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설원 야만족의 무적자

3화

도맹이라는 남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낯익다고 느꼈던 이유를, 나는 이틀 만에 깨달았다. 대웅 대장이랑 똑같았다. 말투는 무뚝뚝하고, 행동은 대충인데, 이상하게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따르는 그런 유형. 원래 세계의 대장도 그랬다. 근거 없이 사람을 믿고, 그 믿음이 결국 맞아떨어지는 그런 인간. 처음엔 그냥 우연히 비슷한 인상인가 싶었는데, 하루 이틀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걸음걸이, 물건을 던지듯 건네는 습관, 말을 아끼는 방식까지 똑같았다. 마치 이 세계가 나한테 "봐라, 이런 인간이 또 있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도맹은 나를 자기 오두막 옆에 딸린 작은 창고에 재웠다. 창고라고는 해도 짐승 가죽이 두 겹으로 깔려 있어서 그럭저럭 잘 수는 있었다. 가죽에서는 짐승 특유의 노린내가 진하게 났는데, 이상하게 며칠 지나니까 그 냄새가 익숙해졌다. 사람은 참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첫날 밤, 도맹이 창고 문 앞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검은 눈이라고 해서 다 요괴는 아니다." 그 말투가 어찌나 태연한지, 마치 어제 날씨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문틀에 등을 기댄 채, 도끼를 무릎에 걸쳐놓고,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당신은 안 무서우세요?" "뭐가." "제가 사실 요괴일 수도 있잖아요." 도맹이 도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손끝으로 나무 결을 훑는 그 동작이 무심하면서도 습관적이었다. "요괴면 죽이면 된다. 그게 무서울 게 뭐가 있나." [아, 이 사람 정말 무섭게 상식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세계 대장이랑 진짜 똑같았다. 대웅 대장도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했다. 의심은 나중에, 일단 겪어보고. 그리고 겪어본 다음엔 뒤도 안 돌아보고 믿어버리는 스타일. 나도 그런 식으로 부대에 들어갔었다. 서류도 없이, 신원 조회도 없이, 그냥 "쓸모 있어 보이니까"라는 이유로. "제1광전사시라고 들었는데요. 이 부족에서 제일 강하신 건가요." "지금은." 짧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 끝이 살짝 가라앉았달까. "지금은 이라니요." 도맹이 눈썹을 슥 올렸다. "이찬 시절엔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찬이 살아 있던 시절엔, 제1광전사라는 자리 자체가 없었다. 이찬 혼자로 충분했으니까." "그 이찬이란 사람, 대체 뭘 한 사람인데요." 도맹이 잠시 말을 멈췄다. 눈빛이 순간 아득해졌다. 밤하늘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먼 과거의 어느 장면을 더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백 년 전, 오금족이 지금 위치의 다섯 배가 넘는 땅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 모든 걸 지킨 사람이다. 검은 눈,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몸짓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몸짓이 다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글쎄. 나도 전승으로만 들어서." 도맹이 어깨를 으쓱했다. "할머니가 그러셨다. 이찬의 무공은 힘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물이 흐르듯, 바람이 지나가듯, 그렇게 사람을 상대했다고. 우리 오금족의 무공은 다 힘으로 부딪히는 건데, 이찬은 그렇지 않았다더군." [그거 완전 나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원래 세계에서 내가 배운 무공도, 딱 그런 식이었다. 부딪히기보다 흘리고, 막기보다 비켜서는 그런 방식. 대웅 대장 밑에서 배운 그 흐름, 그 리듬. 이백 년 전 사람이 그걸 알고 있었다니, 아니 그보다 이 세계 자체가 그런 무공을 이미 알고 있었다니.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또 무슨 오해를 살지 몰라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검은 눈만으로도 이미 요괴 취급받을 판인데, 이찬을 흉내내는 사기꾼처럼 보이면 더 골치 아파질 게 뻔했다. "이찬은 어떻게 됐는데요." "모른다." 도맹이 딱 잘라 대답했다. "어느 날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시체도, 흔적도, 아무것도 없이. 그날 이후로 오금족의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지." 그 말을 하는 도맹의 목소리에 원망도, 슬픔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투였다. 그런데 그게 더 무겁게 들렸다. *** 다음 날 아침, 도맹은 나를 마을 창고 쪽으로 데려갔다.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뭔가 잘못 봤나 싶었다. 텅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옥수수처럼 보이는 곡물 몇 자루와 말린 고기 몇 덩어리가 전부였다. 마을 사람 숫자를 생각하면 며칠도 못 버틸 양이었다. 나는 곡물 자루 하나를 들어봤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웠다. 원래 세계 부대에서 보급이 끊겼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게 겨울 대비 창고인가요?" "맞다." 도맹의 표정이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씁쓸함도 아니고, 화도 아니고, 그냥 무겁게 눌린 얼굴이었다. "올해는 사냥감이 유독 없었다. 겨울이 오면 눈보라가 두 달은 지속될 텐데, 이 창고로 마을 전체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넉넉해야 한 달이다." "한 달이랑 두 달이면 격차가 큰데요." "그래서 문제다." 도맹이 창고 문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텅 하고 울렸다. "오금족은 예전엔 오금대제의 후손이라 불리며 이 대륙 절반을 다스렸다. 지금은 그저 눈밭 한 구석에서 굶어 죽을 걱정을 하는 부족이지." 그 말에 담긴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보급선이 끊긴 부대, 굶주린 병사들, 상관이 지도를 펴놓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장면. 여긴 지도 대신 창고고, 병사 대신 아이들이지만, 그 무게는 똑같았다. 마을을 돌아보니, 확실히 아이들이 유독 앙상했다. 볼이 움푹 들어가고, 팔다리는 나뭇가지처럼 가늘었다. 노인들도 눈에 힘이 없었다.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하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한참을 버텼다. 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이미 몇 달째 배를 곯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어제까지는 그냥 "가난한 부족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눈으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냥은 왜 안 되는 건데요." "북쪽 대설한(大雪原)의 짐승들이 올해 유독 안쪽으로 안 나온다. 남쪽엔 다른 부족들이 자리를 잡아서 우리 영역이 좁아졌고." 도맹이 눈을 가늘게 뜨며 먼 산을 바라봤다. 산봉우리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흰색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보름 안에 큰 사냥감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번 겨울에 아이들 다섯은 못 넘긴다." [아이들 다섯이라니.] 그 숫자가 유독 구체적으로 들렸다. 대충 짐작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계산이 끝난 숫자라는 뜻이었다. 누가 누군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도맹의 얼굴이, 사실은 전혀 아무렇지 않지 않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를 부족에 넣으신 건가요? 사냥 인력으로?" 도맹이 처음으로 웃었다. 이번엔 씩 웃는 웃음이 아니라, 조금 씁쓸한 웃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은 맞다. 여덟 마리 빙아랑을 손으로 찢어 죽인 놈이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나머지 반은요." "나머지 반은 그냥 마음에 들었다니까." 그 무뚝뚝한 대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원래 세계에서 대웅 대장이 나를 받아들였던 이유도 딱 이랬다. 별다른 근거 없이, 그냥. 이유를 대라면 몇 가지 댈 수 있지만, 진짜 이유는 그냥 마음에 들었다는 것. 그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마을 한가운데 서서 나는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뭔가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원래 세계에서는 강자가 되는 게 그냥 당연한 일이었는데, 여기선 그 강함이 누군가의 목숨과 직접 이어져 있었다. 아이 다섯. 그 숫자를 마음속에 새겨넣었다. 별로 대단한 각오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숫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걸어왔다. "도맹! 그 검은 눈 놈, 아직 여기 있나!" 목소리가 거칠고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성격이 그려질 정도였다. 급하고, 참을성 없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바로 소리부터 지르는 타입. 도맹이 고개를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도륵이 왔군." 그 이름을 말하는 도맹의 표정이, 어쩐지 좀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마치 골치 아픈 손님이 왔는데, 그 골치 아픔이 은근히 반가운 그런 얼굴.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봤다. 눈밭을 성큼성큼 밟으며 걸어오는 남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가 도맹보다 한 뼘은 더 넓었고, 걸음걸이엔 화가 잔뜩 실려 있었다. [저건 또 뭔 시비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맹은 별말 없이 그냥 그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얼떨결에 뒤를 따라갔다. 창고 앞에서 시작된 이 조용한 위기감이, 저 남자가 도착하는 순간 무엇으로 터질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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