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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문이 열리자마자 방 안으로 밀려든 것은 근위병 세 명과 궁내부 관리 한 명, 그리고 낯빛이 사색이 된 시녀장이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이미 마법으로 복제된 통신구 화면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새벽의 냉기가 아직 방바닥에 남아 있던 시각이었고, 창밖으로는 왕궁 정원의 나무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리며 마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서아는 순간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으나, 그런 행동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관리가 내민 종이 한 장을 보는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 위에는 그녀가 방금 올린 사진과 문장이 고스란히 확대되어 인쇄되어 있었다. 손끝이 종이 표면을 스치는 순간 잉크 냄새가 코끝에 스몄는데,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두려움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성녀 한서아." 관리가 딱딱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 계정, '@이헌만보임'이 본인 소유임을 인정하십니까." 그 물음에 한서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손끝이 떨렸으나 그녀는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목소리는 침착했으나 심장은 이미 목구멍까지 올라와 있었다. 대답 대신 관리는 다른 종이 한 장을 더 내밀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몇 달간 올린 게시물들이 전부 시간순으로 정리된 목록이었다. 왕세자의 뒷모습, 걸음걸이, 심지어 어제 찍은 옆모습 사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인쇄되어 있었다. 종이를 넘기는 관리의 손짓 하나에도 한서아는 숨을 죽였는데, 그 목록의 마지막 장에는 사흘 전 그녀가 새벽에 남긴 짧은 문장까지 그대로 박혀 있었다. 오늘도 뒷모습만 봤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에는 창이 두 개뿐이었고, 그중 하나는 항상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성녀가 된 이후로 그 창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는데, 시녀장이 언젠가 그 앞에 화분을 놓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도 이제와 돌이켜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그 커튼 틈으로 이 방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도촬.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한서아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누군가 그녀의 일기장까지 손을 댔다는 사실은 뒤이어 시녀장의 입에서 나온 말로 확인되었다. "성녀님 방에서 나온 일기장 사본이 이미 대신들 사이에 돌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왕궁 전체 통신망에 이 계정과 일기 내용이 함께 퍼졌습니다." 시녀장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녀의 손에 들린 손수건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한서아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밤마다 손끝으로 눌러온 그 은밀한 해방구가, 하루아침에 왕궁 전체가 들여다보는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귓속이 먹먹해졌는데, 그 와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냉정한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누가, 왜,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를 더 깊은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강채화였던 시절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아니, 그때는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잃을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사생활 침해가 아닙니다." 관리가 서류를 다시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성녀가 자신의 신성한 지위를 이용해 왕세자 전하를 사적으로 감시하고, 그 내용을 유포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성녀법 제십이조, 신성모독죄에 해당합니다." 관리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나, 그 안에 담긴 냉소는 명백했다. 신성모독. 그 두 글자가 한서아의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성녀가 세자를 훔쳐본 것이 죄가 되고, 그 은밀한 마음을 들킨 것이 죄가 된다면, 애초에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죄였는지도 몰랐다. 방문 앞에는 어느새 소식을 들은 시녀와 궁녀들이 모여들어 수군거리고 있었다. "성녀님이 세자님을 그렇게 좋아하셨대." "몰래 사진까지 찍었다며." "성녀답지 않게." "그렇게 냉정해 보이던 분이." 그 말들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올 때마다 한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하게 쌓아온 몇 년의 이미지가 단 하룻밤에 무너지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녀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자신이 몰래 훔쳐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가 이 사진들을 봤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 순간, 한서아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박여진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뛰어왔을 때는 이미 근위병들이 한서아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녀의 옷매는 흐트러져 있었고, 숨은 거칠었다. "성녀님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박여진이 앞을 막아서며 외쳤으나, 관리는 냉담하게 손을 저었다. "증거가 명백합니다. 자격 심사를 위해 성녀는 궁정 회의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박여진은 이를 악물었고, 한서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오히려 침착해지려 애썼다. 지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그녀는 강채화였던 시절부터 몸으로 익힌 대로 알고 있었다. 그때는 살기 위해 배운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써야 했다. 궁정 회의실로 향하는 회랑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벽에 걸린 가스등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그림자도 함께 일그러졌는데, 그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 한서아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근위병들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고, 그 소리에 맞춰 그녀의 심장도 뛰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안에는 이미 대신들과 궁내부 최고 책임자가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국왕이었다. 국왕의 눈빛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향해 품고 있던 어떤 의심을 다시 확인하는 듯 차가웠다.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는데, 그 시선들 속에는 동정도, 놀라움도 없이 오직 흥미와 경멸만이 뒤섞여 있었다. "성녀 한서아, 그대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다." 국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면 그대의 자격을 유지하겠으나, 그러지 못한다면 성녀직을 박탈하고 궁에서 추방할 것이다." 그 말이 회의실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고, 대신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하루. 겨우 하루 안에 누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는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며, 낯익은 얼굴 하나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들어섰다. 공작가의 문장을 어깨에 새긴 그 여자는, 한서아를 보자마자 입가에 얇은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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