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노예인데 은둔고수라니

3화

뒷산 계곡 아래, 시신은 이미 수습되어 있었다. 핏자국만이 마른 흙 위에 검붉게 눌어붙어, 그날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장원은 곽철산의 명으로 물동이를 나르며 현장 근처에 있었다. 종의 신분으로도 접근이 허락된 것은, 단순한 잡일 때문이었다. 물을 긷고, 흙을 덮고, 심부름을 하는 일.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귀는 열려 있었다. 곽철산과 용비호, 두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장원은 물동이를 내려놓지 않은 채, 발걸음을 최대한 늦추었다. "이번이 몇 번째입니까." 용비호가 낮게 물었다. "서른둘째올시다." 곽철산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무게가 실렸다. 평소의 그 담담함과는 달랐다. 서른두 명. 장원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동이를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흔들리는 수면 위로,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모두 같은 상흔입니다. 목덜미에 작은 침 자국. 그리고 체내 혈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지요." 곽철산이 담담히 설명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시신을 대해온 자의 무감함이 배어 있었다. "흡혈……" 용비호가 짧게 내뱉었다. 그 한 단어에 장원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곡 내부에는 함구령을 내렸으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용비호가 낮게 한숨을 삼켰다. "곡도들의 입이 가볍다는 것을 곽 대주도 잘 아실 텐데." "압니다. 하나 지금은 방법이 없지요." 침묵이 흘렀다. 계곡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곽철산이 물동이를 들고 있는 장원을 문득 돌아보았다. "너." "…예." 장원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요즘 이 근처에서 낯선 자를 본 적 있느냐." 장원은 잠시 침묵했다.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시야 한쪽에 글자가 떠올랐다. [위협 감지 범위 내 진입: 미지의 기운 포착] 붉은 글자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숲 저편, 나무 그늘 아래. 허리가 굽은 노파 하나가 술동이를 지고 서 있었다. 인기척 없이, 아주 조용히. 낡은 회색 저고리에, 지팡이도 없이 굽은 등을 하고서. 얼핏 보면 그저 산나물을 캐러 나온 노인네처럼 보였다. 장원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누구의 눈에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노파였다. 곽철산도, 용비호도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장원의 시야에만, 그 존재 위로 붉은 경고문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활자가 허공에 새겨진 듯,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물동이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노파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 눈만이, 아주 천천히, 장원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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