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시한부라서, 일단 최강 찍었습니다

4화

우두둑, 우드드득...! 뭔가가 몸속에서 뒤틀리며 재조립되는 듯한 소리가 났는데, 그게 실제로 들린 소리인지 감각으로 느낀 소리인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뼈가 갈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근육 섬유 하나하나가 다시 짜여드는 소리 같기도 했는데,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순간 내 시야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해졌다는 것이었다. 강호진의 주먹이 다가오는 속도가, 방금 전까지는 눈으로 좇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낱낱이 보였다. 그의 손가락 관절이 하나씩 접히는 순서까지, 어깨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타이밍까지, 전부 하나의 그림처럼 눈에 박혔다. [사도위엄 발동 - 경지 견인 시작] [연체1중 → 연체9중] [예상 지속 시간: 산정 불가] '...이게, 되네...?' 하는 감탄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몸 안 어딘가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힘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 채로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태어나서 한 번도 운전해본 적 없는 차의 핸들을 급하게 붙잡은 기분이었는데, 그런데도 손발이 알아서 움직였다. 몸이 나보다 먼저 답을 알고 있었다. 퍼억! 강호진의 주먹을 맨손으로 막아냈는데, 정작 밀려난 건 그가 아니라 강호진 쪽이었다. 그의 발이 바닥을 세 걸음쯤 밀려나며 깊은 흠집을 남겼고, 그 자신도 그 결과에 가장 놀란 표정이었다. 그의 신발 밑창이 돌바닥을 긁으며 하얀 가루를 흩뿌렸는데, 그 가루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연무장 전체가 순간적으로 침묵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이었다. 조금 전까지 웅성거리던 관중석도, 야유를 던지던 입들도, 전부 얼어붙은 듯 멈춰 있었다. "...뭐지" 하고 강호진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는데,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가벼웠고, 마치 그동안 지고 다니던 모래주머니가 통째로 사라진 듯한 감각이었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또렷하게 감지됐다. "...더럽게 강하네, 이거"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반쯤은 감탄이었고, 반쯤은 자조였다. 시한부 근기를 가진 몸에서 이런 힘이 나온다는 게, 우습다면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강호진이 표정을 굳히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발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고, 팔을 가볍게 털어 근육을 풀더니,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방금 건 우연이었겠지" 라고 그가 스스로를 다잡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미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 확신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확신하고 싶어서 억지로 뱉어낸 말이라는 게 티가 났다. 그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연속 공격이었는데, 왼손 잽으로 시야를 흐리고 오른손으로 마무리하는, 딱 봐도 수백 번은 연습했을 조합이었다. 그 속도는 여전히 무시무시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움직임이 미리 계산된 경로처럼 보였다. 마치 몸이 나보다 먼저 알고 반응하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나는 이미 그 다음 수까지 눈앞에 그려지는 걸 느꼈다. 파그작! 그의 팔을 붙잡아 흘려보내며, 나는 반대편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힘을 실을 생각도 없었는데, 그 접촉만으로도 강호진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마치 그의 몸이 종이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손끝의 미약한 힘에도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콰악! 그가 바닥에 등을 대고 나동그라졌고, 연무장은 완전한 정적에 잠겼다. 관중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는데, 방금 전까지 나를 향해 야유를 보내던 사람들조차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누군가는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 정적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나는 그 사이 심장이 몇 번 뛰었는지도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강장로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반응을 보면서도, 정작 내 머릿속에서는 시스템 문구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강호진의 경지: 연체8중 확인] [백운비의 견인 경지: 연체9중 유지 중] [정기종 역사상 최초 도달 경지입니다.] 역사상 최초.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100일짜리 시한부 근기를 가진 몸으로, 정기종 역사상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그것도 정체불명의 시스템 힘을 빌려서 도달했다는 게, 이게 자랑인지 아니면 그냥 슬픈 코미디인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들은 평생을 바쳐도 못 오를 자리에, 나는 목숨을 담보로 잡히고서야 겨우 발끝만 담근 셈이었으니까. 강호진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를 올려다봤는데, 그 눈빛에서 분노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이 먼저 읽혔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세우는 그 동작조차 평소보다 느리고 부자연스러웠는데, 아마 방금 전의 충격이 몸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백 소협은 근기가 무너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말 무너진 게 맞으니까,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건 지금도 사실이야" 하고 나는 결국 짧게 대답했다. 사도위엄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에게도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나조차 이 힘의 정체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비무는 여기서 끝난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임장로가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백운비 종주의 승리입니다." 그 선언과 동시에 연무장 곳곳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졌는데, 그중 일부는 진심으로 놀라움에서 나온 것이었고, 일부는 방금 전까지 강호진 편을 들었던 사람들이 급하게 태도를 바꾸는 소리였다. 어제까지 나를 두고 "저러다 한 달도 못 버틴다"며 뒷담화를 하던 이들이,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쉽게 뒤집히는 걸 보면서, 나는 씁쓸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정재원의 표정을 슬쩍 봤는데,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뭔가 계산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유독 오래 내게 머물렀는데, 나는 그 눈빛 안에 담긴 게 단순한 놀라움만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승리의 함성이 이어지는 그 순간, 나는 몸 안에서 다시 뭔가가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힘이, 이번엔 역방향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도위엄 발동 종료] [근기 붕괴 진행률: 4% → 19%] 숫자가 순식간에 뛰어오른 걸 보며,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아까까지 가벼웠던 몸이, 이제는 모래주머니 대신 아예 바위 하나를 통째로 매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감각이 점점 무디게 변해가는 게 마치 몸의 전원이 하나씩 꺼지는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관중들은 그것을 승자의 여유로운 퍼포먼스쯤으로 오해한 모양이었지만, 정작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100일 시한부가 대체 며칠로 줄어든 거야, 지금...' 간단한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4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단 한 번의 발동으로 15퍼센트가 날아갔다는 건, 남은 시간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곱씹는 사이, 눈앞이 살짝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게 근기 붕괴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그냥 정신적인 충격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강장로가 급히 달려와 나를 부축했고, 그의 손끝에서 흘러들어오는 기운이 이번엔 붕괴가 아니라 진짜 치유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혈맥을 따라 퍼지는 게, 마치 얼어붙은 몸에 온수를 부어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손길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몸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다는 걸, 나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강장로의 기운이 아무리 흘러들어와도, 그 공백만큼은 채워지지 않고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승리는 승리다만... 네 몸이 이렇게 대가를 치르고 있었구나" 하고 강장로가 낮게 속삭였는데,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고, 대답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연무장 저편에서, 강호진이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이제 분노도 조롱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순수한 두려움과 의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향해 오만하게 웃던 남자가, 이제는 손끝을 미세하게 떨면서 내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짐승을 마주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볼 여력조차 없었다. 몸이 무너지는 감각과, 방금 얻은 승리의 무게가 동시에 어깨를 짓눌렀고, 그 두 개의 감각 사이에서 나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힘을 계속 쓴다면, 100일이라는 시한이 훨씬 더 빠르게 줄어들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이 힘을 놓을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이미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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