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겨울로 접어드는 탐라국의 항구는 원래 조용한 곳이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손질하며 겨울 바람이 매워질 것을 걱정했고, 아이들은 아직 마르지 않은 조개껍질을 주우러 다녔으며, 왕궁의 관리들은 새해 제사 준비로 분주했다. 누구도 서쪽 바다 끝에서 무언가가 오고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항구를 지키는 늙은 등대지기조차, 그해 겨울은 다른 해와 다를 것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서연의 수락장이 국경을 넘은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그 조용한 항구에 검은 돛을 두른 배 세 척이 나타났다. 쌍인제국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순간, 항구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내려놓은 채 배를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어머니의 치맛자락 뒤로 숨었다.
사절단은 예상보다 크고, 예상보다 무장이 짙었다. 갑옷을 두른 병사들이 배에서 내려 정렬하는 모습을 본 왕궁 관리들은 이것이 혼담을 위한 사절인지 침략의 전초인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의 대열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항구를 채웠고, 그 발걸음마다 창끝이 겨울 햇빛을 받아 번쩍였기 때문이다. 사절단의 대표는 정중하게 예를 갖추면서도 그 정중함 속에 은근한 위압을 감추지 않았다. "쌍인제국 황제 유겸 폐하의 명을 받아, 탐라국 공주님의 수락장에 답하고자 왔습니다." 대표가 낭독한 문장은 격식으로 가득했으나, 그 격식 뒤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 뚜렷이 배어 있었다. 낭독이 끝나자 병사들은 일제히 창을 바닥에 찍었는데, 그 소리가 항구의 정적을 갈랐다.
왕궁은 발칵 뒤집혔다. 국왕과 왕비는 물론이거니와, 오래도록 탑 속 공주를 잊고 지내던 대신들까지 앞다투어 회의실로 모여들었는데, 누군가는 관복을 미처 다 여미지도 못한 채 달려왔고, 누군가는 세수도 하지 못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같은 물음이 떠 있었다. 병약하다 알려진 공주가, 세상 물정 모른다 여겨졌던 그 아이가, 대체 어떻게 스스로 이 혼인을 자청했는가. "공주가 미쳤거나, 누군가 뒤에서 부추긴 게 분명합니다." 한 대신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자, 다른 대신이 맞받았다. "혹은 죽음을 각오한 도박이겠지요. 전쟁광의 아내가 되어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대신은 아무 말 없이 손톱을 물어뜯었고, 국왕은 그저 이마를 짚은 채 말을 아꼈다. 회의실에는 억측이 소문처럼 쌓여갔고, 그 소문은 곧 왕궁 밖 저잣거리까지 흘러나갔다.
"공주님이 결국 정신을 놓으신 게야." "아니, 오히려 그 눈 때문에 저주받은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신 거라던데." "쌍인제국 황제가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인다더구먼, 그런 자에게 시집을 가겠다니."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서연을 낙인찍었는데, 그 낙인 속에서 진짜 이서연의 의도—영웅이 공주를 구해낸다는 동화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려는 계획—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잣거리의 상인들은 물건을 팔면서도 틈틈이 그 소문을 곁들였고, 우물가에 모인 여인들은 두레박을 내려놓은 채 서로의 귓가에 억측을 속삭였다. 이서연은 그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가엾거나 미친 존재로 여기는 동안, 자신은 조용히 다음 수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탑 안에서 이서연은 다은에게 소식을 전해 들으며 옅게 웃었다. 창밖으로 항구 쪽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 같은 깃발들이 보였고, 그 아래로 정렬한 병사들의 대열이 개미떼처럼 늘어서 있었다. "벌써 미쳤다는 소리가 도는구나." "공주님, 저는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은이 초조하게 말하며 두 손을 맞잡았는데, 손끝이 창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몇 해째 이서연의 곁을 지킨 시녀로, 공주의 침착함이 언제나 진짜 안도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서연은 창밖으로 정렬한 병사들의 대열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미쳤다고 해두면, 아무도 진짜 이유를 캐묻지 않을 테니 오히려 편하지." 그 말에는 냉소도 두려움도 아닌, 이미 다음 단계를 계산해 둔 자의 침착함이 배어 있었다. "저잣거리 소문이 궁 안까지 들어오는 데 며칠이나 걸릴까." 다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었고, 이서연은 손끝으로 창틀을 두드리며 셈을 하듯 중얼거렸다. 사흘, 어쩌면 나흘.
그러나 사절단의 정중한 인사 뒤에는 이서연조차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있었다. 대표가 낭독을 마친 뒤, 그 곁에 서 있던 옅은 금빛 머리의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왕궁 대신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나이는 서른 안팎으로 보였는데, 병사들의 딱딱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감돌았고, 그 여유는 오히려 자리에 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폐하의 보좌관, 선재하라 합니다." 그가 허리를 굽히는 동작조차 지나치게 매끄러워, 누군가는 그것이 예의라기보다 연출처럼 느껴진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사절단 안쪽에서 낮은 헛기침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이 혼담이 애초에 누구의 손으로 시작되었는지를 암시하는 첫 신호였다.
대신들 중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보좌관께서 굳이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재하는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탐라국 공주님의 결단이 어찌나 대단하셨는지, 폐하께서도 직접 그 얼굴을 뵈어야겠다 하셨습니다. 하여 소인이 미리 걸음을 하였을 뿐입니다." 지나치게 정중한 말투였고, 지나치게 매끄러운 웃음이었다. 회의실에 앉은 대신들은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서로 눈치만 살폈고, 국왕은 그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다음 말을 고르고 있었다. 항구의 겨울 바람은 여전히 매웠고, 검은 돛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탑 위에서 이서연은, 그 옅은 금빛 머리의 이름을 곱씹으며 처음으로 계산에 없던 물음 하나를 떠올렸다. 선재하라는 이름을, 자신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