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정령님, 제 스승 해주실래요?

3화

흑림 입구에 서서 처음 든 생각은 '여기 진짜 산책로가 아니구나'였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했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조차 흐릿했다. 한낮인데도 저녁 무렵처럼 어두웠다. 들어가기 전에 접수처 남자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거긴 관광지 아니여. 죽으러 가는 거자너.' 그때는 그냥 겁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입구에 서서 보니 그게 팩트 폭행이었다는 걸 알겠다. 숲 냄새부터가 달랐다. 축축하고, 비릿하고,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동네 뒷산이랑 이름만 같은 숲일 뿐,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생물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그 작은 소리조차 크게 울리는 것 같아서, 나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뭔가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매번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제일 무서운 거다.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 차라리 뭐라도 나타나서 정체를 밝혀주면 좋겠는데, 숲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시편 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말은 참 쉽지. 지금 나는 낮에도 놀래고 있는데. 한 시간쯤 걸었을까.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수의 흔적이 늘어났다. 나무에 긁힌 발톱 자국, 짐승 냄새가 진하게 배인 배설물, 그리고 뜯긴 짐승 가죽 조각.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아주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발톱 자국을 손끝으로 슬쩍 만져봤다. 깊이가, 사람 손가락 하나는 그냥 들어갈 만큼 깊었다. 이런 걸 낸 놈이랑 마주치면 나는 그냥 발톱 자국 옆에 새로운 흔적 하나 추가되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뜯긴 가죽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원래 뭔 짐승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누군가에게는 사냥감이었던 게, 지금은 숲의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있었다. [욥기 39:29, 그것이 거기서부터 먹을 것을 살피고 그 눈이 멀리 봄이니라] 먹을 것을 살핀다는 게, 지금 그 시선의 대상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등에 멘 검을 다시 확인했다. 낡았지만 그래도 날은 살아있었다. 날 세운 지 얼마 안 됐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 검 하나 믿고 여기까지 들어온 내가 제정신인가 싶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 시간쯤 더 걸으니 작은 웅덩이가 보였다. 마수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장소인 것 같았다. 웅덩이 주변 흙에는 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다. 크고 작은 것들이 뒤섞여서, 이 근처가 나름 핫플레이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물의 왕국 뷔페식당쯤 되는 셈이었다. 나는 근처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사냥이란 게 원래 기다림의 게임이라는 걸,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늘 이론과 다르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지금은 그냥 다리 저리고 배고픈 때였다. 한 시간을 그렇게 웅크리고 있으니 다리에 감각이 사라졌다. 허벌창 나는 게, 명상이나 참선이 다 이런 식으로 힘든 건가 싶었다. 성직자면서 명상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게 이제 와서 발목을 잡았다. 다리를 살짝 움직여봤다가, 그 작은 움직임에도 나뭇잎이 부스럭거려서 그대로 몸을 굳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숲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사람 진을 빼놓았다. 그때,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촤르르르륵! 덤불 사이로 은빛 털이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저게 은빛늑대구나. 생각보다 훨씬 크다. 덩치는 대형견 정도라던 소문과 달리, 실제로 보니 사람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크기였다. 소문 낸 놈은 대체 어디서 이 정보를 물어온 건지 모르겠다. 과장이 아니라 축소였다. 이런 걸 대형견이라고 부르면, 대형견 키우는 사람들 다 항의할 것 같았다. 놈은 웅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은빛 털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을 반사했다. 예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가, 곧바로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지금 저건 나를 씹어먹을 존재라고, 정신 차려. 아무리 반짝이는 은빛 털을 가졌어도, 저놈 입장에서는 나는 그냥 저녁 메뉴 후보일 뿐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마수한테 첫눈에 반할 뻔한 이 상황이, 생각해보면 참 웃기지도 않았다. 나는 숨을 최대한 죽이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기습이 유일한 승산이었다. 정면으로 붙으면 백 프로 진다는 걸,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알았다. 검을 뽑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자루를 고쳐 쥐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다. 할 수 있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권이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놈은 여전히 물을 마시는 데 집중한 듯 보였다. 됐다, 지금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온몸의 투기를 끌어올려 검에 실었다. 1급 투사의 투기라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게 이렇게 서글픈 위로가 될 줄이야. 쾅! 검이 놈의 목덜미를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놈의 몸이 흐릿하게 흔들리며 사라졌다. 뭐지? 분명 방금까지 저기 있었는데. 내 검은 허공만 갈랐고, 그 반동으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땅에 처박히듯 넘어질 뻔한 걸 겨우 발로 버텼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낮은 그르렁 소리가 들렸다. 으르르르릉...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뒤를 돌아보자, 놈이 어느새 내 뒤편에 서 있었다. 눈이 노랗게 빛났고, 그 안에서 나를 정확히 겨누는 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방금까지 저 앞에서 물을 마시던 놈이, 어떻게 순식간에 내 뒤로 넘어왔는지 이해가 안 됐다. 텔레포트하는 늑대라니, 이건 규칙 위반 아닌가 싶었다. 누구한테 항의를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아니, 못 낚아. 지금 낚인 게 오히려 나잖아. 낚싯대도 없이 이 숲에 들어온 것부터가 실수였다. 놈이 순식간에 도약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세워 막으려 했지만, 발톱이 검신을 옆으로 쳐내며 그대로 내 어깨를 스쳤다. 촤악! 어깨에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피가 옷을 붉게 적셨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뭐지, 방금 그 속도는. 1급 마수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접수처 남자가 했던 말이 이제야 몸으로 이해가 됐다. '니 혼자는 절대 못 이겨.' 그때는 그냥 겁주는 소리로만 들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예언서 한 구절처럼 정확하게 들렸다. 성직자가 예언을 이렇게 뒤늦게 이해하면 안 되는 건데. 나는 어깨를 붙잡고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두 걸음. 놈은 천천히, 여유롭게 나를 따라오며 거리를 좁혔다. 마치 이미 승부가 끝났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 여유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급하게 달려들었으면 오히려 정신이 확 들었을 텐데, 저렇게 느긋하게 걸어오니까 마치 나는 이미 잡힌 먹잇감이고, 저놈은 그냥 마무리 절차를 밟는 느낌이었다. 행정 처리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근데 그 행정 처리의 끝이 내 목숨이라는 게 문제였다. 등이 나무에 닿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숲 전체가 갑자기 나를 가둔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무껍질이 등을 파고드는 느낌마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와중에 감각은 왜 이렇게 예민해지는지. 죽기 직전이라 오감이 다 열리는 건가, 별 상관도 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놈의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그 노란 눈이 나를 정확히 응시했다. 마치 '넌 여기서 끝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 침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 저놈한테는 그냥 맛있는 간식거리로 보이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이 죽음 직전이면 별 시답잖은 생각까지 다 하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검을 다시 쥐었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한 약속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빠를 찾아야 혀.' 이 자리에서 죽으면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된다. 말도 안 되는 확률이라도,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끊기면 안 됐다. 어머니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그 다음엔 접수처 남자의 무심한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저 남자는 또 무심하게 '거 봐, 내가 뭐랬어' 하는 표정으로 서류 정리나 하겠지. 그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오기가 솟았다. 적어도 저 인간 앞에서 예상대로 죽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놈이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며 근육을 잔뜩 부풀렸다. 나는 온몸에 남은 투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이번 한 번, 이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믿음이 아니라 반사신경이었지만, 뭐라도 붙잡을 게 있으면 붙잡아야 했다. 믿음이든 반사신경이든, 지금은 다 끌어모아야 할 때였다. 순간, 놈이 땅을 박찼다. 은빛 그림자가 나를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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