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나는 숨을 죽이고 계속 흙을 파냈다.
손톱 밑으로 흙이 파고들었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한참을 그렇게 파내려가자, 손바닥에 걸리는 감각이 달라졌다.
흙이 아니라 나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낡은 나무 문 하나가 드러났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표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검은 이끼가 번져 있었고, 문 전체는 색을 잃어 잿빛에 가까웠다.
손잡이는 없었지만, 문틀 사이로 손을 넣어 힘껏 당기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오랜 침묵을 깨고 비명을 질렀다.
안쪽에서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곰팡이 냄새와는 다른, 묵직하고 오래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마치 오래도록 봉인되어 있던 시간이 한꺼번에 새어 나오는 듯한 냄새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안쪽은 칠흑 같았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그러나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이유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발을 딛는 순간, 흙바닥이 아니라 매끈하게 다져진 돌바닥이 느껴졌다.
좁은 통로를 따라 몇 걸음을 내려가자 작은 석실이 나타났다.
벽은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누군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공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벽면 한쪽에는 촛대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그을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사람이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석실 한가운데, 낡은 목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얇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손을 뻗어 먼지를 걷어내자, 목함의 표면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뭇결은 갈라졌지만, 이상하게도 썩거나 뒤틀린 흔적은 없었다.
마치 시간이 이 함만은 건너뛴 것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경첩이 낮게 신음했다.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누렇게 변색된 얇은 책자.
종이는 삭아서 손을 대면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표지에는 흐릿하게 두 글자가 남아 있었다.
혼검(魂劍).
두 번째는 검이었다.
검신은 짙은 흑청색을 띠고 있었고, 손잡이는 오래되었지만 결이 상하지 않은 채였다.
검을 감싼 검집에는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은은하게 검집 표면을 타고 흐르는 듯 보였다.
손을 대보고 싶었지만, 나는 우선 손을 거뒀다.
세 번째는 작은 옥환이었다.
칠흑처럼 검은 빛깔이었다.
표면은 매끄러웠고, 손에 쥐자 서늘한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 냉기는 단순한 돌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것의 숨결처럼 은근하게 손끝을 감쌌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혼력이 없는 나조차 이 물건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손에 쥔 옥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것이 어째서 이런 곳에 묻혀 있었던 것인지.
나는 책자를 조심스레 펼쳤다.
종이가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첫 장에는 낡은 필체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글씨는 힘이 있었지만, 어딘가 다급하게 눌러쓴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자에게.
너의 자질을 묻지 않겠다.
다만 마음이 선한가를 묻겠다.
선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이 검과 옥환의 진짜 주인이 될 것이다.』
서명은 없었다.
다만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임휘검.
나는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되읽었다.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박덕수 노인이 딱 한 번 지나가듯 언급했던 이름이었다.
임가에서 가장 뛰어났던 인물이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전설.
노인은 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이후 다시는 그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그때 노인의 표정이 어땠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떠올랐다.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하기 힘든, 복잡한 낯빛이었다.
나는 책자를 넘겼다.
다음 장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구결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글자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뒤엉킨 필체였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언젠가는 이 구결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오려나.
막연한 예감이 스쳤다.
대신 그 뒤에 이어진 몇 장에는 짧은 문장들이 흩어져 있었다.
일기처럼 보이는 기록들이었다.
날짜도, 순서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눌러쓴 흔적들이었다.
『가주는 오늘도 무고한 자를 죽이라 명했다.』
『나는 거부했다.』
『은혜를 입은 자를 해할 수는 없다.』
짧고 단정한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짧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이나 그 문장들을 눈으로 훑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고집과 고통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이런 것들을 이런 곳에 숨겨두고 사라진 것일까.
나는 흑색 옥환을 다시 손에 쥐었다.
순간, 손바닥 안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순간.
옥환이 옅은 빛을 발했다.
나는 놀라 손을 떨쳤다.
옥환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빛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옥환은 다시 평범한 돌처럼 침묵했다.
숨이 턱 막혔다.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혼력이 없는 나에게, 이 물건이 반응했다는 것인가.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분명 아무 힘도 갖지 못한 몸인데, 그 옥환은 마치 나를 알아본 것처럼 반응했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옥환을 다시 주워야 하나, 손을 뻗다가 멈췄다.
그때였다.
석실 밖, 통로 저편에서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긴장이 번졌다.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느렸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분명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목함의 뚜껑을 황급히 소리 없이 덮으려다, 그 손을 멈췄다.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가, 아니면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하는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발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