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버려졌더니 각성이라니

4화

1년 후. 나는 열두 살이 되었고, 박덕수와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여전히 3평짜리 창고를 개조한 방 한 칸이었다.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형광등은 깜빡거리다가 완전히 나가버리는 날이 잦았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 박덕수는 술을 마셔도 나를 때리지 않았다. 빚은 아직 200만 원 넘게 남아 있었지만, 그는 매달 조금씩이라도 갚아나가려고 애썼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저녁을 준비했다. 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넣는 게 우리 저녁의 전부인 날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어느 비 오는 밤, 나는 창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빗물이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톡, 톡, 규칙적으로 울렸다. 나는 이불을 덮은 채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덕수는 그날도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왜 안 자냐." 박덕수가 물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저씨." 내가 말했다. "저 사실, 부모님 이야기 한 적 없죠." 박덕수는 술병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는 걸 나는 느꼈다. "말하고 싶으면 해." 그가 말했다. "싫으면 안 해도 돼."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저희 부모님, 개척 행성 정찰대였어요." 내가 말했다. "자고족 소규모 습격 때 돌아가셨어요." 박덕수의 표정이 굳었다. "저는 그때 다섯 살이었고, 아무것도 몰랐어요." 내가 계속 말했다. "그냥 어느 날 담당관이 와서, 부모님이 다시는 안 온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박덕수가 낮게 말했다. 그는 술잔을 든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호소에서는 매일 밤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나요." 내가 말했다. '엄마 얼굴이 어땠지.' '아빠 목소리가 어땠지.'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어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목소리도 떨렸다. "기억 안 나는 게, 무서워요." 내가 겨우 말을 이었다. 박덕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몸에서 소주 냄새와 낡은 재킷 냄새가 섞여 났다. "기억 안 나면 내가 옆에서 새로 만들어주면 되잖아."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으어어엉... 나는 그의 낡은 재킷에 얼굴을 묻고 오랫동안 울었다. 빗소리가 계속해서 지붕을 두드렸다. 나는 그 소리와 내 울음소리가 섞이는 걸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날 밤, 박덕수는 처음으로 나에게 약속했다. "내가 있는 동안은, 너 혼자 두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의 팔이 나를 감싸고 있던 그 온기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 더 흘렀다. 나는 그동안 키가 많이 자랐고, 성적도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박덕수는 여전히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벌었지만, 저녁마다 내 숙제를 봐주려고 애썼다. 그가 한글은 알아도 수학은 잘 못한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이거 어떻게 푸는 거냐." 그가 볼펜을 든 채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제가 알려드릴게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밤들이 쌓여갔다. 중학교 졸업이 다가올 무렵, 학교에서 통지서 한 장이 왔다. 봉투는 도청 로고가 박힌 두꺼운 종이였다. 나는 그걸 손에 들고 몇 번이나 앞뒤를 뒤집어봤다. "제8뇌역 무료 개창 대상자 선정 안내." 박덕수는 그 종이를 들고 손을 떨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게,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그가 소리쳤다. "보통 3천만 원짜리다!" 나는 그 숫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3천만 원.' '우리 남은 빚보다 더 많은 돈이잖아.' "그렇게 비싸요?" 내가 물었다. "성적 우수자 중에 딱 한 명, 여기 도청에서 뽑는 거야." 그가 말했다. "네가 뽑혔다고!" 박덕수는 종이를 든 채 방 안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인생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뇌역이 개창되면.' '나도 남들처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졸업식은 도청 대강당에서 열린다고 했다. 그곳에는 성공한 개척자 자제들과, 이미 뇌역을 개창한 선배들이 초청된다고 했다. 나는 그런 화려한 자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박덕수는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내내 싱글벙글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만나는 대로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내가 옷 한 벌 사줄게." 그가 말했다. "거지꼴로 가면 안 되지." 그는 낡은 지갑을 열어 꼬깃꼬깃한 지폐를 세어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우리의 좋은 시간이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박덕수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옷을 고르는 상상을 하며,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졸업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박덕수는 이상하게 술자리 약속이 잦아졌다. 며칠에 한 번이던 술자리가 매일로 바뀌었고, 그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나는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나던 소주 냄새가, 예전보다 훨씬 진해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서, 나는 낯선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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