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노예인데 은둔고수라니

1화

흑매곡 산성의 새벽은 늘 축사 냄새로 시작되었다. 말과 돼지가 뒤섞인 냄새가 낮은 담을 넘어 마당까지 스며들었다. 그 냄새에 익숙해진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장원은 마당 한쪽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질 한 번, 나무가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 한 번. 퍽. 팔뚝에 힘을 실을 때마다 어깨가 뻐근하게 당겨졌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종이 게을러 보이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이미 몸으로 배운 뒤였다. 퍽. 퍽. 그때마다 시야 한 귀퉁이에 흐릿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공덕값 +1]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구였다. 장원만이 볼 수 있는 창(窓)이었다. 이전 세계에서 게임을 하던 소년은, 이 낡은 산성의 종으로 눈을 뜬 뒤부터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뺨을 때려도 그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리고 이 창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무기였다. 종의 신분으로 살아남는 법은 하나였다. 아무것도 아닌 척 하는 것. [구공신공(九空神功) 진기 축적률 3.2%] 장원은 도끼를 내려놓고 잠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힘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3.2퍼센트.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나 처음 이 산성에 왔을 때는 0.1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속도였다. 장작을 팰 때마다 아주 조금씩 쌓이는 진기. 물을 길을 때마다, 마당을 쓸 때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허드렛일에 불과한 그 순간들이 장원에게는 전부 수련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움직이는 다리. 남들보다 조금 무거운 것을 나르는 팔.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직 없었다. 장원은 일부러 동작을 느리게 만들었다. 힘을 다 쓰지 않고 칠 할만 썼다. 나머지 삼 할은 늘 감춰두었다. 들키면 끝이다. 종의 몸에 무공의 기운이 흐른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되는 순간,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장원아!" 마당 저편에서 김돌쇠가 뛰어오고 있었다. 열두어 살 남짓한 몸집이 휘청거렸다. 발이 흙바닥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무언가에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장원은 도끼를 내려놓았다. 도끼날이 나무 그루터기에 박히며 낮게 울렸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뛰어와."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이미 상황을 가늠하고 있었다. 평온함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산성에서 평온함이란 늘 짧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제나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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