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궐 안에서 십 년을 버틴 침녀라면 다들 하나쯤 이상한 감각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 있다.
바늘로 살을 뜨듯 사람 마음을 미리 읽는다는 둥, 문 앞에 서기만 해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는 둥.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눈치가 빨라진 거라고 생각했다.
궐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등짝에 매가 떨어지고, 표정 한 번 잘못 지으면 뒷방으로 쫓겨나는 곳.
그런 데서 십 년을 살아남았으면 당연히 감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신기한 게 아니라 생존이다.
그런데 그날, 왕태자비의 산실 문 앞에 서 있던 순간만큼은 조금 달랐다.
나는 그날 산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이불과 배내옷을 나르는 잔심부름 때문에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발이 딱 멈췄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산모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숨을 참았다가 몰아쉬는 게 아니라, 아예 숨을 놓아버리는 것 같은 리듬이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저거 위험한 건데.'
나는 이불을 안은 채로 그 자리에 서서 문틈에 귀를 붙였다.
숨소리 사이사이로 낮은 신음이 들렸고, 그 신음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에서 대령하고 있던 의녀를 향해 다급히 손짓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뭔데."
"안색이 이상합니다. 지금 들어가 보셔야 해요."
의녀는 내 말을 대충 흘려들었다.
땀 닦을 수건이나 챙기라는 손짓을 하고는 다시 등을 돌렸다.
"침녀가 뭘 안다고."
그러게, 침녀가 뭘 알겠나.
그냥 십 년 동안 궐 담벼락 사이를 오가며 밥벌이나 하던 여자가 뭘 알겠나.
바늘로 옷을 꿰매는 손이 사람 목숨을 어찌 알겠나.
나는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어차피 여기서 더 우겼다가는 괜히 트집 잡혀서 볼기짝이나 맞을 판이었다.
하지만 딱 반 시간 뒤, 산실 안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뒤엉켰다.
"비마마! 비마마!"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담을 넘어 복도까지 울렸다.
왕태자비가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가 들렸고, 의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까 나를 무시했던 그 의녀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뛰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물러나 있으면서도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니까 아까 말했잖아.'
'침녀가 뭘 아냐고 했었지? 지금 그 침녀 말 들었으면 저렇게 뛰어다닐 필요는 없었을 텐데.'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짬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사람 목숨보다 내 입방정이 더 크게 문제될 게 뻔했다.
그저 복도 구석에 서서 다른 시녀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는 흉내나 냈다.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왕태자비는 다시 정신을 차렸고, 몇 시간 뒤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대선국 왕실이 그토록 기다리던 첫 아들, 훗날 제1왕자 이강이 되는 아이였다.
나는 그 순간 산실 밖 복도에 서서 갓 태어난 왕손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가 크고 우렁찼다.
쩌렁쩌렁하게 온 산실 밖까지 뚫고 나오는 소리였다.
'저 정도면 건강한 거겠지.'
소소한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훨씬 실용적인 생각도 들었다.
'저 아이 유모 자리, 누가 되려나.'
한밤중에 궐 안이 온통 등불로 밝아졌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왕손 탄생을 축하했고, 나도 형식적으로 웃으며 손을 모았다.
그런데 속으로는 이미 다른 계산이 돌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유모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궐에서 삼 년만 있어도 안다.
왕손의 유모가 된다는 건 평생 신분이 바뀌는 일이었다.
침녀에서 상궁으로, 상궁에서 다시 그 이상으로.
운 좋으면 나중에 종친가에 시집이라도 갈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노렸다.
노렸다는 말이 좀 천박하게 들리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접어가며 셈을 했다.
나는 젖도 잘 나오는 편이었고, 아이 다뤄본 경험도 있었다.
게다가 지난 몇 달 동안 최상궁 눈에 들려고 온갖 잔심부름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이번엔 진짜 될 수도 있어.'
그런 얕은 기대가 잠도 못 자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처소 앞 마당에서 다른 시녀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번 유모는 누가 될까?"
"글쓰씨는 몸이 약해서 안 될 거고."
"그럼 누구?"
나는 그 틈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빗자루질만 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귀는 그 대화 쪽으로 바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달랐다.
최상궁은 유모 후보로 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아영이라는 여자를 불렀다.
아영은 나보다 어렸고, 경력도 짧았다.
다만 배경이 좋았다.
외척 가문의 먼 친척뻘 되는 집안 출신이었다.
'아, 그거였구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궐이라는 곳이 실력보다 배경으로 굴러가는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발표가 나던 날, 아영은 다른 침녀들의 축하를 받으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축하드려요, 언니."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아영은 손을 내저으며 겸손을 떨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똑같이 입꼬리를 올리고 축하를 건넸다.
"정말 잘 되셨네요."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네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네 팔촌이 누구라서 그런 거잖아.'
최상궁은 왕비의 전속 침녀이자 지밀상궁으로, 왕실 안팎의 모든 인사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마흔에 가까웠고, 표정에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얼굴로 유명했다.
그 얼굴만 보면 아무도 그 속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런 최상궁이 아영을 낙점했을 때, 나는 그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냥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딱 한 번 최상궁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최상궁은 별다른 표정 없이 시선을 거뒀고, 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저 표정은 뭐지.'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뒷목이 살짝 서늘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날 밤 처소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는 이미 코를 골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이런 게 어디 한 번이었나.'
'다음 기회가 또 있을 거야.'
하지만 말이 그렇지,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궐의 등불이 하나씩 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소리가 났을 리는 없다.
그냥 캄캄해지는 창밖을 보고 있으니 그런 착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밤 내내 뒤통수가 서늘했다.
마치 누군가 내 등 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몇 번이나 몸을 뒤집어 봤지만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왕손이 태어난 궐이라면 당연히 축제 분위기여야 했다.
낮에는 그렇게 등불이 밝고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넘쳤는데.
그런데 나는 그날, 뭔가 잘못 짜인 옷을 억지로 껴입은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옷깃이 자꾸 목을 조르는 듯한, 딱 그런 느낌.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유모 자리를 놓친 서운함이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다.
다만 그 감각이, 훗날 벌어질 일들의 첫 조짐이라는 것만은, 나중에서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조짐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