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억만장자 복수극

3화

강남의 슈퍼카 렌트 업체 세 곳 중 두 곳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첫 번째 곳은 신호음이 열 번 넘게 울리다가 끊겼다. 두 번째 곳은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영업시간이 지났다는 뜻인지, 그냥 전화를 받지 않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액정을 들여다보며 통화 목록에 쌓인 부재중 표시 두 개를 확인했다. 초조함이 아니라 계산이 먼저 움직였다. 세 번째 업체까지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다른 방법이라는 게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 번째 업체가 받았을 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사업가처럼 말했다. "롤스로이스 팬텀, 하루 대여 가능한가요." 상담원은 익숙한 톤으로 견적을 불렀다. 일일 대여비 백팔십만 원, 기사 별도 삼십만 원, 보증금 오백만 원. 보증금은 반환된다지만 당장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숫자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머릿속에서 숫자를 굴렸다. 백팔십에 삼십을 더하면 이백십. 여기에 보증금까지 잡히면 통장은 순식간에 바닥을 보일 것이었다. 나는 이 업계를 조금 알았다. 대리점에서 일하며 슈퍼카를 모는 손님들을 종종 만났고, 그들 중 몇몇이 실은 그 차를 소유한 게 아니라 렌트해서 타고 다닌다는 걸 눈치챈 적도 있었다. 명품 케이스에 든 아이폰을 사면서도 요금제는 가장 저렴한 걸 고르는 그런 손님들이었는데, 나는 그 모순을 겉으로는 웃으며 대응했지만 속으로는 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 사람의 진짜 자산은 얼마일까, 저 허세의 원가는 얼마일까 하는 계산이었다. 렌트 딱지가 붙은 임시 번호판을 알아보는 눈도 그때 생겼다. 앞자리 숫자 배열이 조금 다르고, 색이 미묘하게 밝은 그 번호판을 손님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늘 그걸 먼저 봤다. 남의 허세를 감별하는 눈이 내 몸에 배어 있었다는 걸, 이제 와서 내가 그 허세를 만들려고 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주말에 가능할까요." 나는 물었다. "토요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상담원이 대답했다. "단, 예약금 삼십 퍼센트를 먼저 넣어주셔야 합니다." 오십사만 원. 나는 계좌 이체를 하며 손끝이 저릿한 걸 느꼈다. 화면에 뜬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짧은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통장 잔고가 눈에 보이게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이체 완료 알림이 뜨고, 잔액 숫자가 바뀌는 걸 나는 몇 초간 그대로 바라보았다. 이 돈이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이대로 허공에 흩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음은 비서 역할이었다. 나는 배우 캐스팅 플랫폼에 '기업 행사 모델, 비즈니스 이미지, 영어 가능자' 조건으로 공고를 올렸다. 하루도 안 돼서 스무 건이 넘는 지원서가 들어왔는데, 대부분은 프로필 사진과 소개글의 온도가 맞지 않았다. 화려한 사진 밑에 어색한 자기소개가 붙어 있거나, 반대로 진지한 이력 밑에 스냅사진 같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중 눈에 들어온 프로필이 하나 있었다. 윤하나. 해외 교포 출신, 금발, 안경, 하이힐 착용 사진. 프로필 소개란에 미국 서부 출신으로 십오 년을 살다 왔고, 비즈니스 영어와 접객 경험이 풍부하다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가 아니라 익숙한 무대를 마주한 사람의 여유처럼 보였다. 미팅은 강남의 카페에서였다. 그녀는 정말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고, 무엇보다 말투가 능숙했다. 자리에 앉는 동작부터 달랐다. 의자를 당길 때 소리가 나지 않게,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각도까지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사소한 동작 하나에서 이미 그녀가 이 일을 처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짐작했다. "제가 원하는 컨셉이 뭔지 정확히 말씀해주시면, 그대로 연기해드릴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 말투에는 프로다움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프로다움에 안심이 됐다. "저는 억만장자 사업가고, 당신은 제 개인 비서예요." 나는 준비해온 설정을 설명했다. "주로 영어로 응대해주시고, 제 옆에서 스케줄을 확인하는 척해주시면 됩니다. 상대는 제 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새 남자예요." 말을 뱉는 순간 목구멍이 조금 뜨거워졌다. 남에게 이 계획을 소리 내어 설명하는 건 처음이었고,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계획이 더 이상 머릿속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일처럼 느껴졌다. 윤하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케이스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런 의뢰, 생각보다 많아요." 그 말에 나는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내가 하는 일이 유치하고 특별하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반복되는 흔한 이야기 중 하나라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었다. 나만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죄책감보다 안도감을 먼저 불러왔다. "보통 어떤 분들이 이런 걸 의뢰하시나요." 나는 궁금증을 못 참고 물었다. "이유는 다 비슷해요." 그녀가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말했다.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죠. 전 여자친구, 전 남자친구, 옛 상사, 옛 동창. 대상만 다르고 이야기는 똑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셈을 하나 했다. 이 판에 뛰어든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면, 이 시장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이 여자가 한 달에 몇 건이나 이런 의뢰를 받는지, 회당 오십만 원이면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쓸데없는 계산이었지만,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격은 이런 순간에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출연료는 하루에 오십만 원이었다. 비싸다고 느꼈지만, 그녀의 억양과 표정 연기를 직접 보고 나서는 그 값이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 바로 섰다. 그녀가 잠깐 시범으로 "Mr. Kim, your afternoon schedule has changed."라고 말하는 순간, 억양의 높낮이와 손짓의 타이밍이 완벽했다. 연습이 아니라 몸에 붙은 습관 같았다. "계약금 먼저 넣어주시면 될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날 저녁 이십오만 원을 이체했다. 이체 문자를 확인한 그녀가 짧게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그 문자에서도 나는 진심이 얼마나 담겼는지를 반사적으로 재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에는 감사함이 딱 필요한 만큼만 담겨 있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업무적으로 정확한 양이었다. 남은 건 기사였다. 렌트 업체에서 소개해준 기사는 박덕수라는 사람이었다. 사십 대 중반, 아르마니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남자였고,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렌트 업체 로고가 박힌 태블릿을 꺼내 계약 조건을 화면으로 보여주며 설명했다. 손동작이 절제되어 있었고, 말을 아끼는 타입이었다. 그는 렌트 업체 소속으로 이미 대여비에 포함된 인력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따로 부탁할 게 있었다. "번호판을 임시로 바꿀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확히는 진짜 소유주처럼 보이게, 렌트 표시가 나는 임시 번호판이 아니라 일반 자가용 번호판처럼 보이는 것으로 바꿔달라는 부탁이었다. 박덕수는 잠시 나를 훑어봤다. 그 시선에는 판단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이 뭘 하려는 건지, 위험한 일인지, 돈이 될 일인지를 재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받으며 속으로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저 사람이 거절할 확률과 받아들일 확률, 그 사이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최대 금액. "그런 건 규정 위반인데." 그가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추가 수당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바로 숫자를 꺼냈다. "육백만 원." 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미세했지만 분명히 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그 짧은 동작이, 그가 이미 머릿속으로 육백만 원의 쓸모를 계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흔들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이 협상이 이미 끝났다는 걸 알았다. 값을 부르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그 선이 어디서 그어지는지는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토요일이죠." "토요일입니다. 오후 두 시부터." "번호판은 제가 아는 데서 구할 수 있어요. 대신 이건 현금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이라는 말에 다시 계산이 시작됐다. 육백만 원을 현금으로 준비하려면 통장에서 인출을 나눠서 해야 할 것이었다. 하루에 인출 가능한 한도가 있었으니까. 나는 그날 밤 통장을 다시 확인했다. 예약금, 계약금, 추가 수당까지 합쳐서 이미 삼백만 원 가까이 빠져나가 있었다. 남은 돈은 사백이십만 원. 이걸로 남은 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인출 한도, 현금 준비, 나머지 잡비까지 더하면 여유는 거의 없었다. 답은 아슬아슬했다. 셈이 빠듯하게 나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그 숫자를 몇 번이고 되짚었다. 이 정도까지 돈을 쓰면서 내가 얻으려는 게 뭔지, 그 질문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답을 내리기도 전에 잠이 몰려왔다. 계산은 냉정했지만 그 계산 뒤에 숨은 감정까지는 나도 정확히 셈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렌트 업체에서 문자가 왔다. 토요일 예약된 롤스로이스가 정비 이슈로 하루 밀릴 수 있다는 통보였다. 나는 그 문자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정비 이슈라는 짧은 단어 뒤에 숨은 가능성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펼쳐졌다. 엔진 문제일 수도 있었고, 사고 이력이 있는 차라 갑자기 점검이 필요해졌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였다. 토요일이 하루 밀린다는 건, 이미 계약금을 넣은 윤하나의 스케줄과 육백만 원을 부른 박덕수의 스케줄까지 전부 다시 맞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상대방, 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새 남자를 만나기로 한 그 자리도 다시 조율해야 했다. 계획이 흔들리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셈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나는 문자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다음 전화를 어디에 걸어야 할지부터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