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봄이 오고, 그 다음 봄이 오고, 또 다음 봄이 왔다. 이헌 왕자는 오지 않았다.
첫해에는 그가 바쁠 거라고 생각했다. 왕자는 할 일이 많으니까. 전쟁 준비도 해야 하고, 조정 회의도 있고, 이웃 나라 사신도 만나야 하고. 왕자라는 자리가 얼마나 바쁜지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해 봄, 나는 매일 아침 정원 문 쪽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마차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심장이 뛰었다. 대부분은 짐마차였고, 어쩌다 손님을 태운 마차였고, 단 한 번도 그의 마차는 아니었다.
두 번째 해에는 신전 쪽에서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신전 행정이 얼마나 느린지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서류가 어딘가에서 묶여 있을 거라고, 신관들이 깜빡했을 거라고, 그런 사소한 이유들을 하나씩 만들어 붙였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그 이유들을 세는 게 습관이 됐다. 하나, 둘, 셋. 그러다 잠이 들었다.
세 번째 해가 되자 더 이상 이유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신전 행정이 아무리 느려도 삼 년이나 걸릴 리는 없었고, 왕자가 아무리 바빠도 삼 년 동안 단 한 번의 안부도 전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쁠 리는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봄이 되면 여전히 정원 문 쪽을 바라봤다. 습관이라는 건 그렇게 무섭다. 이유가 사라진 후에도 몸은 여전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해 봄, 왕궁에서 다시 마차가 왔다.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흰옷을 정돈하고, 머리를 다시 묶고, 그동안 연습한 인사말을 속으로 되풀이했다. 삼 년 동안 그 인사말은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였고, 다음에는 "잘 지내셨는지요"였고, 이번에는 그냥 "안녕하세요"였다. 화려한 말은 이제 부끄러웠다. 그저 그가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다른 성녀 후보들도 정원에 나와 있었다. 다들 저마다 옷매를 다듬고, 머리를 만지고, 표정을 연습했다. 왕자가 오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들 중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저 애 좀 봐. 또 저러네."
"왕자님이 그때 한 말 아직도 믿나 봐."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 텐데."
"삼 년째 저러는 거 보면 어지간히 순진한가 봐."
나는 그 말들을 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못 들은 척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재주였다.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시선을 정문 쪽에 고정하고, 숨소리만 조금 빨라졌다. 마차가 신전 정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섰을 때,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바퀴 소리가 자갈길 위를 구르는 소리마다 내 숨이 한 번씩 멈췄다. 마부가 마차를 세우고, 발판을 내리고, 문이 열렸다.
하지만 내려선 사람은 이헌이 아니었다. 그의 시종 한 명이 서류 뭉치를 들고 신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낯선 얼굴이었다. 왕자의 얼굴도 아니었고, 예전에 왔던 시종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만큼 이 방문이 왕자에게 얼마나 낮은 우선순위인지 알 수 있었다. 아예 담당자를 바꿔서 보낼 정도로.
"왕자님은 정무가 바빠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신전 후원금만 전달하러 왔습니다."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알았다. 그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서류 뭉치가 신관의 손으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 나는 그 안에 내 이름이 적혀 있을 리 없다는 것도 알았다. 삼 년 전 정원에서 그가 웃으며 건넨 말 한마디는, 그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인사였고, 나에게는 삼 년을 버티게 한 전부였다. 그 낙차가 얼마나 큰지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뒤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고, 누군가는 대놓고 웃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 표정을 지키는 게 그때 내가 배운 유일한 재주였다. 흔들리지 않는 척, 실망하지 않는 척, 애초에 기대한 적도 없었던 척.
시종이 서류를 다 전달하고, 신관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왔을 때와 똑같은 속도로 정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안뜰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뭔가 달라지길 바랐던 걸까. 마차가 갑자기 멈추고, 문이 다시 열리고, 그가 뛰어나오는 그런 장면을.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서야 눈물이 났다.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은 이미 익숙했다. 이불 속에서 얼굴을 묻고, 숨을 참고, 어깨만 들썩였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으로 봄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내 하루의 전부가 됐을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신전에서 배운 게 기도문과 정화 의식뿐이 아니었다. 나는 슬픔을 조용히 앓는 법도 배웠다. 소리 없이 울고, 아침이 되면 다시 멀쩡한 얼굴로 식당에 앉는 법. 그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익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늙은 신관에게 불려갔다. 그의 방은 언제나처럼 향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낡은 경전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그는 나를 앉혀두고, 한참 동안 서류를 뒤적이더니 말했다.
"다인아. 너는 성녀 후보 중에서 가장 성실하지만, 성과는 가장 낮다."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 사실인지 알았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두 번씩 기도문을 외우고 정화 의식을 자원했지만, 실제로 빛 속성을 발현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후보들은 한 달, 두 달 만에 작은 빛이라도 손끝에 맺혔다는데, 나는 삼 년이 지나도록 그 흔한 빛 한 점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는 그냥 성실한 아이였다. 능력 없이 성실한 아이는 신전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였다. 성실함은 성적표에 적히지 않는다. 결과만 적힌다.
"다희 아가씨는 여전히 저택에서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데."
신관이 그렇게 덧붙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신전에서도 다희와 비교당한다는 걸 알았다. 저택을 벗어나면 다를 줄 알았는데, 세상은 어디서나 나를 다희 옆에 세워두고 재는 방식으로만 나를 봤다. 다희는 저택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몰라도, 그 소식은 여기 신전까지 흘러들었다. 나는 신전 안에서조차 다희의 그림자였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고, 떠올랐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신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내보냈다. 그 짧은 끄덕임 안에 얼마나 많은 실망이 담겨 있었는지, 나는 문을 나서면서야 곱씹었다.
문밖으로 나와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정원에는 아직 봄꽃이 피어 있었다. 노란 꽃, 흰 꽃, 붉은 꽃이 뒤섞여 화단을 채우고 있었다. 그 화사한 색이 그날 나에게는 유독 잔인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봄은 여전히 오고, 꽃은 여전히 피는데, 나만 삼 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실망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두 가지를 결심했다. 하나는 더는 이헌 왕자의 문쪽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반드시 이 신전에서 빛 속성을 각성시키겠다는 것.
첫 번째 결심은 지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문쪽을 바라봤다. 결심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지켜지는 거라면 애초에 결심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조금 화가 났지만, 그 화조차 며칠이면 사그라들고,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결심만은, 그해 여름 지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