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낡은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녹슨 철문에 페인트로 대충 쓴 글자, 무기점.
간판이랄 것도 없었다.
철판 한 장에 붓글씨로 휘갈긴 두 글자가 전부였다.
비 오는 날이면 그 글자마저 반쯤 지워졌다.
짙은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거기에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더해졌다.
환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었다.
강도현은 계산대 뒤에 앉아 칼날을 닦고 있었다.
천으로 날을 훑을 때마다 쇳가루가 손끝에 묻었다.
검은 기름이 스민 헝겊, 몇 번을 접었는지 모를 걸레.
그는 그 걸레로 십 분째 같은 단검을 닦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서였다.
칠 년을 청허문에서 검을 잡았다.
사부의 잔소리, 새벽 수련, 하루도 거르지 않은 기초 검식.
그 모든 게 이제는 남의 일처럼 멀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그날, 그 모든 게 끝났다.
왜 이 세계인지는 모른다.
영기가 씨가 마른 곳으로 떨어진 이유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검을 든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다.
기(氣)라는 단어를 말하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공이라는 개념이 통째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다만 세 달째 이곳에서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밥벌이로 시작한 게 무기점이었다.
칼 좀 만질 줄 안다고 시작한 일인데, 손님보다 파리가 많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누가 대낮에 단검이나 도끼를 사겠는가.
강도현은 걸레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거리는 조용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딸랑.
문에 매달린 종이 울렸다.
큰 덩치의 사내가 들어섰다.
술 냄새가 먼저 도착했다.
발걸음이 비틀렸고, 눈빛이 풀려 있었다.
강도현은 시선만 살짝 들었다가 다시 칼로 돌렸다.
손님이라기보다는 골칫거리가 걸어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부류는 계절마다 한 명씩 꼭 나타났다.
"야, 이 칼 값이 이게 말이 되냐."
사내가 진열대 위 단검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값표를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기까지 했다.
"정찰가입니다."
강도현이 고개도 안 들고 답했다.
목소리에 억양이랄 게 없었다.
"뭐? 지금 나 무시하냐?"
사내가 칼끝을 계산대 쪽으로 겨눴다.
칼끝이 흔들렸다.
술기운 탓인지 손이 자꾸 떨렸다.
"손님, 그거 무기점 물건입니다."
"알아, 이 씨발놈아. 그러니까 여기 있는 거 아냐."
"안전핀 안 뽑힌 칼이 아니에요."
강도현은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눈빛만 살짝 가늘어졌다.
사내는 그 눈빛을 못 봤다.
봤어도 몰랐을 거다.
이미 취기가 판단력을 다 잡아먹은 상태였다.
"손님."
그가 낮게 말했다.
"그거 그렇게 들고 있으면 다칩니다."
"뭐라고 이 새끼가—"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칼을 든 손이 위로 올라갔다.
아무렇게나 휘두를 기세였다.
가게 안에 정적이 잠깐 흘렀다.
칼끝의 빛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됐다.
그 반사광이 강도현의 눈에 잠깐 비쳤다.
사내가 칼을 휘두르려던 순간이었다.
강도현의 손이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동작에 망설임이 없었다.
칠 년 동안 몸에 새겨진 반응이었다.
딱, 소리와 함께 관절이 꺾였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바닥에 부딪힌 칼이 한 바퀴 돌더니 멈췄다.
그 소리가 좁은 가게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술기운이 통증을 못 이겼다.
"아아악! 이 손 놔, 놔!"
"놓으면 다시 휘두르실 거잖아요."
강도현이 손목을 조금 더 꺾었다.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이 닿는 소리가 났다.
"진짜, 진짜 안 그럴게요. 놔주세요, 제발."
"방금까지 반말이셨는데."
"죄,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강도현은 별 흥미 없다는 얼굴로 손목을 내려다봤다.
저 목소리 톤이 뒤집히는 속도, 익숙했다.
청허문에 있을 때도 이런 놈들 몇 봤다.
칼 앞에서만 인간이 되는 부류.
그 짧은 순간, 강도현의 손끝에서 무언가 스쳤다.
미세한 빛, 파장 같은 것.
손목을 쥔 부분에서 시작해 팔뚝까지 잠깐 저릿했다.
전기가 흐른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물이 닿은 것 같기도 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느꼈던, 그리고 잊고 지냈던 그 감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는 통증에 정신이 없었고, 가게 안엔 다른 손님도 없었다.
강도현만 알았다.
영기가 남아 있었구나.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분명 세 달 전,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전이 텅 빈 항아리 같았다.
그런데 방금, 아주 잠깐, 뭔가 그 항아리 바닥을 스쳤다.
그는 손을 놓았다.
사내는 칼도 챙기지 못하고 문밖으로 도망쳤다.
비틀거리던 걸음이 순식간에 빨라졌다.
술이 확 깬 얼굴이었다.
딸랑,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조용해진 가게 안, 강도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칼은 그대로 뒀다.
나중에 주우면 된다.
지금은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손끝을 내려다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했다.
손톱도, 마디도, 다 평범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찰나였지만, 분명 뭔가 흘렀다.
강도현은 손가락을 접었다 펴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사내의 손목을 잡았던 각도로 손을 쥐어봤다.
역시 아무것도.
우연이었나.
아니면 그 순간, 사내가 놀라 강도현의 몸에 힘을 준 그 접촉이 뭔가를 건드렸나.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세 달 동안 처음 느낀 감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영기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구나.
생각이 거기서 멈췄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강도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갔다.
발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서두르는 것도 아니고, 느긋한 것도 아닌 딱 그 중간의 속도.
창밖을 흘끗 보니 그림자 하나가 가게 앞을 지나쳤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형.
후드를 눌러쓴 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같은 방향으로.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라 여겼다.
그런데 몇 초 뒤, 같은 실루엣이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걸음이 조금 더 느렸다.
마치 가게 안을 살피듯, 창가 앞에서 잠깐 멈추기까지 했다.
강도현의 눈썹이 살짝 좁아졌다.
누군가 가게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걸레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칼을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창밖 한쪽에 걸려 있었다.
그림자는 세 번째로 나타나지 않았다.
발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뒷목이 서늘했다.
방금 흘렀던 그 미세한 빛과, 창밖의 그림자.
두 가지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겹쳤다는 게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강도현은 걸레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은 순간,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확 사라졌다.
누군가, 뛰어서 도망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