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생 황자의 만렙 무공

3화

3화. 은색 무복을 입은 사자 용멸패원공을 흡수한 지 사흘째,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숨을 쉬는 것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엔 계단 하나 오르면 헐떡이던 몸이었는데, 이제는 뭔가 안에서 조용히 순환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몸속에 작은 강이 하나 새로 생긴 것 같았다. 흐르는 방향도 알겠고, 그게 어디서 막히는지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시스템 창을 확인하니 새 항목이 떠 있었다. [내공 : 측정 불가 (5단계 기준 초과)] 측정 불가라니, 이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이 안 왔다. 게임이었으면 이런 문구는 보통 최종보스 스탯창에나 뜨는 거 아닌가. 나는 원래 이 세계 사람들이 어느 정도 힘을 갖는지도 몰랐으니 비교할 기준이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예전과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몸이라는 것. 시험 삼아 마당의 돌절구를 슬쩍 밀어봤다. 원래대로라면 낑낑거려야 할 무게였는데, 손끝에 닿은 순간 절구가 스륵 밀려났다. 힘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밀었을 뿐인데.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사흘 전까지 계단에서 숨이 넘어가던 인간이 지금은 돌절구를 손가락으로 미는 신세가 된 거다. 이거 좀 억울한데,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진작 이랬으면 그 고생을 안 했을 텐데. 문제는 이걸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될 것 같다는 감이었다. 갑자기 병약한 황자가 강해졌다고 소문나면 좋을 게 없다는 건 상식이었다. 무공이 서열을 정하는 세계에서 판이 갑자기 바뀌면, 누군가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알아내려 들 리는 없었다. 특히 나 같은 처지의 황자한테는. 대황자라는 자리는 이름만 거창했다. 서열 1위 황자인데 몸이 부실해서 아무도 진짜 후계자로 안 쳐주는, 그런 애매한 자리. 형식상 예우는 받지만 실권은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 그런 내가 갑자기 무공 고수가 됐다는 게 알려지면, 그건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 경계당할 일이었다. 조용히 지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세상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춘심이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숨도 제대로 못 고르고 문지방에 발이 걸릴 뻔하면서. "마마, 삼황자 쪽 사람이 왔습니다. 그... 한무영이라고, 삼황자님의 호위 무사인데요." "그게 왜 문제야?" "그 사람이... 좋은 뜻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춘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이마에 땀까지 배어 있었다. 나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아마 삼황자 쪽에서 나를 시험하러, 혹은 대놓고 모욕을 주려 사람을 보낸 것이겠지. 이런 종류의 방문은 대체로 목적이 뻔했다. "일단 들어오라고 해. 어차피 안 만나준다고 안 갈 사람 같은데." 춘심이 뭐라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게 없었던 모양이다. 한무영이라는 자가 처소 마당까지 들어왔다. 은색 무복을 입은 삼십 대 남자였는데, 걸음걸이부터 무공을 오래 익힌 사람 특유의 절도가 있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소리가 거의 안 났다. 저런 걸음은 아무나 못 배우는 거다. 눈빛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노골적인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딱 이거였다. 병든 개를 보는 눈빛. 짓밟아도 별 문제 없을 대상을 확인하는 시선. "대황자마마를 뵙습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는 각도가 딱 예의상 최소치였다. 저것도 다 계산된 각도일 거다. 무례하다고 딱 잡아 걸 수는 없는, 그 애매한 선. "삼황자마마께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 들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라고요." 안부라는 말이 저렇게 비꼬는 어조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걱정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저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걱정할 것 없다고 전해라. 몸은 좋아졌으니." "오,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한무영이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다행이라는 말에 전혀 다행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럼 이번 생일 연회에는 참석하실 수 있으시겠군요." 생일 연회. 삼황자의 생일이 코앞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궁 안의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행사라는 것도. 하필 이런 타이밍에 몸이 이렇게 바뀔 건 뭐람. "참석이야 하겠지, 대황자로서 당연한 도리 아니겠나." 한무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당연한 도리, 그렇지요. 그런데 마마, 요즘 궁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소문이라니?" "마마께서 갑자기 소고기를 삼십 인분씩 드신다고요. 몸이 많이 허하신가 봅니다." 주변에 있던 시녀 몇이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소문이 벌써 궁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저 폭식 사건이 조롱거리가 될 줄이야. 그 고기, 나름 사정이 있어서 먹은 건데. 물론 그 사정을 설명해봤자 누가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제가 배 속에 요괴 무공을 흡수해서요"라고 하면 그날로 정신병자 취급받고 유폐될 게 뻔했다. "몸이 허하면 채워야지, 그게 뭐가 이상한가." "물론입니다. 다만... 그렇게 드시면서도 여전히 검 한 자루 못 드시는 게, 참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저 말투 안에 담긴 뜻은 뻔했다. 처먹기만 하고 힘은 하나도 못 쓰는 놈.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예의 바른 말로 포장해서 던진 거다. 나는 속으로 계산을 굴렸다. 이 자리에서 화를 내면 그건 그대로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참으면 계속 이런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실력을 드러내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측정 불가라는 문구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힘을 썼다가 무슨 후폭풍이 올지 알 수가 없었다. "용건이 그것뿐이면 돌아가라." "아, 하나 더 있습니다." 한무영이 갑자기 걸음을 옮겨 마당 한쪽에 세워둔 목검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쥐는 자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저건 그냥 들고 다니는 나무 막대기가 아니라, 매일 손에 익힌 사람의 손놀림이었다. "삼황자마마께서 마마의 무공을 한 번 시험해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못 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그냥 그렇다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춘심이 놀라 내 앞으로 다가서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이 상황이 그냥 모욕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감이 왔다. 한무영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절대 응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 그리고 그 무력함을 궁 전체에 퍼뜨릴 계획.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조롱하러 온 거라면 이렇게까지 준비된 태도는 아닐 것이다. 목검까지 챙겨 온 것도, 저 여유로운 웃음도. 그냥 놀리려고 온 사람이 무기까지 챙겨오나? "목검은 왜 챙겨왔나. 그냥 말로만 시험해도 될 것 같은데."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지요." 만에 하나. 저 말이 걸렸다. 무공 못 쓰는 병약한 황자를 상대로 만에 하나를 대비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함정이었다. 내가 무공을 못 쓴다는 걸 확인하러 온 게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러 온 것 같았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혹시 삼황자 쪽에서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걸 눈치채고 확인하러 보낸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나조차 사흘 전에 알게 된 사실을, 다른 사람이 벌써 알아챘을 리는 없다. 그냥 우연히 타이밍이 겹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등줄기에 서늘한 감각이 가시지 않았다. 한무영이 목검을 슥 내밀며 나를 지켜봤다. 시험해보라는 듯, 아니면 도망갈 구멍을 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느 쪽이든 이 자리에서 물러서는 순간 그걸로 끝이라는 걸 알았다. 대황자로서의 마지막 위신이든, 아니면 뭔가 더 큰 것이든. "시험이라... 좋다." 내 대답에 춘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한무영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예상 못 한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그 표정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 인간, 내가 거절할 걸 백 퍼센트 확신하고 왔던 거다. 그럼 이제부터는 저 확신을 뒤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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