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버릇이란 게 참 무섭다. 스승님이 살아 계실 때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도장 마당을 쓸었는데, 지금은 새벽 다섯 시 반에 늙은이 얼굴을 만든다.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는데 하는 일은 정반대다. 그때는 몸을 깨우는 시간이었고 지금은 몸을 숨기는 시간이다. 스승님이 이 꼴을 보시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마 등짝을 한 대 후려치셨겠지. "이 멍청한 놈아, 그 얼굴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면서.
거울 앞에 앉는다. 낡은 화장대다. 이 집에 있는 물건 중에 제일 비싼 게 이 화장대와 그 위에 늘어놓은 특수 라텍스, 실리콘, 접착제들이다. 은발 가발을 먼저 매만진다. 정수리 쪽에 뜬 부분이 없는지 손끝으로 눌러가며 확인한다. 눈가 잔주름은 특수 라텍스로 붙이고, 입가는 살짝 처지게 실리콘을 덧댄다. 목주름도 잊으면 안 된다. 손등에는 검버섯 스티커를 두어 개 붙인다. 처음에는 이 작업만 삼십 분씩 걸려서 아침마다 손이 다 저렸는데, 지금은 십 분 남짓이면 끝난다. 눈 감고도 될 지경이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거울 속 얼굴을 들여다본다. 예순세 살 노인이 나를 마주 본다. 스물네 살 박도윤은 그 안에 없다. 있어도 안 되고, 보여도 안 된다. 그게 반년째 지키고 있는 규칙이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지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유서정. 대한대학교 특빙 교수였고, 예전에는 군부 특수전사 중에서도 특급이었다고 했다. 강단에서 학생들 상대로 조근조근 강의하던 그 사람이, 알고 보면 총성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그런 사람이 강의실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다는 게 이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부터가 위장이었던 거다. 나한테 위장하는 법을, 숨는 법을, 참는 법을 가르치던 그 손이 실은 사람을 몇 명이나 살리고 몇 명이나 보냈을지 나는 짐작도 못 한다.
나한테는 그냥 스승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멍청한 놈아, 힘을 억지로 누르면 언젠가 터진다니까."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잔소리처럼, 아니 잔소리가 아니라 유언처럼. 근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딱 그거다. 억지로 누르기. 반년째. 스승님, 저 지금 되게 잘하고 있는 척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데요.
가방을 챙긴다. 안에는 별거 없다. 물통, 낡은 손수건, 그리고 유사시에 쓸 물건 하나. 그 하나가 뭔지는 지금 말 안 하겠다. 아직은.
택시 회사 사무실에 도착하면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박씨' 아저씨, 예순셋, 성실하고 말수 적은 기사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경리 아주머니가 "박씨 오셨네" 하고 인사를 건네고, 나는 늙은이답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예,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받는다. 회사 사장도 내 서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럴 만도 하다, 서류 자체가 진짜니까. 진짜 죽은 사람 명의로 만든 진짜 서류. 스승님이 남겨놓은 물건 중에 이게 제일 쓸모가 있었다. 아니 이게 없었으면 나는 지금쯤 어디 하수구 밑에서 발견됐을 거다.
..죄송합니다, 박씨 할아버님. 잘 쓰고 있습니다. 갚을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
키를 받아 차에 오른다. 시동을 건다. 부르릉- 낡은 엔진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사이드미러를 조정하고, 안전벨트를 매고, 백미러로 뒷좌석까지 한 번 훑는다. 습관이다. 스승님이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스승님 밑에 있으면서 배운 건 맞다. 항상 뒤를 확인해라.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
한성 시내를 도는 하루가 시작된다. 라디오에서는 아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 한성 강남 인근에서 발생한 대한대학교 여교수 피살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어. 경찰은 조직범죄 연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어. 유족과 학교 측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어.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손이 먼저 반응한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두 달. 벌써 두 달이라고 한다. 근데 나한테는 반년이다. 경찰이 잡은 건 시체뿐이고, 나는 그날 밤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온전히 자 본 적이 없다.
오전 승객은 지루했다. 출근길 회사원, 병원 가는 아주머니, 학원 가는 학생. 다들 자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나는 늙은이답게 느긋하게 운전했다. 신호에 걸리면 늙은이답게 한숨을 쉬었다. 백미러 너머로 승객들이 하품하는 것도, 통화하며 짜증 내는 것도 다 봤다. 완벽한 하루였다.
..완벽하게 지루한 하루.
이런 하루가 나한테는 제일 좋은 하루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하루. 그런 하루가 반년째 쌓이고 있다. 어떤 날은 이 지루함이 고맙고, 어떤 날은 이 지루함이 숨 막힌다. 오늘은 후자가 될 줄은 몰랐다.
낮 열두 시쯤, 종로 쪽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잠깐 정차했다.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었다. 늙은이답게 천천히 씹어 먹었다. 이도 몇 개 뺀 척을 해야 하니까 씹는 속도도 신경 써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게 제일 피곤하다. 밥 먹는 것까지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오후로 넘어가면서 손님이 조금씩 뜸해졌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지나가고 음악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아, 이건 예순세 살 노인이 흥얼거릴 노래가 아니지 싶어서 멈췄다. 세세한 것 하나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다. 그게 이 위장의 무서운 점이다. 한순간의 방심이 전부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오후 세 시쯤, 낙원동 골목 어귀에서 손을 든 노인이 있었다.
"기사님, 청계 쪽으로 좀 가주시겠소?"
"네, 어서 타세요."
뒷좌석에 오른 노인은 동네에서 몇 번 본 얼굴이었다. 이 근방 토박이라던가. 나한테 몇 번 탄 적이 있어서 얼굴을 기억한다. 말이 많은 편이라 나도 별생각 없이 응, 아, 그렇군요 하고 받아주는 사이였다. 나이는 나보다, 아니 박씨보다도 몇 살 더 많아 보였는데 목소리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쩌렁쩌렁했다. 이런 손님이 제일 편하다. 혼자 떠들고 혼자 만족하고 내린다.
"요즘 세상이 참 무서워졌어요."
"그러시죠."
"아, 저번에 대학교수 죽은 거 있잖아. 그거 아나?"
손이 핸들을 아주 살짝 세게 쥐었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래야 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꼬리는 딱 무료한 노인의 표정 그대로. 심장은 이미 다른 속도로 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나면 안 됐다.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그게 그냥 강도 사건이 아니라던데. 우리 동네 파출소 순경이 술 먹고 흘린 말이, 조직 쪽 애들이 손댔다는 소리가 있대. 흑성회라나."
흑성회.
그 단어가 귀에 박히는 순간, 뭔가 뜨거운 게 명치에서부터 목까지 훅 치고 올라왔다.
뜨윽-!
대시보드 계기판 불빛이 순간 확 튀었다가 가라앉았다. 컵홀더에 꽂아둔 종이컵 안 커피가 파르르 떨렸다.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이 감각을, 나는 안다. 이건 억누른 힘이 밖으로 새는 순간이다. 스승님이 그렇게 경고했던, 바로 그거.
"어이구, 차가 왜 이래?"
"아, 요즘 배터리가 안 좋아서요."
뒷좌석 노인은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나는 손끝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근육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떨렸다. 억지로, 억지로 눌러 앉혔다.
..침착해. 침착해. 여긴 도로 위야. 여긴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넌 예순세 살 박씨 아저씨야.
숨을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뱉었다. 스승님이 가르쳐준 호흡법이다. 셈을 넷까지 세면서 들이마시고, 여섯까지 세면서 내뱉기. 근데 지금은 셈이 자꾸 헷갈렸다. 넷, 다섯, 여섯..아니 지금 몇까지 셌더라.
노인은 목적지에 내리면서까지 흑성회니 뭐니 계속 떠들었다. 저 조직이 이 동네 어디까지 손을 뻗쳤는지, 자기 조카가 아는 형사가 그러는데 경찰도 손을 못 대고 있다는 둥,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둥. 사이드미러에 반사된 그의 표정은 그냥 동네 잡담을 즐기는 얼굴이었다. 자기가 던진 말 한마디가 어떤 걸 흔들어놨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 저 노인은 오늘 저녁에도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또 하겠지. 그리고 아마 평생 모를 거다, 자기가 탔던 택시 기사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걸.
"에고, 여기서 세워주면 돼요. 고마워요, 기사님."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노인이 내리고 문이 닫혔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안이 조용해졌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라텍스로 덮인 손등 아래로도 땀이 배는 게 느껴졌다. 이 손, 이 몸, 이 얼굴은 예순세 살 박씨의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스물네 살 박도윤의 것이었다. 명치 속에서 뭔가가 여전히 뜨겁게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 이름 하나 때문에. 흑성회. 그 세 글자 때문에 반년치 참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눌러앉는 게 느껴졌다.
스승님을 죽인 것들. 아니, 죽였다고 확신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근데 심증은 있다. 그 밤, 그 골목, 그 냄새. 잊을 수가 없는 냄새였다.
다시 출발하려고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 도로 건너편 편의점 앞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누굴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서 이쪽을, 정확히는 이 택시를,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저게 뭐야.
너무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 남자의 옷깃이 흔들리는데도,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도로 위 신호등이나 가로수처럼, 애초에 그 자리에 박혀 있던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를 슬쩍 피해서 걸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몸으로 느낀 것처럼. 그런데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여기고 멈춰 서지는 않았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피하기만 하고 지나갔다.
나만 그 자리에, 그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 남자와 사이드미러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