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혼약자님, 언니가 더 좋으세요?

2화

이준혁이 서인 언니를 그렇게 바라보는 걸 본 순간,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직접 입에 담기 전까지는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확신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방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서인 언니, 그리고 이준혁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원래는 혼인 날짜를 조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언니가 왕자와의 파혼 소식을 안고 들어온 순간부터, 이 자리의 목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준혁 님."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는 그제야 나를 봤다. 눈빛에 미안함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미안함이라니. 그 감정은 보통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짓는 표정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저지른 뒤라는 뜻이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두 손을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손끝이 미리 떨리기 시작했다는 걸,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서윤 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십시오." 짧게 대답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방 안의 모든 사람을 향해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서인 님을 흠모했습니다. 서윤 님과의 혼약은 가문의 결정이었을 뿐, 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조차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서인 언니가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놀란 얼굴이었다. 눈물 자국이 아직 뺨에 남아 있었는데, 그 눈물이 왕자와의 파혼 때문인지 이 상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준혁 님." "서인 님이 파혼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서인 언니를 향해서. "서인 님, 저와 혼인해주시겠습니까." 방 안이 침묵했다. 촛불 하나가 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침묵이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그 못마땅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의 갑작스러움을 향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순서였다. 감정이 아니라. 어머니는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준혁 도련님 가문이라면 나쁘지 않지. 왕자님과의 혼약이 깨진 지금, 서인이에게는 오히려 좋은 대안일 수도 있어요." 대안. 나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짚었다. '대안이라는 건, 원래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 다른 무언가는 나였고, 이제는 아니게 됐다.' 셈이 빠른 어머니답게, 이미 머릿속으로 이 결합이 가문에 어떤 이득을 줄지 계산을 마친 얼굴이었다. 나는 그 계산에서 내가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제 의견을 물으실 분은 없으신가 봅니다." 짧은 정적. 아버지가 나를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서윤아, 이해해다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이해합니다." 나는 정말로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인 하나가 문 앞에서 눈치를 보며 물러났다.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심정을 이해했다. 나조차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서인 언니가 그제야 나를 봤다. 눈물이 그친 눈이었다. "서윤아, 미안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지 마. 알고 있었잖아." 내 목소리는 놀랄 만큼 평온했다. 속에서는 무언가 무너지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게 내 특기였다.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 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이 혼사가 성사되면, 서인이의 후계 자리가 다시 안정될 것이다. 왕가와의 인연이 끊어졌으니, 가문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후계 자리가 다시 안정된다니. 원래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었나.' 십 년간 세하령을 관리해온 건 나였다. 세수를 늘리고, 수로를 정비하고, 흉작이 든 해에도 곳간을 채워놓은 건 나였다. 삼 년 전 홍수가 났을 때 밤새 제방을 점검하러 나간 것도 나였고, 소작농들의 세금을 줄여 민심을 다잡은 것도 나였다. 그 모든 숫자와 기록이 내 서재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언니는 그 시간 동안 왕궁에서 예법과 춤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후계자는 다시 언니가 된다는 이야기가, 이 방 안에서 아무 저항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스스로도 이상한 웃음이라는 걸 알았다. "제가 십 년간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는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서윤이 너도 물론 중요한 일을 했지. 하지만 가문의 얼굴은 서인이가 맡는 게 맞아. 사람들 보는 눈이 있잖니." 사람들 보는 눈. 그 말이 모든 걸 설명했다.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속으로 곱씹었다. 얼굴이 되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자리였다. 나는 처음부터 얼굴이 될 수 없는 아이였고, 언니는 처음부터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 그 구분이 지금 이 순간, 이 방 안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봐도 돌아올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이준혁을 봤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다. 서인 언니를 향해서만. '애초에 나를 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없던 것을 잃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가슴 한쪽이 저렸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화가 나서인지, 슬퍼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나는 낯익은 그림자 하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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