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누명 쓴 학생회장 약혼녀

3화

한소라가 쓰러진 곳은 온실이었다. 학원 뒤편, 희귀 약초를 키우는 유리 온실. 기숙사에서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슬리퍼 차림으로 뛰었다. 복도를 지나는 내내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좋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온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학생들, 시녀들, 그리고 낯익은 학생회 임원들의 얼굴까지. "독초 중독이래." "한소라 양이 마신 차에서 검출됐다고 해." "그 차, 이서연 영애가 갖다준 거 아니야?" 웅성거림 속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나는 걔한테 차를 준 적이 없는데.' 숨을 몰아쉬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동정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닌, 뭔가를 이미 확신한 눈빛. "저는 한소라 양한테 차를 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즉시 부인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를 썼다. 하지만 온실 안, 쓰러진 한소라 옆에서 시녀 하나가 조그마한 다기 세트를 들어 보였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내 가문의 것과 똑같았다. '저건 또 뭐야.' 가까이 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리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거 이서연 영애님 가문의 다기 세트인데요." 시녀가 확인 사살을 하듯 다시 한번 말했다. 목소리에 놀람과 확신이 섞여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저 다기, 나는 손에 대본 적도 없어. 근데 왜 저기 있어.' 기억을 더듬어봤다. 저런 문양의 다기 세트가 내 방에 있었나? 아니, 있었다 해도 저건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가문 문양을 새겨 넣은 물건을 만들어 여기 갖다 놓은 게 아니라면. '설마 그것도 준비했겠지.' 이 세계에서 나를 몰아넣으려는 손이, 이 정도로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의사가 서둘러 한소라의 상태를 살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맥을 짚고 눈동자를 확인하는 손길이 능숙했다. "조음초 중독입니다. 소량이라 생명에는 지장 없지만, 하루 정도는 고열과 경련이 있을 겁니다." 조음초. 학원 온실에서만 키우는 독성 약초. 관리가 철저해서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열쇠도 하나뿐이고, 그 열쇠를 관리하는 사람도 정해져 있었다. '그 말은, 이걸 갖다 놓은 사람이 여기 접근할 권한이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학생회 임원 중 온실 관리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 이거였구나.' 순식간에 상황이 이해됐다. 권한이 있는 사람, 다기의 문양, 그리고 이미 낙인찍힌 나. 조각들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위해 짜놓은 그림처럼. '누가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판을 짜놨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이, 학생회 부회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냉랭한 표정, 팔짱을 낀 자세. "이서연 영애." 부회장이 냉랭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온실 열쇠, 어제 하루 종일 가지고 계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하지만 저는 이 안에 들어간 적이..." "목격자가 있습니다. 어제 오후, 서연 님이 온실 쪽으로 걸어가는 걸 봤다고요." '목격자? 누가?'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 목격자가 누굽니까? 직접 대면시켜 주세요." 부회장은 대답 대신 시선을 살짝 돌렸다. 그 침묵이 무엇보다 답답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중요하지 않다니,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줄 눈빛으로 보지 않았다. 다들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몇몇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기까지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동정할 시간에 사실 확인이나 하라고.' 쓰러져 있던 한소라가 눈을 살짝 뜨더니, 가늘게 나를 바라보았다. "서, 서연 님... 저는... 원망하지 않아요..." 힘겹게 내뱉는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더 사나워졌다. 몇몇 여학생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저건 진짜 소름 끼치게 잘한다.' 감탄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었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연기하면서, 눈빛 하나까지 계산해서 나를 찌르고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이 저렇게 또렷하게 대사를 뽑아낼 수 있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는 정말 아니에요."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강도현이 온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쓰러진 한소라를 보고, 다음으로 나를 보았다. 표정에서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딱 하나는 읽혔다. 실망보다 더 짙은, 경멸에 가까운 눈빛. '저 눈빛 뭐야.'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걸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학생회는 임시로 서연이의 모든 권한을 정지시킨다."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목소리에 한 톨의 흔들림도 없었다. "정식 조사가 끝날 때까지, 서연이는 기숙사 밖 출입을 자제해줘." 감금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이게 말이 돼? 증거도 없이, 목격자라는 사람도 정체를 모르는데.' 나는 도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뭐라도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눈빛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시선을 거두고 다른 임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나랑 눈도 안 맞추네.' 항변할 틈도 없이, 학생회 임원들이 나를 둘러쌌다. 마치 죄인을 호송하듯.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럴 줄은 몰랐는데." "평소엔 조신한 척하더니." "하긴, 가문 배경 믿고 그런 짓 할 만도 하지." '조신한 척?' 마른침이 목구멍에 걸렸다. 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이서연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원작 속 그 조신하고 착한 영애? 아니면 그 뒤에 숨겨진 어떤 얼굴? '나는 그 이서연이 아니라고.'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냥 걸어야 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들이 물기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마치 내가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방문 앞에 도착해서야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방문을 잠그고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누가 봐도 짜여진 판이야.' 일기장, 다기 세트, 목격자,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의 중독 사건.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했다. 이 정도로 세밀하게 판을 짜려면, 내 동선을 며칠은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온실 열쇠가 내게 있던 날을 정확히 노려야 했다. '누구지. 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하지만 증거가 없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세상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았다. 이 세계는 처음부터 나를 악역으로 정해놓고 시작한 무대였고,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대본을 충실히 따라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억울해도 소용없어. 여기서는 감정이 통하지 않아.' 방법이 필요했다. 누군가 내 편에서 진실을 증명해줄 방법. 목격자의 거짓 증언을 뒤집고, 다기 세트의 출처를 밝혀낼 수 있는, 확실한 무언가. 그날 밤, 나는 우연히 룸메이트가 흘리듯 던진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윤재현이라는 애가 만든 물건이 있다던데." 낮에 지나가듯 들었던 말이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흘렸는데, 지금 이 순간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반짝였다. '윤재현... 그게 누구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잡히는 게 없었다. 학생회에서도, 수업에서도 마주친 적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오는 무기.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은 이미 캄캄했고, 기숙사는 통금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일. 내일 아침이 되면 바로 그 애를 찾아야겠어.' 이 판을 짠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는 알아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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