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도륵이라는 사내는 첫 인상부터 시비였다.
키는 도맹보다 조금 작았지만 근육의 밀도는 오히려 더 짙어보였다. 팔뚝에 새겨진 흉터 자국이 다섯 줄, 볼에 두 줄, 이마에 한 줄. 걸음걸이만 봐도 자신감이 넘쳤다. 어깨를 흔들며 걷는 그 모습이, 마치 이 부족 전체가 자기 발밑에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이게 여덟 마리 빙아랑을 잡았다는 놈인가."
"네, 저인데요."
"흉터 하나 없는 걸 보면 운이 좋았던 거겠지."
[아니,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실력이 좋았던 겁니다만.]
라고 속으로 정정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여기서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흉터가 훈장처럼 취급되는 부족이라니, 원래 세계였다면 병원 응급실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이 여기서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세상이 참 요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도 속으로만 삼켰다.
"운이든 실력이든, 확인해보면 알겠지."
도륵이 팔짱을 끼며 도맹을 향해 말했다.
"제1광전사, 이 애송이를 이번 원정에 데려가겠소."
도맹이 살짝 눈썹을 올렸다.
"원정이면 북쪽 대설한 말인가."
"그렇소. 겨울 전 마지막 큰 사냥이오. 이번에 큰 걸 못 잡으면 마을 전체가 굶는다는 건 도맹도 알고 있겠지."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방금까지 시비를 걸던 도륵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뭔가 더 무거운 것이 들어앉았다. 도륵이 나를 다시 흘겨봤다.
"검은 눈, 데려가서 뭐가 되는지 보자. 진짜 실력이 있는 놈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애송이인지."
[제 이름은 장무적입니다만, 검은 눈이라고 부르는 게 벌써 세 번째군요.]
하지만 여기서도 참았다. 이 부족에서 나는 아직 신뢰라는 걸 쌓아야 하는 처지였다. 이름 하나로 실랑이를 벌이는 건 여기서는 사치였다.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좋다, 아니고 나쁘다도 없다. 명령이다."
도륵이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눈밭 위로 성큼성큼 멀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나는 도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맹이 그 뒷모습을 보며 나에게 슬쩍 말했다.
"저 놈이 원래 그렇게 시비조다. 신경 쓰지 마라."
"저를 왜 데려가는 걸까요?"
"시험이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놈 중 힘 좀 쓴다는 놈들은 다 저 원정에 한 번씩 끌려간다. 도륵 나름의 신고식이지."
"통과하지 못하면요?"
도맹이 어깨를 으쓱했다.
"통과 못 하면 마을에서 나갈 각오를 해야 하겠지. 그게 이 부족의 방식이다. 실력이 없으면 자리가 없다."
[실력지상주의라는 거 참 여기저기 다 있네.]
원래 세계에서도 그랬다. 강한 자만이 존중받고, 강한 자만이 자리를 지킨다. 여기 와서도 똑같은 논리를 만나니 이상하게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적어도 여기서는 학벌이나 인맥 같은 건 안 통한다는 뜻이니까.
"뭘 준비해야 합니까?"
"몸만 챙겨라. 장비는 부족 창고에서 내줄 거다."
도맹이 짧게 답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날 밤, 배정받은 움막 안에서 창끝을 손질하며 생각했다. 왕급이니 뭐니 하는 말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저 큰 사냥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부족, 새로운 시험. 지겹도록 반복되는 패턴이었지만 매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
출발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원정 인원은 여섯. 도륵을 포함해서 부족 내에서도 손꼽히는 사냥꾼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나를 곁눈질로 흘겨보는 게 느껴졌다. 검은 눈, 흉터 없음, 그리고 정체불명의 신입. 세 가지 조건이 겹치니 아무도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한 명은 팔뚝만한 창을 짊어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뭔가 얼음처럼 투명한 도끼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어디서 구한 물건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 부족에서는 질문 하나에도 자격이 필요한 것 같았으니까.
도륵이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목표는 북쪽 대설한 안쪽의 백강웅(白岡熊)이다. 한 마리만 잡아도 마을 전체가 겨울을 넘길 수 있다."
"백강웅이 그렇게 큰가요?"
"보면 안다."
짧은 대답이었다. 다른 전사 하나가 옆에서 킥킥거렸다.
"애송이가 겁먹었나 보네."
[아니, 그냥 정보가 필요해서 물어본 거거든요.]
라는 말은 삼켰다. 여기서 대꾸했다가는 그 자체로 트집거리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대신 발걸음을 조용히 옮기며 눈밭을 살폈다.
대설한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고, 바람은 살갗을 벨 듯이 날카로웠다. 얼굴에 닿는 바람마다 칼로 긋는 듯한 통증이 스쳐 지나갔고, 입김은 나오는 즉시 하얗게 얼어붙어 시야를 가렸다. 다른 전사들은 이 정도 추위에도 익숙한 듯 걸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그 체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 만했다. 나는 몇 번이나 발이 눈 속에 파묻혀 넘어질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도와줄 생각도 없다는 게 걸음걸이에서부터 드러났다.
반나절을 걷고 나서야, 도륵이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저기."
그가 가리킨 방향에, 눈밭 위에 남은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 두 명 폭은 될 만큼 컸다. 발자국 하나의 깊이만 봐도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짐작이 안 될 정도였다.
"백강웅의 흔적이다. 크군."
다른 전사 하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보통보다 배는 크겠는데."
도륵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자신감 넘치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이 스쳤다. 방금까지 나를 향해 던지던 시비의 눈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선 신중함이 자리잡았다.
"보통 크기의 백강웅이라도 우리 여섯 명이 목숨 걸고 잡아야 하는 상대다. 이건···."
그가 말을 멈추고 발자국을 다시 살폈다. 무릎을 굽히고 손끝으로 눈을 헤집으며, 발자국의 깊이와 폭을 재는 듯한 손짓을 반복했다.
"이건 전설 속에 나오는 왕급(王級) 백강웅일 수도 있다."
"왕급이면요?"
"삼십 년 전, 우리 부족 최고 사냥꾼 열 명이 왕급 백강웅 한 마리한테 몰살당한 적이 있다."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람 소리만이 그 침묵을 대신 채웠다. 휘이잉.
다른 전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 중 아무도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마을의 겨울이 이 원정에 걸려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굶어 죽는 것과 물려 죽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얼굴들이었다.
도륵이 나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검은 눈, 겁나면 지금 돌아가도 좋다."
[겁이야 나죠. 근데 그거랑 돌아가는 거랑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안 돌아갑니다."
"흥, 그럼 따라와라. 죽어도 원망은 하지 마라."
도륵이 다시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머지 전사들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행군이었다.
걷는 내내 발자국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 발자국 사이사이에, 핏자국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직 굳지 않은, 최근의 핏자국이었다. 붉은색이 흰 눈 위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누군가 캔버스 위에 붓을 아무렇게나 흩뿌린 것처럼.
"뭔가 잡았나 보군."
다른 전사 하나가 낮게 말했다.
"이 근처에 최근에 순찰하던 다른 부족이라도 있었나?"
도륵이 발자국 옆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들었다. 부서진 창끝이었다. 오금족의 것과는 다른 형태였다. 날의 각도도, 손잡이와 연결되는 부분의 문양도 우리 부족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건 우리 부족 게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백강웅이 다른 부족 사냥꾼을 이미 삼켰다는 뜻이다."
일행 전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침을 삼켰고, 누군가는 무기를 고쳐 잡았다. 나 역시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지만, 그게 추위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보라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