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이하람이 쓰러지는 순간,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누군가는 짧게 신음했고, 누군가는 뒷걸음질쳤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이마를 짚었다. 뜨거웠다. 열이 심했다.
손바닥에 닿는 열기가 그대로 옮겨오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의 숨이 짧고 가빴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팔뚝에 번진 붉은 발진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핏줄을 따라 번지는 것처럼, 붉은 자국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저게 뭐야.'
'저게 대체.'
나는 손을 뗄 수도, 그냥 둘 수도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성녀님."
서윤재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살짝 흔들렸다. 회색 눈동자가 이하람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
"이건 저주입니다. 하람님이 1년 전부터 앓고 있는 증상이에요. 오한, 호흡곤란, 발진, 발열, 그리고 지금처럼 의식을 잃는 것까지."
"저주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네. 성녀님이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서윤재를 쳐다보았다.
"저더러 저 저주를…… 고치라고요?"
"그렇습니다."
서윤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이렇게 큰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성녀님께 부여된 과제입니다. 하람님의 저주를 치유하는 것. 그것을 해내셔야 원래 세계로 귀환하실 수 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 의료 지식 없는데.'
'회사에서 응급처치 교육 받은 게 마지막인데.'
'심폐소생술 순서도 헷갈리는데 저주를 어떻게 고쳐.'
생각이 마구 뒤엉켰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고, 그냥 회사원이었어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도 모르게.
"저주가 뭔지도 몰라요. 여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더러……"
"압니다."
서윤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살짝 기울어진 고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
"성녀님이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뭐라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아.
혹시 표정에 다 드러났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를 읽는 능력이 있는 걸까.
"그게 무슨……"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요."
서윤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짓했다.
성직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하람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옮기기 시작했다.
흰 로브를 입은 이들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유리를 다루는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쫓았다.
"의료진을 소환할 수는 없나요? 여기, 이 세계에 의사가 없다면요."
말하면서도 이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불가능합니다."
서윤재의 대답은 단호했다.
"소환은 오직 성녀에게만 열려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은…… 4년에 단 한 번만 열립니다."
"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발밑의 바닥이 순간적으로 울렸다. 작은 균열이 발치에서 뻗어나갔다.
당황해서 얼른 발을 뗐다. 이런 게 지금 왜.
"4년에 한 번요?"
"그렇습니다. 성녀님이 이번에 소환되신 것도 그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 소환은…… 4년 후입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럼 나 여기서 못 나가는 거야?'
'과제를 못 풀면?'
'4년. 4년이라니.'
머릿속에서 숫자가 계속 맴돌았다. 4년, 4년, 4년.
회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부모님은. 내 방은. 내가 키우던 화분은.
생각이 자잘한 것들로 튀는 게 오히려 무서웠다. 큰 걱정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작은 것들로 도망치는 느낌이었다.
서윤재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조용히 덧붙였다.
"과제를 해결하시면 즉시 귀환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하람님의 저주를 치유하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방법을 몰라요."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방법이 있긴 한 거예요? 아니면 저 혼자 알아서 찾으라는 거예요?"
"방법에 대해서는 차차 알려드리겠습니다."
"차차라니, 지금 저 사람은……"
말을 하다 멈췄다.
이하람이 옮겨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멀리 옮겨지는 이하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팔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그 팔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사람을 낫게 하지 못하면 나는 4년을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거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상황에 놓인 건지,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실감이 났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게 이상했다.
그 순간, 옮겨지던 이하람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 파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 속에 담긴 무언가가 내 가슴을 이상하게 흔들었다.
원망도 아니었다. 부탁도 아니었다.
그냥,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
'……왜 저렇게 봐.'
가슴 한쪽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성직자들이 그를 안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서윤재가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성녀님. 이제 거처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거처요?"
"네. 성녀님께서 지내실 곳입니다. 그곳에서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
"저기, 하나만 먼저 물어볼게요."
"말씀하세요."
"저주가 걸린 원인이 뭔지는 아세요?"
서윤재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보였다.
"그건……"
그가 말을 멈췄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나중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는 걸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힘이 없었다.
그냥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하람이 사라진 그 문 쪽으로.
그 파란 눈동자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저 사람, 왜 나를 그렇게 본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