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청류촌으로 내려가는 길은 짧지 않았다. 평소 반나절이면 닿는 거리였지만, 이서하의 발은 자꾸 뒤엉켰다. 다리가 움직이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산 위에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 관졸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별일 아니라 여겼다. 사부님은 원래 마을에 내려가면 며칠씩 머무는 일이 잦았다. 약초를 캐다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다시 산을 오르는 것이 곽태산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런데 관졸이 전한 말은 단 한 줄로 요약됐다. 관아에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서하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 한 줄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시신이라니.'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어쩌면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애써 생각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발은 이미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고, 심장은 이미 다른 답을 알고 있었다.
산길이 끝나고 완만한 비탈이 나오자 청류촌의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익숙한 풍경이 오늘만큼은 낯설게 느껴졌다.
관아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 늙은이 시체구먼." 한 남자가 말했다. "약초 팔던 그 무명 노인 말이야."
"곧이곧대로 늙어 죽은 거 아니야?" 다른 여자가 대꾸했다. "산에서 혼자 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젊은 놈도 아니고." 옆에 있던 노인이 혀를 찼다. "나이 먹은 산속 늙은이 하나 죽은 게 뭐 큰일이라고 이렇게들 모여 있나."
이서하는 그 말들을 지나쳐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붙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신은 마당 한쪽에 거친 삼베로 덮여 있었다.
포두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뭐 하는 놈이냐."
"제자입니다. 사부님을 뵈러 왔습니다."
포두는 위아래로 이서하를 훑어보았다. 낡은 무명옷에 흙먼지가 잔뜩 묻은 젊은 사내였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눈빛에서 이미 무시하는 기색이 배어 나왔다.
포두는 삼베를 걷어 보였다. 곽태산이었다. 눈을 감은 채 미간에 깊은 주름이 남아 있었다. 목에는 검은 자국이 선명했다.
이서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였다. 손끝이 시신에 닿기도 전에 이미 확신이 들었다. 늘 산을 오르내리며 봐온 그 손, 그 얼굴이었다.
"사부님..." 그가 부른 이름은 목구멍에서 갈라졌다.
손을 뻗어 사부의 뺨에 대었다. 차가웠다. 살아있을 때는 늘 온기가 있던 손이었는데, 이제는 그 온기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서하는 그 차가움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포두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목에 흔적을 보니 누군가 손을 쓴 것 같긴 한데, 딱히 조사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조사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이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이봐라." 포두가 귀찮은 듯 말했다. "이름 없는 늙은이 하나 죽은 거다. 원한을 가진 게 한둘이겠느냐, 원래 산속 무뢰배들끼리 다투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흔한 일이야."
"제 사부님은 무뢰배가 아니셨습니다."
"그럼 뭐냐, 대단한 인물이었느냐?" 포두가 비웃듯 말했다. "청류촌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저 노인네가 뭐 하던 사람인지 아는 자가 있는지."
주변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손가락질까지 했다.
"맨날 산에서 내려와 약초나 팔던 늙은이인데." 한 사람이 말했다. "이름도 없다면서 무슨 대단한 제자를 뒀다는 거야."
"제자라는 놈도 아마 사부한테 뭐 배운 게 있으려나." 다른 목소리가 이었다. "약초 캐는 법이나 배웠겠지."
또 다른 웃음이 터졌다. 이서하는 그 웃음소리들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슬픔 위에 모멸이 얹혔다. 사부의 시신 앞에서 그를 향한 조롱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이, 슬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포두가 재차 말을 이었다. "이봐, 젊은이.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산 사람들은 저마다 할 말이 있지. 억울하다고 여기면 관아에 소장이라도 넣어봐라. 다만 받아줄지는 모르겠구나."
그 말투에는 조롱이 반쯤 섞여 있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여유였다.
"제 사부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서하가 낮게 말했다.
"그런 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포두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여기서는 그냥 죽은 늙은이일 뿐이다. 시신 챙길 거면 알아서 해가라. 관아에서 더 봐줄 일은 없다."
포두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이서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사부의 시신을 지켰다.
'사부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다.' 이서하는 이를 악물며 그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은 없었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사부가 살아 있을 적에도 사람들은 그저 산속 약초꾼으로만 알았다. 그것이 곽태산이 원한 삶이었는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삶이었는지, 이서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사부는 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으면 곽태산은 웃으며 말을 돌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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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서하는 청류촌 어귀의 낡은 객잔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시신은 관아에서 내어주었고, 그는 사부를 산 아래 작은 공터에 묻었다. 삽을 빌려 든 손이 낯설게 무거웠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익힌 몸이었지만, 이 일에는 익숙해질 도리가 없었다.
무덤에는 아무 표식도 남기지 않았다. 곽태산이 살아있을 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죽어서도 그러길 바랄 것이라 여겼다. 비석 하나 세우는 것조차 사부의 뜻에 반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삽을 내려놓고 흙을 덮던 순간, 이서하의 손이 떨렸다. 흙 한 삽 한 삽이 사부의 얼굴을 덮어갈 때마다 손끝이 저려왔다.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뜨겁게 쏟아지던 눈물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말라, 나중에는 더 흐르지 않았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몸이 더 흘릴 것을 남겨두지 않았을 뿐이었다.
봉분을 대충 다듬고 나서, 이서하는 그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밤바람이 산 아래로 스산하게 지나갔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만이 침묵을 채웠다.
곽태산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갈 곳 없이 떠돌던 어린 그를 산 중턱에서 거두어준 이가 곽태산이었다. 그때 곽태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밥 한 그릇을 내어주고, 다음 날부터 목검을 쥐게 했을 뿐이었다.
"힘을 흘려라. 흘리되 놓지 마라." 곽태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이 지금은 다른 뜻으로 들렸다.
예전에는 그 말이 단순히 검을 쥐는 법에 대한 가르침이라 여겼다. 힘을 너무 세게 쥐면 손목이 상하고, 너무 풀면 검이 흔들린다고.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말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슬픔을 흘려라. 흘리되 놓지 마라. 사부를 향한 마음을, 사부를 죽인 자를 향한 분노를, 잃지 말고 간직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놓지 않을 것입니다.' 이서하는 어둠 속에서 그렇게 다짐했다. '누가 사부님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것이 그가 산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청류산은 이제 그를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붙잡아줄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산 위에는 이제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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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이서하는 곽태산이 남긴 유품 몇 가지를 챙겨 산을 완전히 내려왔다. 오두막을 정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부의 살림이라는 것이 원래 단출했다. 옷가지 몇 벌, 약초를 담던 낡은 자루, 그리고 짐 속 깊이 숨겨져 있던 물건 두 가지가 눈에 밟혔다.
낡은 목검 한 자루였다. 이서하가 처음 검을 배울 때 쥐었던 것과는 다른 목검이었다. 오래되어 손잡이 부분이 반질거릴 정도로 닳아 있었다. 곽태산이 직접 쓴 것인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부는 평소 그 목검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서찰 한 장이 짐 속에 있었다. 서찰의 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부호로 가득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을 거라는 예감만은 확실했다. 이서하는 그 서찰을 몇 번이나 펼쳐 보았다. 글자인지 부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표식들이 종이 가득 빼곡했다. 사부가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을 숨겨두었는지, 그것을 알 방법은 이제 없었다.
짐을 정리하며 이서하는 오두막 곳곳을 다시 둘러보았다. 벽 한쪽에 걸린 낡은 도롱이, 부엌 구석에 쌓인 약초 다발들, 곽태산이 늘 앉아 있던 자리의 낡은 방석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사람만 없을 뿐이었다.
관아를 다시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사를 미루겠다면, 직접 다그쳐서라도 진범의 이름을 알아내야 했다. 그것이 이서하가 세운 첫 목표였다. 포두의 비웃음도, 마을 사람들의 조롱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부의 죽음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 서찰과 목검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이서하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산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 이서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청류산의 능선이 아침 안개 속에 흐릿하게 걸려 있었다. 그 산 어딘가에 사부와 함께한 시간들이 그대로 묻혀 있을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사부님.' 이서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발걸음을 옮겼다. 짐 속에 든 목검과 서찰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들이 앞으로 그를 어디로 이끌지, 이서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