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재능 영애의 전생 밥상

3화

오후의 저택은 평소보다 어수선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마차가 대문을 두드리듯 급하게 드나들고, 하녀들은 복도 끝에서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 모든 소란의 중심에는 사라진 여진이 있었다. 이 저택에서 밤새 잠들지 못한 사람은 하나둘이 아니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늙어 보이는 얼굴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미연이었다. 발소리의 주인은 한미연이었다. 한미연은 평소라면 소이가 있는 방향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오래된 습관이자 무의식적인 회피였다. 소이는 이 집안에서 존재하되 보이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한미연에게는 그 존재 자체가 불편한 증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습관이 깨졌다. 한미연이 곧장 소이의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을 때, 소이는 그 발걸음의 속도만으로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은 하룻밤 사이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눈 밑은 눈물로 벌겋게 부어 있었다. 화장기 없는 피부에는 핏기가 돌지 않았고, 입술은 몇 번이나 깨물었는지 갈라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 얼굴을 보며 소이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저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한 번도 그 이유가 되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동시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십육 년을 함께 살아온 이 여자가 이토록 절박한 얼굴을 보인 것은, 소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네가 알고 있었지." 한미연이 낮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확인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심판이 담겨 있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소이의 살갗을 베어낼 듯했다. "여진이가 그 남자를 만나는 걸, 네가 봤을 거잖아." 소이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 침묵이 다시 유죄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대답을 고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소이의 머릿속에는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정원의 담쟁이덩굴 뒤에서 여진이 낯선 남자와 손을 맞잡고 있던 저녁,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던 낮은 웃음소리, 그리고 그것을 목격했을 때 자신이 느꼈던 묘한 감정까지. 그것은 부러움이었을까, 혹은 안도감이었을까. 소이는 그 답을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봤어요." 소이가 겨우 답하자, 한미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손끝이 파르르 흔들리는 것을 소이는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니." 한미연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갈라졌다. "왜,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그 질문은 마치 벽을 두드리는 것처럼 소이의 가슴에 부딪혔다. 소이는 그 질문에 다시 자문했다. 내가 말했다면, 이 집이 내 말을 들어줬을까. 이 집에서 소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배경음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식사 자리에서도, 손님을 맞는 자리에서도 소이의 의견은 물어봐지지 않았다. 설령 밀회를 보고했다 해도 그것이 여진의 도주를 막았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여진은 자신의 결심을 방해받았다며 더 서둘러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 그런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소이는 한미연의 얼굴을 보며 알았다. "제가 말을 했어도, 언니는 언니 뜻대로 했을 거예요." 소이가 조용히 말했는데, 그 말이 오히려 한미연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게 지금 할 소리니. 네가 봤으면서 왜 가만히 있었냐고 묻는 거잖아!" 한미연이 소리치며 소이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손끝이 파고드는 통증에 소이는 얼굴을 찡그렸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소이는 이 집에서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워 왔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성격이 아니라, 여러 번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방어였다. 한미연은 소이를 처음 이 집에 데려왔던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진을 낳은 지 이 년 만에 얻은 둘째 딸이 마법 재능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미연은 그 아이가 자신의 실패이자 가문의 흠이라 여겼다. 다른 귀족 가문의 아이들이 다섯 살만 되어도 작은 불꽃이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자랑스러워하던 시절, 소이는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한미연은 그것을 자신의 혈통이 문제였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밤마다 뒤척였다. 그 후로 한미연은 소이를 딸이 아닌 하녀로 재배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상실감을 견뎌 왔다. 그것은 잔인한 선택이었으나, 한미연에게는 유일하게 견딜 수 있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오래된 판단이 지금 이 순간의 분노와 뒤섞여, 한미연은 소이를 추궁하는 것으로 여진을 잃은 슬픔을 대신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저택 안쪽에서 조명환 자작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점점 가까워졌고, 그 소리에 한미연의 손이 소이의 어깨에서 슬며시 풀렸다. "여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오." 자작이 낮은 목소리로 한미연을 만류했지만, 그 시선은 이미 소이를 향해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딸을 걱정하는 온기 대신 무언가를 계산하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조사관들이 곧 다시 올 거요. 소이가 진술을 잘해야 이 집안의 체면이 산다." 체면. 소이는 그 단어를 들으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순간에도 자작이 걱정하는 것은 딸의 안위가 아니라 가문의 명예였다. 소이는 문득 이 저택의 위태로운 재정 사정과 자작이 오랫동안 왕실에 줄을 대고자 애써 온 야심을 떠올렸다. 저택 곳곳의 낡은 커튼과 손보지 않은 정원의 담장, 그리고 몇 달 전부터 하나둘 사라진 은식기들을 소이는 모르지 않았다. 여진이라는 방벽 마법사가 사라진 지금, 자작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는 어쩌면 이 사건을 얼마나 매끄럽게 봉합하느냐였을 것이다. 한미연은 여전히 붉게 부은 눈으로 소이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자작의 말이 이어지자 그 시선에는 다른 종류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딸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남은 딸을 도구로 써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눈빛이었다. 소이는 그 눈빛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그것이 오히려 조금 전의 분노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소이야." 자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이를 불렀는데,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소이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평소 자작은 소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런 그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다는 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였다. "우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서재로 오너라." 그 말에 소이는 어떤 예감을 느꼈다. 이제부터 이 저택에서 가장 위험한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서재라는 공간은 이 집에서 오직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만 열리는 문이었고, 소이가 그 문턱을 넘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소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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