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시한부라서, 일단 최강 찍었습니다

3화

사흘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지나갔는데, 그 이유는 아마 내가 그 시간의 대부분을 사도위엄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데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면 알림창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밥을 먹으면서도 속으로 조건을 재조합해봤으며, 잠들기 직전까지도 "발동 조건이 뭐냐"고 되물었다. 문제는 그 발버둥이 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은 내가 알림창을 향해 아무리 물어봐도, "발동 조건은 자동 감지된다"는 말 외에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고, 나는 그 뻔뻔할 정도로 간결한 문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곱씹으며 이걸 신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동 감지라니. 그럼 대체 뭘 감지한다는 건데. 위협인지, 살기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를 재는 건지,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것을 완전히 신뢰할 수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로 비무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기종 연무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정기종의 제자들뿐 아니라, 청풍진 마을 사람들까지 소식을 듣고 몰려온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 인파를 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종주 계승식이 이렇게까지 큰 구경거리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연무장 주변의 나무 담장 위에까지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고, 어른들은 서로 어깨를 밀치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짐을 지고 아예 도시락까지 싸온 눈치였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저들에겐 그냥 오늘의 여흥거리쯤인 모양이었다. "저자가 백월 어른의 아들이라며?" 하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는데, 그 말투에는 존경보다는 호기심, 혹은 그보다 더 안 좋은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근기가 무너졌다던데, 저 몸으로 강 소협을 이길 수 있나." "이길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저 나이에 종주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 연무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서 있던 정재원이라는 제자, 정기종 제7제자이자 청풍진의 유력 인사인 정상호의 아들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였다. "강 형님이 지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백 소협은 그냥 얌전히 물러나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텐데요." 하고 정재원이 말했다. 그 말에 주변 몇몇이 낮게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서,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걸음마다 발밑에서 흙먼지가 조금씩 일었고, 그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반대편에서 강호진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걸음걸이 하나에도 자신감이 흘러넘쳐서, 나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깨를 펴고 걷는 방식,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흔들림 없이 다가오는 그 태도, 그 모든 것이 "나는 이미 승부를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무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 3분] 그 문구를 보며 나는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위협 수준이 일정 이상일 때 자동 감지된다'는 조건이 정확히 어느 선에서 작동하는지 나는 여전히 몰랐다. 그게 상대의 살기 세기일 수도 있고, 내 목숨이 실제로 위험해지는 정도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둘 다를 합친 뭔가 복잡한 수식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비무가 아무리 치열해도 목숨이 걸린 게 아니라면 사도위엄이 발동조차 안 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나를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종주 자리는 걸려 있어도, 목숨은 걸려 있지 않은 비무. 그런 게 존재한다면, 나는 그냥 얌전히 얻어맞다가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결말이라고, 나는 속으로 억지스러운 위안을 삼아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준비되셨습니까." 하고 강호진이 물었는데, 그 존댓말이 오히려 더 얄궂게 들렸다. 존댓말을 쓰면서도 눈빛에는 이미 승자의 여유가 가득했으니까. "준비 안 됐으면 어쩔 건데." 하고 나는 대충 반말로 받아쳤다. 어차피 이 비무가 정중하게 흘러갈 리도 없었으니,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강호진은 그 말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판 역할을 맡은 임장로가 손을 들며 비무 시작을 알렸다. 연무장 전체가 순간적으로 조용해졌고,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내 심장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걸 느꼈다. [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강호진의 첫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연체8중이라는 경지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는지 나는 이제야 눈앞에서 실감했는데,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공기가 아예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퍼억!! 간발의 차이로 몸을 틀어 피했지만, 그 주먹이 지나간 자리의 바닥이 움푹 꺼져 있는 걸 보고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게 정통으로 맞았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흙덩이가 튀어 내 발밑까지 굴러왔고, 나는 그것을 밟은 채로 겨우 균형을 잡았다. [경고: 신체 손상 위험도가 상승했습니다.] 시야 한켠에 그 문구가 떠올랐고, 나는 그것을 보며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위험도가 상승한다는 건, 사도위엄의 발동 조건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마치 게임 속 보스전에서 체력이 떨어질수록 특수 스킬이 발동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까, 하는 실없는 비유가 머릿속을 스쳤다. 다만 그 게임 속 주인공은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위험해지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계산이 섰지만, 그건 동시에 조금 더 죽음에 가까워지는 계산이기도 했다. 이 애매한 균형 위에서, 나는 강호진의 두 번째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던지듯 물러섰다. 콰크작!! 연무장 바닥이 다시 한번 파헤쳐졌고, 관중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 탄성이 나를 향한 것인지 강호진을 향한 것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저게 사람 손인가" 하고 중얼거렸고, 또 누군가는 "저러다 백 소협 진짜 죽는 거 아니냐"고 걱정 반, 흥미 반의 목소리로 말했다. "백 소협, 이 정도로도 벌써 숨이 가쁘신 모양이군요." 하고 강호진이 여유롭게 말을 걸었는데, 그 말투에서 조금의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를 상대라기보다는 잠깐의 여흥거리로 취급하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근기가 붕괴된 몸으로 정상적인 내공 운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 순간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어긋난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리는 이미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전생의 회사원이었던 기억으로도, 이번 생의 백운비로서의 기억으로도, 이런 압도적인 실력차를 극복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원 시절엔 상사의 갑질을 견디는 게 최대의 위기였지, 목숨을 걸고 주먹을 피해야 하는 상황 같은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세 번째 공격이 들어왔을 때, 나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퍼억! 어깨에 강호진의 발끝이 닿았고, 나는 그대로 옆으로 나동그라지듯 밀려났다. 바닥을 굴러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어깨에서부터 팔 전체로 마비된 듯한 감각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모래주머니 하나가 팔 전체에 매달린 것 같은 무거움이었다. 손끝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반응이 느렸고, 그 느림 자체가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관중들 사이에서 이번엔 야유가 섞인 웃음소리가 터졌다. "저럴 거면 그냥 종주 자리 내려놓지 그러나."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말에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 냉정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화를 낼 힘조차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죽거나, 이대로 가면 종주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둘 다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네.'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던 그 순간, 강호진이 마지막이라는 듯 자세를 낮추며 진짜 살기를 담은 일권을 준비하는 게 보였다. 그의 눈빛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는 여유와 유희가 섞여 있었다면, 이번엔 그런 것들이 전부 사라진, 순수한 살의만 남은 눈빛이었다. 그 살기가 처음으로 진짜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걸, 나는 온몸의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피부가 저릿저릿했고, 뒷목의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으며,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질 만큼 공기가 무거워졌다. [사도위엄 -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 문구가 시야 정중앙에 떠오른 순간, 나는 몸속에서 뭔가가 뒤집히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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