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재인데 미래의 구원자라니

2화

궤짝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물건이었다. 먼지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쌓여 있었고, 나무는 습기를 먹어 거뭇하게 썩어 있었다. 녹슨 자물쇠를 도끼로 내리쳤다. 퍽! 손목이 저릿했다. 자물쇠는 멀쩍이 버텼다. 한 번 더 내리쳤다. 퍽! 이번에는 쇠가 살짝 비틀렸다.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도끼를 꽂았다. 퍽! 세 번째에 자물쇠가 부서졌다. 궤짝 뚜껑을 열었다. 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삐걱, 하고 났다. 안에는 낡은 서책 한 권과 짧은 목검이 들어 있었다. 목검은 손잡이 부분이 손때로 반질반질했다. 누군가 오랜 세월 쥐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책 표지에는 세 글자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유광감응술(流光感應術). 귀동냥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무가에서 삼 년을 지내며 어지간한 문파와 무공 명은 다 주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처음이었다. 첫 장을 펼치자 글씨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떠올랐다. "검은 무게로 말하고, 사람은 빛으로 응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낯설게 다가왔다. 화려한 초식도, 신비한 구결도 없었다. 오직 하나, 달빛과 별빛에 몸을 맞추는 법만이 적혀 있었다. 다음 장을 넘겨도, 그다음 장을 넘겨도 마찬가지였다. 숨 쉬는 법, 서는 법, 그리고 검을 드는 각도. 그것뿐이었다. 이게 무공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반신반의하며 목검을 쥐고 마당으로 나갔다. 달이 유독 밝은 밤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마당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책에 적힌 대로 숨을 고르고, 검을 위로 들었다. 팔이 후들거렸다. 목검일 뿐인데도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우웅. 달빛이 검신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의심했다. 목검 표면에 옅은 은빛이 번지고 있었다. 온몸의 핏줄이 뜨거워졌다. 마치 화로에 통째로 몸을 담근 것 같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아니라 뜨거운 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삼 년간 명상하며 쌓았던 미미한 기운이, 순식간에 장작더미처럼 타올랐다.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들끓었다.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앙! 마당에 있던 커다란 돌이 반으로 쪼개졌다. 쪼개진 단면이 도끼로 나무를 결대로 가른 것처럼 매끈했다. 숨이 가빠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삼 년 동안 단 한 줌도 못 모으던 내공이었다. 스승도 없이, 제대로 된 구결도 없이, 그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잡일로 삼 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지금, 돌을 쪼갤 힘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검을 쥔 손이 떨렸다. 서책을 다시 살폈다. 뒷장에는 경고 문구가 남겨져 있었다. "이 술은 금기다. 함부로 세상에 드러내지 마라. 유광감응술을 익힌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대가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어떤 대가인지, 얼마나 치러야 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대가를 치른다, 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방금 손끝에서 느낀 그 열기, 그 힘이 너무 선명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창고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느릿하지만 무거운 발소리였다. 익숙한 걸음이었다.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서책을 품에 감췄다. 목검도 등 뒤로 숨기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버지였다. 손에 등불을 든 채, 눈은 이미 쪼개진 돌에 가 있었다. "이 밤에 무슨 소란이냐." 반으로 쪼개진 돌을 보는 아버지의 눈이 흔들렸다. 등불이 흔들려 그림자가 벽에 길게 늘어졌다. 아버지는 돌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단면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손끝에 묻은 돌가루를 코앞에 대고 냄새를 맡듯 살피더니,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설명해 보아라."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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