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검은 눈이다."
그 한마디에 다섯 명의 창끝이 다시 나를 향했다. 방금까지의 경계심과는 결이 달랐다. 이건 두려움 같기도 했고, 혐오 같기도 했다.
[제 눈이 왜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낯선 땅에서 낯선 종족을 상대로 시비를 걸 정도로 내가 눈치가 없진 않았다.
체격이 큰 놈—목에 상처 세 줄이 있는 그놈—이 나에게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신중했다. 마치 맹수를 상대하듯이.
"당신, 오금족의 땅에서 뭘 하고 있었지."
오금족. 아마 이 사람들 이름인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무기 없다는 뜻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당신은... 상처가 없나."
창끝을 든 다른 사내가 물었다. 눈빛이 유독 매서웠다.
상처.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몸을 다시 살펴봤다. 옷은 그대로였고, 피부는 매끈했다. 손목도, 팔뚝도, 목덜미도. 사경을 헤매다가 전이됐다는 걸 감안하면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없는데요."
존댓말이 나온 건 습관이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일단 예의를 갖추는 게 몸에 익어 있었으니까.
그 대답이 화를 부른 모양이었다. 사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굳었다.
"흉터 하나 없는 인간이, 여덟 마리의 빙아랑을 손으로 찢어 죽였다고?"
빙아랑. 아까 그 늑대 형상의 짐승 이름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그걸 손으로 죽인 게 문제가 되는지 감이 안 왔다. 사람 살자고 짐승을 잡았는데 그게 무슨 대역죄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번에도 삼켰다.
내가 눈치를 살피는 사이, 목에 상처 세 줄이 있는 사내가 창끝으로 내 가슴을 툭 밀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이 상했다.
"오금족의 법에 따르면, 상처 없는 자는 전사가 아니다. 전사가 아닌 자가 빙아랑 여덟 마리를 잡을 리는 없다."
"그럼 뭔데요, 제가."
[요괴다.]
라고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다섯 명의 창이 동시에 나를 향해 조여들었다.
···이거 진짜 안 좋다.
원래 세계에서였다면 여기서 손을 썼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이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손을 쓰면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요괴' 확정이 되는 거였다. 게다가 여기서 죽인다고 딱히 이득이 되는 것도 없었다. 시체 다섯 짊어지고 얼음벌판 헤맬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는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웃었다.
"오해십니다. 저는 그냥... 사람인데요."
[검은 눈에 흉터 없는 몸으로 그런 소리를 하면 누가 믿습니까.]
······그건 나도 안다고.
내가 봐도 수상하긴 했다. 요괴 아니냐고 물으면 나조차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검은 눈, 무흉터, 늑대 여덟 마리 맨손 처치. 남이 보면 딱 판타지 소설 속 최종보스 프로필이었다.
결국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이 나를 죽일 마음이었다면 벌써 창을 던졌을 거란 계산이 섰다. 오히려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듯한 낌새가 보였다. 죽일 놈은 이렇게 정중하게 손을 등 뒤로만 묶지 않는다.
두 손이 등 뒤로 묶였다. 가죽끈이었는데 생각보다 정성스럽게 묶었다. 죄인 취급이라기엔 애매한, 뭔가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마치 다치게 하면 안 되는 물건을 포장하는 손길 같았다.
***
걸어서 반나절쯤 지나자 마을이 보였다.
눈 속에 파묻힌 듯한 오두막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었고, 가운데엔 얼음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조형물이 서 있었다. 짐승의 뼈로 얼기설기 지붕을 얹은 건물들,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피를 두른 노인들. 공기 중엔 짐승 기름 태우는 냄새와 마른 가죽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낯설지만 이상하게 사람 사는 냄새라서, 그 와중에도 살짝 마음이 놓였다.
내가 끌려 들어가자 마을 전체가 조용해졌다.
시선이 죄다 나에게 꽂혔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눈을 뚫어지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검은 눈···."
누군가 중얼거렸다.
"흉터가 없어···."
또 누군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 마을에서 검은 눈동자와 무흉터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여기 사람들의 눈은 대체로 회색이거나 옅은 갈색이었다. 검은 눈은 나 하나였다. 아이 하나가 내 눈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가, 제 어미 품에 얼굴을 파묻는 게 보였다. 저 정도로 무서운 눈인가, 내 눈이.
마을 가운데 있는 커다란 오두막 앞에 나를 데려간 사내들이 무릎을 꿇고 뭔가를 외쳤다. 안에서 늙은 목소리가 대답했고, 잠시 후 나이든 남자 하나가 나왔다.
얼굴에 새겨진 문양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복잡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 끝에 짐승의 두개골이 매달려 있었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눈빛만은 창끝처럼 날이 서 있었다.
지족장. 아마 그런 역할인 것 같았다.
그가 나를 한참 살피더니 낮게 말했다.
"검은 눈은 이백 년 만이다."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이백 년 전에 마지막으로 검은 눈을 가졌던 자는 이찬이었지. 그리고 이찬은 흉터가 많은 자였다."
지족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자는 흉터가 없다. 검은 눈만 있다. 이건 이찬의 재래가 아니라, 이찬의 허물을 뒤집어쓴 사악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잠깐만요. 저는 그냥 짜장면 먹다가 죽어서 여기 온 사람인데 무슨 이찬입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여기서 함부로 말을 얹어봤자 상황이 좋아질 리 없었다. 죽어서 온 것도 억울한데, 요괴로 몰려서 두 번 죽으면 그건 진짜 억울해서 저승사자 붙잡고 소송이라도 걸고 싶을 것 같았다.
지족장이 지팡이를 들어 나를 겨눴다.
"이 자를 처단할지, 시험할지, 오늘 밤 회의로 정하겠다."
처단이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등 뒤로 묶인 손을 슬쩍 움직여봤다. 가죽끈이 좀 헐거웠다.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풀고 나서였다. 이 마을 전체와 싸울 자신은 있었지만, 그러고 나면 나는 정말로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영원한 요괴가 되는 거였다. 마을 사람 다 죽이고 눈밭에 혼자 서 있는 그림, 그건 좀 너무 쓸쓸했다.
짜장면이 다시 그리워졌다. 이 와중에.
정확히는 마지막으로 먹었던 그 짜장면, 양파 절임까지 싹싹 비운 그 짜장면. 그거 하나 다 먹기도 전에 죽어서 여기로 왔다는 게 억울해서, 처단이니 뭐니 하는 소리보다 그 억울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때, 마을 입구 쪽에서 누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사람들이 일제히 갈라졌다. 그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남자 하나가 걸어들어왔다. 어깨 근육이 곰만큼이나 넓었고, 등에는 도끼 두 자루가 X자로 매달려 있었다. 얼굴에 있는 흉터의 개수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게 오히려 위엄처럼 보였다. 걸음마다 눈이 뽀득뽀득 소리를 냈다.
지족장이 그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도맹."
그 이름이 나오자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순간 잦아들었다. 아이 몇은 아예 어른 뒤로 숨어버렸다.
도맹이라는 남자가 내 앞에 멈춰섰다. 나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훑어봤다. 그 시선에는 두려움이나 혐오 같은 건 없었다. 뭔가를 재는 듯한, 실력지상주의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값을 매기는 눈이라기보단, 도구를 고르는 눈이었다.
"이 자를 내가 데려가겠다."
지족장이 지팡이를 살짝 내리며 되물었다.
"제1광전사, 근거는."
도맹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근거는 없다. 그냥 마음에 든다."
[뭐야, 이 사람.]
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심하고 저돌적인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톤이었다. 근거 없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인간을 예전에도 알았던 것 같은데,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족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감히 도맹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1광전사라는 이름이 이 마을에서 얼마나 무게가 있는 건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 속에서, 도맹은 나를 향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냐."
"장무적입니다."
"장무적···."
도맹이 발음을 씹으며 되뇌었다. 발음이 어색했는지 몇 번을 곱씹었다. 그리고 씩 웃었다.
"무적이라, 이름값 한번 해봐라."
그 웃음이 유독 낯익었다.
묶인 손목이 저릿했고, 등 뒤로는 여전히 창끝의 냉기가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저 웃음 하나에 온몸의 긴장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었다. 처단이니 시험이니 하는 말보다, 지금 저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데려가겠다는 건지가 더 궁금해졌다.
이거,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아직 감이 안 잡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