙에 무슨 사기가 되는지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한무진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마당 구석까지 똑똑히 들렸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진실은 우리 가문의 것입니다.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정식으로 문파의 인정을 받은 자를 통해 청하시지요." 그 말에 임대현의 얼굴이 굳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임대현의 의도를 정면으로 되받아치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문파의 인정이라는 절차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소문은 자연히 식어갈 터였다. 임대현이 노리던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의 즉각적인 폭로였다. 그것이 무산된 셈이었다. "흥, 문파의 인정이라..." 임대현이 이를 갈듯 중얼거렸다. "좋소, 그렇다면 그리하지. 하지만 한 원외, 명심하시오. 이 소문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의 등 뒤로 몇몇 원외들이 따라붙었다. 그들 역시 오늘의 소동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흩어질 것이었다. +++ 결국 잔치는 어수선하게 끝났다. 등롱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상 위의 술병들도 하나둘 비워진 채 나뒹굴었다. 손님들은 돌아가며 저마다 다른 소문을 만들어냈다. 어떤 이는 한가의 아이가 하늘이 내린 눈을 가졌다 했고, 어떤 이는 그저 허황된 거짓이라 조롱했다. 가마에 오르며 킬킬거리는 웃음소리, 취한 목소리로 떠드는 말들이 마당을 떠날 때까지 계속 들려왔다. 한무진은 그 조롱들을 등 뒤로 흘려보내며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당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하나둘 꺼져가는 등롱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의 소동이 남긴 여파가 몸 안에 무겁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켠에는, 지호의 그 냉정한 시선이 계속 남아 있었다. 동생을 감싸주던 그 순간의 다정함과, 곧이어 도윤을 응시하던 그 서늘한 눈빛. 두 개의 얼굴이 지호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이, 한무진의 가슴을 찜찜하게 눌렀다. '저 아이가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불안이, 이제는 확신에 가까운 무게로 그의 가슴을 눌러왔다. 방 안의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 불안은 조금씩 더 짙은 그림자를 그의 얼굴 위에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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