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제가 전쟁광에게 시집갑니다

4화

쌍인제국의 권력 구도는 황제 한 사람의 검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이 나라의 역사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황실의 위엄이란 늘 군부의 실력자들과의 암묵적인 균형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것이었다. 유헌—전 황제의 형이자 유겸의 삼촌—은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여전히 군부의 절반을 실질적으로 움켜쥐고 있었는데, 젊은 시절 서방 국경에서 세 번의 전역을 승리로 이끈 그의 이름은 지금도 병사들 사이에서 조카인 황제의 이름보다 먼저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조카의 즉위를 순순히 인정한 것은 유겸이 전장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힘 때문이었지 결코 애정 때문이 아니었다. 짙은 갈색 머리와 비취색 눈을 가진 이 남자는 조카의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 회의의 목적은 축하가 아니라 견제였다. 그의 손끝은 지도 위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고, 그것이 이미 이 자리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탐라국이라니." 유헌이 지도를 손끝으로 짚으며 중얼거렸다. 지도 위의 작은 점 하나가 그의 손끝 아래서 유독 초라해 보였다. "바다 건너 작은 섬나라 하나가 우리 황제의 아내를 낼 만한 가치가 있는가." 회의실에 모인 장군들 몇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물음에 답한 이는 목씨 가문의 목하람이었다. 은빛 머리와 물빛 눈을 가진 그는 황후 호위를 맡을 예정이라는 이유로 이 회의에 불려 나와 있었는데, 본래 그의 자리는 이런 정치적 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짧게 답했다. "가치는 없어도, 상징은 있습니다. 병약한 공주를 구해내는 정복자의 이야기는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에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유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목하람의 말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채 담담하게 흘러나왔는데, 그것이 오히려 회의실 안의 몇몇 이들에게는 더 불편하게 들렸다. 사람의 목숨과 나라의 명운을 두고 그는 마치 병기 하나의 효용을 평가하듯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징이라." 다른 장군 하나가 끼어들며 물었다. "그럼 그 상징이 다하고 나면 어찌 될까요?" 목하람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잠시 창밖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늦가을의 마른 바람이 회의실의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쌍인제국의 대신들 사이에서는 이 혼담이 3개월이라는 시한과 맞물려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유겸은 이번 전역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서방 국경의 전쟁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는데, 그 사이 잠깐의 평화—혼인이든 무엇이든—를 명분 삼아 후계와 내치를 정리해 두려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3개월 동안 자신의 파벌을 넓히려 했고, 다른 이들은 그 사이 황제의 신임을 얻어 다음 전역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각자의 셈이 다른 만큼 회의실 안의 분위기도 겉으로는 하나로 보였지만 실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었다. 선재하 역시 그 3개월을 노리고 이 혼담을 서둘렀다는 사실을, 회의실의 몇몇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지나치게 빠르게, 그리고 지나치게 매끄럽게 이 결혼을 성사시켰다는 것 자체가 의심의 씨앗이 된 셈이었다. "보좌관이 지나치게 나섰다는 말이 돌더군." 유헌이 낮게 말하며 선재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오랜 세월 정치판에서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자 선재하는 특유의 과장된 예의를 갖춰 답했다. "삼촌 전하의 염려는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폐하의 앞날을 생각하는 저의 마음을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 속에는 어떤 굴복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나치게 공손한 그 말투에 유헌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는데, 그것이 선재하를 겪어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위화감이었다. 그의 예의는 늘 진심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마치 예의라는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갑옷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아직 아무도 시험해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유헌이 재차 말을 이었다. "지나친 충성은 의심을 부르는 법이지." 그러자 선재하는 짧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대답이 지나치게 즉각적이었기에, 오히려 회의실 안의 몇몇은 그것이 진짜 명심인지 그저 형식적인 답변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유헌은 더 이상 그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선재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한편 탐라국에서도 이서연은 다은과 함께 자신이 곧 마주할 세계의 크기를 짐작하고 있었다. 좁은 방 안에는 이미 짐이 꾸려지고 있었는데, 몇 개 되지 않는 짐 사이로 이서연의 눈빛만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제국은 3개월마다 전쟁으로 돌아간다더군요." 다은이 알아온 소식을 전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스며 있었지만, 이서연은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럼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시간도 그만큼 생긴다는 뜻이지." 그 말에 다은은 짐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이서연을 바라보았다. "공주님은 늘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시네요." 다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나라는 우리 탐라국 수십 배는 될 텐데, 그 안에서 공주님 혼자 무얼 어쩌시겠다는 건가요?" 이서연은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했는데,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이었다. "혼자가 아니잖아. 네가 있으니까." 그 말에 다은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다시 짐을 정리하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서연이 이렇게까지 담담하게 말하는 것은, 병약한 몸으로 평생을 좁은 궁 안에 갇혀 지낸 그녀에게 이 결혼이 곧 처음으로 얻는 자유와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서연은 자신이 곧 발을 디딜 그 거대한 전쟁 국가가 오히려 자신에게는 무대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병약한 공주를 구해내는 정복자의 이야기라니. 다은이 전해준 그 말을 곱씹으며 이서연은 속으로 실소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든, 자신이 그 포장 안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무대의 주인공이 자신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만은, 아직 그녀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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