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재인데 미래의 구원자라니

3화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쪼개진 돌과 나를 번갈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발로 돌을 쪼갰다는 게냐." "운이 좋았습니다." "..." 아버지는 쪼개진 돌 조각을 발로 툭 건드려보았다. 단단하기로는 마당 한구석에서 십 년을 버틴 놈이었다. 그런 돌이 반으로 갈라졌으니 믿기 힘든 것도 당연했다. "이상한 일이구나."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섰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셋째 아들에게 그럴 힘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돌 조각을 발로 슬쩍 밀어 담벼락 아래로 치웠다. 증거는 치워도 몸속에 남은 열기는 치울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창고에서 밤마다 몰래 유광감응술을 연습했다. 장작더미 사이에 숨어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나무 조각이 부스러지듯 떨어져 나갔다. 힘을 다스리는 법은 아직 서툴렀지만, 최소한 소리를 줄이는 법은 익혔다. 며칠 뒤, 상단 심부름으로 성 외곽 숲을 지나야 했다. 등에 짐을 지고 숲길을 걷는데, 어깨가 뻐근했다. 상단 물건이란 것이 늘 그렇듯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짐을 지고 걷던 중, 비명이 들렸다. 발걸음을 멈췄다. 짐을 짊어진 채로 소리가 난 방향을 가늠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다가가니 소녀 하나가 늑대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자세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발을 딛는 각도, 검을 세우는 높이, 어느 하나 허투루 배운 자세가 아니었다. 짐을 내려놓을 여유도 없었다. 허리춤의 목검을 뽑았다. 스르릉. 달빛이 없는 대낮이었다. 하지만 몸속 어딘가에서 익숙한 열기가 차올랐다. 화로에 장작을 던져 넣은 듯, 뜨거운 것이 팔뚝을 타고 손끝까지 흘렀다. 위에서 아래로, 가장 정직하게 베었다. 퍽! 늑대 한 마리가 튕겨 나갔다. 몸뚱이가 나무둥치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나머지 무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숲속으로 흩어졌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목검을 거두지 않았다. 소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매가 또렷하고 기품이 서려 있었다. 옷차림은 여느 시골 처자와 달랐다. 옷깃에 놓인 자수 하나만 봐도 예사 집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검으로... 검기를 뽑아낸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상단 사람이라 들었는데." 짐짝을 슬쩍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신용상단의 셋째 아들, 강도현입니다." 소녀가 짧게 숨을 골랐다. 놀란 기색을 감추려는 듯했지만, 손끝이 아직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윤서연입니다. 운림성 성주의 딸입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단과 성주 가문의 인연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는 어릴 때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성주의 딸을 구했다는 것과, 성주의 딸 앞에서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저울이 삐걱거렸다. "그런데 검기라는 게 함부로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윤서연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빛이 목검과 내 손을 번갈아 훑었다. "어디서 익힌 겁니까." 대답할 말이 궁했다. 짐을 옮기다가 익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달리 둘러댈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짐 옮기다 익혔습니다." 윤서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과 어이없다는 표정이 반쪽씩 섞인 얼굴이었다. "짐을... 옮기다가." "예. 무거운 짐일수록 도움이 되더군요." 뒤편에서 시녀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어깨가 크게 오르내렸다.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소하, 걱정 마라." 소하라 불린 시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낡은 짐 지게와 허름한 옷차림, 어디를 봐도 상단 심부름꾼의 행색이었다. 그런데도 눈초리에는 의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사람이 구해준 겁니까?" "그런 셈이다." 소하가 낮게 중얼거렸다. "상단 아들 치고는 이상한데."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윤서연은 자리를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심도, 호기심도 아닌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채, 짐을 다시 짊어졌다. 그날 밤, 창고에서 목검을 쥐고 앉아 있는데 문득 그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그러면서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듯한 눈빛. 성주의 딸이 셋째 아들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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