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주일 후, 저택 대연회장에는 은촛대 서른두 개가 켜져 있었다.
영지 유력 귀족들을 초청한 봄맞이 연회였다.
매년 열리던 행사였지만, 지유가 돌아온 뒤 처음 열리는 자리였다.
연회 준비는 사흘 전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주방에 내려가 음식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은쟁반에 올릴 과일 종류부터 와인 병 수까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집사 박씨는 초 값이 예년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걱정스레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장부를 펼쳐 은화 몇 냥을 더 빼야 할지 계산했다.
'초 값만 백이십 냥이라니.'
'다른 데서 줄여야 해.'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연회 당일이 되었다.
나는 짙은 남색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 구석에 서 있었다.
드레스는 삼 년 전 것을 고쳐 입은 것이었다.
허리 부분 레이스는 색이 바래 있었고, 소매 끝은 다른 천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거울 앞에서 옷을 입을 때, 하녀가 조심스레 물었었다.
"아가씨, 새 드레스를 하나 맞추셔도 될 것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수 정리가 먼저야."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새 드레스를 맞춰달라 말해도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반면 지유는 새로 맞춘 은백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옷감은 수도에서 들여온 것이라 했고, 가슴께에는 작은 진주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목에는 백작가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 목걸이는 원래 대대로 백작 영주의 여식에게만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나는 열두 살 생일에 그 목걸이를 처음 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언젠가 내 것이 될 거라고 말했었다.
'저건 내가 받아야 할 목걸이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유의 손을 잡고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제 조카입니다. 수도에서 훌륭하게 자라 돌아왔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삼 년 동안 나에게는 한 번도 그런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귀족들이 지유 주위로 모여들었다.
"강지유 양, 수도에서 인맥이 넓다고 들었는데요."
한 남작이 물었다.
"네, 궁정 몇 분과도 친분이 있어요."
지유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은 낡은 마차 안에서 보았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계산된 웃음이었다.
주변 부인들 몇이 부채로 입을 가리며 소곤거렸다.
"저 목걸이, 백작님이 특별히 맞춰주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럴 만도 하죠, 조카가 저렇게 예쁘고 똑똑하니."
나는 그 자리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와인잔을 든 손이 조금 떨렸다.
"소하 아가씨는 저기 계시네요."
한 부인이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인사가 아니라 화제 전환용이었다.
곧 대화는 다시 지유 쪽으로 옮겨갔다.
나는 벽 쪽으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촛불 그림자가 내 발끝에서 흔들렸다.
로벨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가씨, 오늘 영지 재정 보고를 백작님께 올리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있으십니까."
로벨이 물었다.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살피는 눈치였다.
"지금 하죠."
내가 대답했다.
사실 오늘 밤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요즘 서재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세수 보고서를 들이밀 틈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이번 봄 수확이 예년보다 십오 퍼센트 줄었다는 소식을 벌써 열흘 전부터 전하려 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지유와 손님들 대화가 잦아드는 틈을 노렸다.
"아버지, 올해 세수 보고서를 올리려고 합니다."
내가 말했다.
서류를 든 손에 땀이 배어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힐끗 보았다.
"나중에 해라. 지금은 연회 중이잖니."
아버지가 짧게 대답했다.
주변 손님들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쏠렸다.
그 시선 안에는 동정과 의문이 섞여 있었다.
몇몇은 내 낡은 드레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다시 품에 안았다.
지유가 그 순간 끼어들었다.
"큰아버지, 소하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다들 모르실 거예요."
지유가 말했다.
순간 나는 안도했다.
지유가 나를 대신해 말해줄 거라 생각했다.
가슴 한쪽이 잠깐 따뜻해졌다.
"영지 살림을 혼자 도맡아 했으니 대단하죠."
지유가 이어서 말했다.
손님들이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부인이 나를 향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저는 걱정이 돼요. 너무 혼자서만 하려고 해서, 사람들이 백작님이 방치하신다고 오해할까 봐요."
지유가 웃으며 덧붙였다.
순간 연회장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칭찬처럼 시작된 말이 아버지에 대한 지적으로 끝나 있었다.
방금까지 웃던 부인의 표정도 슬며시 굳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손님들의 시선이 이번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오해라니, 무슨 오해 말이냐."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까 봐 걱정된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소하 편이니까요."
지유가 재빨리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은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린 뒤였다.
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았다.
"너, 손님들 앞에서 나를 이렇게 만들려고 보고서 얘기를 꺼낸 거냐."
아버지가 물었다.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서류 끝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지유는 내 옆에서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마치 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서 나는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만족을 읽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연회장의 촛불이 흔들렸다.
주변 손님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나를 향한 시선이 더 노골적이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지유가 나를 돕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서 서늘한 감각이 퍼져 나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지유는 그 곁에서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위로도, 사과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다음 수를 준비하는 사람의 눈빛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