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괜찮아요. 방에서 먹을게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로벨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혼자 남은 방은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흔들렸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식탁 쪽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10년 전을 떠올렸다.
지유와 친해진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고, 지유도 아홉 살이었다.
우리는 저택 뒤뜰에서 처음 말을 섞었다.
지유는 늘 혼자였고, 나도 늘 혼자였다.
같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날 밤, 지유의 방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찰싹!
나는 복도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지유의 어머니 쪽 친척, 당시 저택에 잠시 머물던 외숙모가 지유를 때리는 소리였다.
"서출년이 감히 백작님 눈에 들려고 해?"
외숙모가 소리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뒤따랐다.
화병이나 접시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였다.
"으어어엉..."
지유의 울음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다.
나는 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홉 살이었던 나는 힘이 없었다.
몸도 작았고, 어른의 손을 막을 재간도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지유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백작님이 부르셔요!"
나는 거짓말을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문이 열리고 외숙모가 나왔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백작님이 정말 부르셨어?"
외숙모가 물었다.
눈빛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네, 지금 오시래요."
나는 거짓말을 계속했다.
다리가 떨렸지만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외숙모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결국 자리를 떠났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유는 바닥에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었고 옷깃이 반쪽 뜯어져 있었다.
뺨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손가락 모양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지유 옆에 앉았다.
"거짓말한 거야?"
지유가 물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응. 안 그러면 안 멈출 것 같았어."
내가 대답했다.
지유는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눈이 부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그랬다.
그러다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고마워."
지유가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무언가 단단한 것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지유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아홉 살의 나에게 처음 생긴 결심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비밀을 나누기로 했다.
지유는 눈물을 닦으며 나를 데리고 뒷문으로 나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나만 아는 곳이 있어. 창고 뒤편, 낡은 마차 안."
지유가 말했다.
"거기서 뭐 해?"
내가 물었다.
"숨어. 아무도 못 찾는 곳이야.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지유가 말했다.
마차는 오래 방치되어 바퀴 하나가 빠져 있었고, 좌석 가죽은 다 갈라져 있었다.
먼지 냄새가 났지만 그 안은 이상하게 아늑했다.
우리는 그 좁은 마차 안에 나란히 앉아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날부터 그 낡은 마차는 우리 둘만의 장소가 되었다.
낮에는 각자의 일로 바빴지만, 저녁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외숙모의 폭력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있었지만, 나는 매번 방법을 찾아 지유를 도왔다.
어떤 날은 거짓 심부름을 시켜 외숙모를 다른 곳으로 보냈고, 어떤 날은 아버지가 잠시 화실을 나온 틈을 노려 지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게 했다.
한번은 부엌에서 몰래 설탕을 훔쳐 외숙모의 찻잔에 넣고 소란을 피운 적도 있었다.
그날 외숙모는 배탈이 나서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어야 했다.
지유는 그 얘기를 듣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서출인 지유를 대놓고 때리기엔 아버지의 눈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무렵 지유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외숙모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외숙모는 다른 친척집으로 옮겨갔다.
떠나는 날, 지유는 마차 창문 뒤에서 나에게만 살짝 웃어 보였다.
지유는 그제야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식사 시간에 소리 내어 웃는 일도 생겼고, 정원에서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기도 했다.
"네가 없었으면 나 진짜 여기서 못 버텼을 거야."
지유가 낡은 마차 안에서 나에게 말했다.
그때 지유의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손의 온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회상이 끊어졌다.
"아가씨, 식사 가져왔습니다."
하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문을 열었다.
쟁반 위에 놓인 음식은 식탁의 것보다 확연히 초라했다.
식은 국 한 그릇과 나물 반찬 두 가지, 밥 한 공기가 전부였다.
하녀는 미안한 듯 눈을 피했다.
"오늘 강지유 님 환영 만찬이라 주방이 정신이 없어서요."
하녀가 작게 덧붙였다.
말투에 미안함이 배어 있었지만 나를 위해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쟁반을 받아 들었다.
무겁지도 않은 쟁반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방문을 닫고 혼자 식탁 앞에 앉았을 때, 창밖에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버지와 지유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서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즐거운 어조라는 것만 느껴졌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낯설도록 즐거운 소리였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10년 전, 낡은 마차 안에서 나를 끌어안았던 그 손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생각만 했다.
접시 위의 국은 이미 식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한 숟갈도 뜨지 못한 채 오래도록 그대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