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빛이 눈을 찔렀다.
강도현은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눈꺼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유독 따가웠다.
낡은 창고 안이었다.
녹슨 파이프, 깨진 창문, 곰팡이 핀 벽.
바닥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이 군데군데 말라붙어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사람 살 곳은 아닌 공간.
쿵.
박달구가 자루를 뒤집어 그를 바닥에 쏟아냈다.
강도현은 일부러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바닥에 닿는 순간 어깨가 시큰거렸다.
진짜 아픈 척할 필요도 없었다.
"어이, 정신 좀 차려봐."
박달구가 발끝으로 그의 어깨를 툭 찼다.
강도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일부러 눈동자를 흔들었다.
초점이 안 맞는 것처럼,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으, 어디...예요, 여기..."
목소리를 떨었다.
실제보다 훨씬 더 겁먹은 척.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어쭙잖게 굴다가 의심받는 것보단 이게 나았다.
이재춘이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봤다.
마른 체형에 눈이 유독 날카로운 남자였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을 훑는 시선이, 딱 봐도 이 판에서 오래 굴러먹은 놈 같았다.
"조용히 있으면 안 다쳐."
이재춘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좀 좋은 데로 데려다줄 거니까."
좋은 데.
말이야 참 예쁘게 한다.
"좋은 데요...?"
강도현이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기어가는 척했다.
"뭐, 뭘 하려는 거예요, 저한테..."
박달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거 완전 쫄았네. 재춘아, 이 정도면 형님이 아주 좋아하실 거 같은데."
"그러니까 찍은 거지."
이재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것들이 딱 좋아. 반항도 안 하고, 소리도 안 지르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꽉 묶어놔야지."
박달구가 허리춤에서 밧줄을 만지작거렸다.
강도현은 그 손짓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 묶이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엔 더 힘들어진다.
둘의 경계가 눈에 띄게 풀렸다.
아마 그동안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재미를 봤을 것이다.
겁먹은 척하는 먹잇감, 반항 한 번 없이 끌려가는 놈들.
그 패턴에 완전히 익숙해진 얼굴들이었다.
강도현은 몸을 웅크린 채 주변을 훑었다.
창고 안엔 이 둘뿐이었다.
출구는 하나, 오른쪽 철문.
녹슨 경첩이 삐걱거릴 것 같았다.
창문은 깨져 있지만 사람이 지나가긴 좁았다.
저긴 도망칠 구멍이 아니라 그냥 장식이었다.
박달구의 허리춤에 칼 하나.
칼집이 낡아서 손잡이가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이재춘은 무기가 안 보였지만 안주머니가 불룩했다.
저건 총일 수도, 아니면 그냥 지갑일 수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저, 저기요..."
강도현이 기어가듯 몸을 움직였다.
"살려주세요... 뭐든 할게요..."
목소리를 한 톤 더 낮췄다.
울음 섞인 것처럼, 숨이 막힌 것처럼.
"뭐든?"
박달구가 흥미롭게 웃었다.
"이 새끼 말은 잘하네."
그가 강도현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숨결에서 술 냄새가 났다.
어제 마신 건지 오늘 마신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응 속도는 느려질 거란 뜻이었다.
"살려는 줄 건데, 대신 넌 이제 마봉구 형님 거야."
거리가 딱 좋았다.
마봉구.
어디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이 근방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팔아넘기는 놈들 뒤에 꼭 나오는 이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강도현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겁에 질린 눈이 아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이었다.
박달구는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이 짓을 너무 많이 해봐서 감이 죽은 건지.
이재춘도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뒤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저놈은 아직 손 하나 까딱 안 했다.
저놈부터 처리하는 게 순서였다.
강도현의 손이 슬며시 바닥을 짚었다.
손끝에 온기가 다시 모였다.
낮에 느꼈던 그 파장, 지금은 더 선명했다.
손바닥 아래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
잡히지 않는 열기가 손끝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됐다.
박달구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강도현의 몸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