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잠금장치가 풀린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정전. 도심 전체 전력망에 미세한 오류가 발생해 삼십 분간 비상 발전으로 전환됐고, 그 짧은 틈에 격리실 보안 시스템도 함께 풀려버린 거였다. 인류가 하늘에 도시를 짓는 시대에도, 정전 하나로 모든 게 뒤틀렸다.
우습지 않은가. 최첨단 의료 시설이라는 곳이, 겨우 삼십 분짜리 비상 전력 전환 하나에 격리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꼴이라니. 나는 그 순간 이게 행운인지 또 다른 재앙의 서막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문이 열렸다는 사실 하나만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 복도를 빠져나올 때, 스쳐 지나가는 간호로봇들이 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붉은 센서 불빛이 내 몸을 스치고도 아무런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그들의 센서 범위 밖에 있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는데도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그게 왜인지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순간엔 그저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운. 그래, 나한테 그런 게 남아 있었나.
복도 끝 비상구를 지나면서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쫓아올 것만 같아서.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복도, 깜빡이는 비상등, 그리고 내 발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낯설게 다가왔다. 살갗―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예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차갑다는 감각은 있는데, 그게 진짜 차가운 건지 아니면 내 몸이 그렇게 해석하도록 만들어진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나는 정신없이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이 도시 어딘가에 내가 아직 인간일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거라는 헛된 믿음으로.
호버들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누가 나를 알아볼까 봐. 누가 나를 괴물이라 부를까 봐. 그런데 정작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힐끗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밤늦게 환자복 입고 비틀거리는 사람 하나쯤,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거리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무인 화물 호버가 신호를 무시하고 인도로 진입했다. 헤드라이트도 없이, 경고음도 없이, 그저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저 앞에 서 있던 아이 하나가 그대로 그 궤도 안에 있었다. 아이 엄마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었다.
다리가 땅을 박차는 감각이 이상하게 느려졌다. 마치 시간이 나만 비켜서 흐르는 것처럼, 주변 풍경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아이의 얼굴, 벌어진 입, 아직 소리도 나오지 않은 비명. 아이 엄마의 손끝이 허공을 긁는 모습. 호버의 강철 프레임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며 번쩍이던 순간.
전부 다,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호버와 아이 사이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그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막았다.
쿠웅.
충격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전해졌지만, 부러지는 감각은 없었다. 오히려 호버 쪽이 찌그러지며 멈춰 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내 두 팔로 몇 톤짜리 화물차를 정지시킨 스스로를 내려다봤다.
뭐야, 이거.
손바닥에 남은 자국을 봤다. 은백색 표면에 움푹 파인 흔적, 그리고 그 흔적 위로 미세하게 스파크가 튀었다. 인간의 살이었다면 지금쯤 뼈가 산산조각 나 있어야 정상이었다.
시야 한쪽에 그 낯선 문자들이 다시 떠올랐다. [출력 320% 초과 감지] [관절 부하 임계치 접근] [인간성 유지율 99.6%]
인간성 유지율. 그 단어가 눈앞에 박히듯 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았다. 방금 내가 한 행동은 인간의 신체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
인간이었다면, 나는 지금쯤 저 아이와 함께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었을 거다.
아이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아이는 놀라서 울음도 안 나오는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 속에 두려움이 없었다는 게,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촬영을 시작했다.
“대박, 저거 봤어? 맨손으로 호버를 막았어!”
“저 사람 뭐야, 개조인간이야?”
“찍어, 찍어! 이거 조회수 대박이겠다!”
사방에서 휴대용 카메라가 나를 향했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저 렌즈들 중 하나라도 내 얼굴을, 내 팔을, 이 은백색 금속 덩어리를 제대로 담는다면―끝이었다. 병원에서 도망친 격리 대상이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전력을 다해 달렸다. 아니, 정확히는 내 다리가 알아서 나를 옮겼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속도였는데, 호흡은 오히려 평온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서 벽에 등을 붙이고 주저앉았다. 심장이, 아니 심장이 있던 자리의 무언가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쿵, 쿵, 쿵. 규칙적이지만 낯선 박동. 나는 손을 들어 내 눈앞에서 몇 번이고 쥐었다 펴봤다.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나는 미세한 기계음. 이 힘. 이 힘이 진짜라면.
지금까지 나는 이 몸을 저주로만 여겼다.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형벌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고의 결과물이라고.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그 수많은 밤들, 나는 이 몸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나는 몇 톤짜리 화물을 맨손으로 멈췄다. 그것도 아이 하나를 살리면서.
정말 이게, 저주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는 걸까.
첫 번째.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힘.
두 번째. 로봇의 감지 범위를 벗어나는 존재감.
세 번째. 눈앞에 떠 있는 정체불명의 숫자들.
전부 다 저주라고 하기엔, 너무 쓸모가 있었다.
나는 골목 끝 상점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얼굴 절반, 목과 어깨, 팔 전체가 은백색 금속으로 뒤덮인 낯선 존재. 유리에 비친 그 형체는 인간이라기엔 너무 기이했고, 기계라기엔 너무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만이, 유일하게 나라는 증거였다.
[인간성 유지율 99.6%] 라는 숫자가 여전히 시야 한 귀퉁이에 떠 있었다. 아까보다 0.4퍼센트가 줄어 있었다.
0.4퍼센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 숫자가 계속 눈앞에서 깜빡일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게 0으로 수렴하면, 그때의 나는 뭐가 되는 걸까. 나는 그 숫자가 왜 줄었는지, 무엇을 대가로 줄어드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엔, 그 숫자보다 더 다급하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서은채.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해야 했다. 병원에 실려 오기 전, 마지막으로 웃어준 사람도, 이 몸이 되고 나서도 나를 사람 취급해줄 것 같은 사람도, 결국 그녀 하나뿐이었다.
그녀만은 이 흉물스러운 몸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나를 그쪽으로 걷게 만들었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비친 은백색 형체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걸 등 뒤로 느끼면서.
내가 아직 몰랐던 건, 그 0.4퍼센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게, 얼마나 더 잔인하게 깎여나갈지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