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길촌은 대길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산이 저주받았다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십여 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을 눈에 담는 것조차 꺼렸다.
해가 지면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늙은이들은 저녁상을 물리기도 전에 문을 걸어 잠갔고, 개들조차 산 쪽을 향해 짖는 법이 없었다.
십 년 전, 산에서 내려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이후로 마을에는 하나의 규칙이 생겼다.
산을 보지 마라.
산을 말하지 마라.
그리고, 강우를 가까이하지 마라.
강우는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채로 자랐다.
갓난아기 때 마을 어귀 돌무더기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 말고는, 그의 생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돌무더기 앞에 아이를 두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어느 핏줄인지, 심지어 이름조차도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강 씨네 우물가에서 주웠으니 강우다."
그렇게 대충 지어진 이름이었다.
"저놈 또 나왔네."
"쉿, 눈길도 주지 마."
우물가를 지날 때마다 여인들의 수군거림이 뒤통수에 따라붙었다.
"애 낳고 죽은 년이 저주를 받아서 저런 게 태어났다지."
"쯔쯔, 눈도 없는 게 뭘 보겠다고 저리 나다니는지."
강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척, 아니, 사실은 다 듣고서도 못 들은 척 지나쳤다.
귀는 밝았다. 지나칠 정도로 밝았다.
우물 속에 던져진 두레박이 물에 닿는 소리, 저 멀리서 아이가 넘어져 우는 소리, 바람이 지붕 위 기왓장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까지, 강우의 귀는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신 눈은 아니었다.
강우는 태어난 순간부터 열여섯 해가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을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빛이 없는 어둠. 그것이 그가 아는 유일한 시야였다.
낮과 밤의 구분도 그에게는 온도와 소리로만 존재했다.
해가 뜨면 공기가 데워지고 새소리가 늘었으며, 해가 지면 서늘한 바람이 불고 벌레 우는 소리가 대신했다.
그것이 강우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녹색 불꽃.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했다.
강우가 그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마을 노인들은 혀를 찼다.
"눈도 못 보는 애가 뭘 본다는 거야."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그때가 강우의 나이 여덟, 아홉쯤이었다. 처음 그 불꽃을 본 밤, 강우는 흥분에 겨워 마을 어귀까지 뛰어나가 소리쳤다.
"저기, 저기 초록빛이 보여요! 산 쪽에서 흔들려요!"
돌아온 것은 침묵과 뒤이은 손찌검이었다.
그날 이후로 강우는 그 이야기를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강우에게는 분명히 보였다.
어둠 속에서, 아득히 먼 곳에서, 조그맣게 흔들리는 초록빛 불씨.
그것은 늘 산 쪽에서 나타났고, 밤이 깊을수록 선명해졌다.
때로는 며칠씩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밤에는 이상하게 크고 선명하게 타올랐다.
강우는 그 규칙성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불꽃이 나타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게 당겨오는 감각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오늘 밤도 그랬다.
강우는 좁은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방 안 공기는 눅눅했다. 벽에 스민 습기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마당 건너, 안채에서는 낮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장산의 소리였다.
십 년째 이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밤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렸다. 어떤 밤은 낮고 규칙적이었고, 어떤 밤은 거칠고 끊어질 듯 이어졌다. 강우는 그 숨소리만으로 주장산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유독 거칠었다.
"오빠."
작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다.
주장산의 딸, 연이였다. 이제 열 살이었다.
"왜 안 자?"
강우가 물었다.
"오빠도 안 자잖아."
연이가 콕 집어 대답했다.
강우는 픽 웃었다.
웃음이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이 아이 앞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마을에서 강우를 저놈이라 부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연이는 태어날 때부터 강우를 오빠라고 불렀다. 어른들이 뭐라 해도, 우물가 여인들이 눈치를 줘도, 그 부름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연이야."
강우가 다시 불렀다.
"들어가서 자. 내일 아버님 약 달여야 하잖아."
"오빠는?"
"난 좀 더 있다가."
연이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문틈 사이로 손을 뻗어 강우의 손을 살짝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오빠, 요즘 자꾸 밖에 나가더라. 나 알아."
강우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아무 데도 안 가."
"거짓말."
연이는 그렇게만 말하고, 결국 조그맣게 대답했다.
"응. 알겠어. 근데 조심해."
발소리가 멀어졌다.
강우는 다시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러나 정확히 그 방향으로.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은 유독 크게, 유독 오래.
마치 부르는 것 같았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끝이 벽을 짚었다. 벽을 따라 문까지, 문에서 마당까지, 익숙한 걸음으로 걸었다.
십육 년간 어둠 속에서 살아온 몸이었다. 발끝의 감각과 소리만으로도 이 집 구석구석을 그릴 수 있었다.
마당의 흙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 우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물비린내, 담벼락에 자란 넝쿨의 서걱거림까지도.
안채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숨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얕은, 병든 숨소리.
주장산이었다.
강우는 잠시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을 뻗으면 문고리에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강우는 손을 뻗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강우는 낮게 중얼거렸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주장산은 십 년째 반신불수로, 말조차 온전히 하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산속의 함정. 자신을 감싸 안던 팔. 그리고 뒤이은 비명.
여섯 살 때였다. 강우는 그날의 소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진동, 그리고 자신을 낚아채듯 끌어안은 팔의 힘.
그 뒤로 들린 것은 뼈가 부러지는 듣기 싫은 소리와, 주장산의 짧은 비명이었다.
강우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자신을 구하려던 사람이, 그 대가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강우는 그 기억을 밀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마을 밖으로.
대길산의 초입까지는 걸어서 반나절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강우는 정확히 방향을 찾아 걸었다.
귀로는 바람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고, 발끝으로는 흙과 돌의 경사를 읽었다.
길가에 자란 풀의 촉감, 바위의 위치, 심지어 흐르는 계곡물의 방향까지도 강우에게는 지도와 같았다.
걷는 동안 강우의 머릿속에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맴돌았다.
"눈도 없는 놈이 산신을 노하게 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불행에는 원인이 필요했고, 강우는 딱 좋은 대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저주받았다고 했다.
십 년 전부터, 산속에서 이상한 짐승들이 나타나 마을 근처까지 내려왔고, 그 후로 몇몇 사람이 사라졌다.
그 시작이 바로 주장산이 반신불수가 된 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낙인찍힌 것이 강우였다.
처음에는 그저 수군거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군거림은 확신이 되었고, 확신은 다시 규칙이 되었다.
강우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돌을 던졌다. 어른들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산신이 노한 아이"라는 말은, 강우가 겪어야 할 모든 냉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적 같은 것이었다.
강우는 그 낙인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까.
대신 다른 것을 믿었다.
저 불꽃이 자신을 어디론가 이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강우는 그 불꽃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전체가 자신을 밀어내는 동안, 오직 그 불꽃만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산 입구에 다다르자, 공기가 달라졌다.
서늘하고 무거운, 짓누르는 듯한 기운이었다.
강우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숲 안쪽에서는 평소와 다른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벌레 소리도, 짐승의 움직임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산 전체가 숨을 죽이고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는 잠시 멈춰 섰다.
불꽃은 산 깊은 곳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강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두근거렸다.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발을 내디뎠다.
등 뒤로, 마을의 불빛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앞으로는 오직 어둠과, 그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초록빛 불씨뿐이었다.
숲의 나뭇가지들이 옷깃을 스쳤다. 발밑의 흙은 점점 부드러워졌고, 공기 속에는 낯선 냄새가 섞여 들었다.
비릿하면서도 달큰한, 강우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그 냄새가 짙어질수록, 불꽃은 더 가까워졌다.
강우는 알지 못했다.
그 불꽃의 근원이, 십육 년간 자신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이 산을 헤매고 있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산속에서, 무언가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발끝에 닿는 흙의 감촉이 낯설어졌다.
평소라면 느껴지지 않을 미세한 진동이, 땅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강우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불꽃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