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인간 1%, 기계 99%

4화

서은채의 집은 병원에서 세 정거장 거리였다. 그 세 정거장이, 그날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남은 인간의 피부가 보이는 부분만 가릴 수 있는 옷들을 최대한 껴입은 채로 저택으로 향했다. 목덜미를 감싼 스카프, 손목까지 내려오는 소매, 그 위에 겹쳐 입은 후드티까지. 거울을 못 봐서 다행이었다. 봤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 테니까. 골목 하나를 돌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 목덜미 언저리에 머무는 것 같아서, 그때마다 스카프를 한 번 더 여몄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인적은 드물었고, 가로등 불빛도 성기게 떨어져 내 몰골을 제대로 비추지 못했다. 경비 로봇들이 왜 나를 감지하지 못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담을 넘는 순간에도, 정원을 가로지르는 순간에도, 센서 하나 반응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열 걸음도 못 가서 경보가 울려야 정상이었다. 그 덕에 나는 무사히 그녀의 방 창문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창을 두드리자 그녀가 놀란 얼굴로 뛰어나왔다. 잠옷 차림에, 머리는 반쯤 흐트러진 채였다. 얼마나 걱정했으면 저 시간까지 뜬눈이었을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태오야!" 그녀는 나를 끌어안으려다 멈칫했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내 목덜미의 금속 표면을 본 순간이었다. 손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게...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나는 낮게 말했다.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그녀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걱정이 반반씩 섞인 눈이었다. 방 안에서 나는 후드를 벗었다. 반쪽짜리 얼굴, 은백색으로 뒤덮인 목과 어깨.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 금속 표면이 유난히 차갑게 번들거렸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정적이 흘렀다. 몇 초였을 텐데, 체감상으로는 몇 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렸다. 도망칠까. 소리를 지를까. 아니면. 그녀는 이내 다시 다가와 내 얼굴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금속 표면에 닿았을 때, 나는 그 온기가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의 체온이라는 게 이렇게 뜨거웠던가. 아니, 내 쪽이 너무 차가워진 건가. "차가워."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너야?" "응." 나는 짧게 답했다. "나야." "폭발 때, 그 상자."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밀치고 대신 맞았어. 그리고 이렇게 됐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 때문에... 나 대신에..." "아니."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네가 살았으니까 됐어. 그거면 됐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신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금속 표면 위로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나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병원에서의 다섯 번의 실패. 의사들이 고개를 젓던 모습, 모니터에 뜨던 숫자들이 점점 나빠지던 순간들. 국방부가 나를 넘겨받으려 했던 계획. 그리고 사거리에서 화물 호버를 멈춰 세운 순간까지.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걸 다 믿어줄까. 아니,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말해야 했다. 이 며칠간 벌어진 일들을 혼자 삭이기엔, 내 머리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이미 한참 초과한 상태였으니까. 그녀는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말이 끝나자 방 안에는 한동안 침묵만 남았다.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보여줄 수 있어?" 그녀가 물었다. "그 힘, 진짜인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보여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확인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나는 방 안에 있던 대리석 협탁을 손으로 짚었다. 힘을 주자 표면에 손가락 자국이 움푹 파였다. 대리석이, 그 단단한 대리석이 마치 젖은 점토처럼 손가락 모양대로 파여 들어갔다. 그녀는 숨을 삼켰다. "태오야, 이거... 무섭지 않아?" "무서워."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근데 이 힘이 없었으면 그 아이는 죽었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이게 내가 다시 살아갈 방법일지도 몰라." 그녀는 협탁에 파인 자국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다시 내 손을 꼭 잡았다. 금속으로 뒤덮인 손이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네가 무엇이 되든, 난 널 알아. 강태오라는 사람을." 그 말이, 그동안의 모든 실패보다 더 크게 나를 붙잡아줬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목덜미의 금속도, 반쪽짜리 얼굴도, 다섯 번의 실패도 전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처음으로 온전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최도현이었다. "은채야, 너 괜찮—" 그는 말을 멈추고 나를 노려봤다. "이 새끼가 여긴 왜, 그 몰골로." 그는 내 얼굴과 목의 금속 표면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이거. 괴물이잖아." 그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으니까. 오히려 예상보다 늦게 나온 반응이라,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가." 서은채가 냉랭하게 말했다.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상관없다니, 저게 지금 정상이야? 사람이 저렇게 돼?" 최도현이 성큼 다가오며 나를 밀쳤다. 별생각 없는 손짓이었을 텐데, 그 순간 내 몸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시야 전체가 붉게 물들며 경고음이 울렸다. [위협 감지] [방어 프로토콜 자동 가동]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세게 잡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놔, 이 씨발— 놔!!"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손목뼈가 부러지기 직전이라는 걸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놔야 한다. 놔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뿐이었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손이 아니라 내 몸을 감싼 그 금속 표면이, 무언가에 반응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방 안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협탁 위 유리 장식품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창밖 하늘이 뒤틀리듯 일렁였다. 마치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처럼, 하늘의 별들이 늘어지고 왜곡됐다. 내 손목의 금속 표면에서 붉은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경고: 미확인 에너지 반응] [좌표 붕괴 진행률 78%] 숫자가 눈앞에서 빠르게 올라갔다. 78, 82, 89. 서은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태오야! 태오야!!"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고 싶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내 몸의 절반은 저 붉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최도현의 손목을 잡은 채로, 나는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팔이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함께 그 균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정신을 잃기 직전, 나는 서은채의 마지막 표정을 봤다. 나를 향해 뻗은 손, 그리고 절규에 가까운 내 이름. 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99%. 100%. 그 다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대지 위에 쓰러져 있었다. 하늘은 내가 알던 하늘이 아니었다. 별의 배치도, 대기의 냄새도, 전부 낯설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의 색이, 내가 알던 어떤 별자리와도 겹치지 않았다. 바람 냄새마저 이상했다. 흙냄새 사이로 낯선 향이 섞여 있었는데, 그게 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옆에서 신음하는 최도현을 발견했다. 그도 함께 이 낯선 세계로 끌려온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목을 부여잡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역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만 저 멀리, 산 능선을 따라 세워진 낡은 목조 건물들과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어딘가에서 낮게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댕- 댕- 댕- 세 번의 종소리가 울리고, 그 뒤로 정적이 이어졌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서은채도, 도현의 부러진 손목도, 병원의 다섯 번의 실패도. 이제는 전부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이곳이 어디인지, 우리가 왜 여기로 끌려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저 종소리가, 절대 우리를 반기기 위한 소리는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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