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당했더니 살 것 같네요

4화

청현국 왕도로 이송되는 사흘 동안, 세아는 마차 안에서 강태오로부터 이 나라의 사정을 조금씩 전해 들었다. 흔들리는 마차의 창밖으로는 낯선 산세가 지나갔는데, 대유국의 완만한 구릉과는 달리 청현국의 산줄기는 날카롭고 험준해서, 그 풍경만으로도 이 나라 사람들의 방어적인 기질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유국과 청현국은 오랜 세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우호를, 속으로는 견제를 유지해온 두 나라였는데, 그 균형의 축이 되는 것이 바로 성수와 정령을 둘러싼 계약이라 했다. 대유국은 성녀를 통해 은랑 같은 강대한 성수를 다스리는 것으로 국력을 과시했고, 청현국은 그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을 늘 경계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녀와 관련된 자가 국경에서 발견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왕도에서는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겁니다." 강태오가 담담히 설명했다. "특히 지금처럼 북부에서 실종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지요." "실종 사건이라니요." 세아가 묻자 강태오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창밖을 응시했다. "그건 도착해서 천천히 알게 될 겁니다." 그 대답이 오히려 불안을 부추겼다. 세아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보았는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이 이 낯선 나라에서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그 이름이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백강 백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그 사이에 흘러나왔다. 백하린의 아버지인 백강 백작은 대유국에서도 손꼽히는 권세가로, 딸을 성녀로 세우는 대신 그 뒤편의 위험한 임무는 전부 다른 이에게 떠넘겨온 인물이라는 것을 청현국의 정보망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백작가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쪽 정보국에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성녀의 이름으로 얻는 명예는 백작가가 챙기고, 그 뒤의 궂은일은 그림자 속에 숨겨둔 이가 대신했다고요." 강태오가 손가락으로 창틀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소문으로는, 백작가가 대역을 하나 두고 있었다더군요. 얼굴이 성녀와 닮은 아이를 어딘가에서 데려와 온갖 위험한 일을 시켰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죠." 강태오가 무심코 던진 말에 세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대답을 피했다. 그 대역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밝히는 순간, 자신은 또다시 누군가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물건으로 전락할 것이었다. 명예. 백하린이 얻은 것은 명예였고, 자신이 얻은 것은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한 위험뿐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목구멍을 조여왔다. 강태오는 세아의 침묵을 눈치챈 듯 더는 그 화제를 잇지 않았고, 마차는 그렇게 침묵과 흔들림만을 실은 채 왕도를 향해 나아갔다. 국경에서 세아를 발견한 공으로, 강태오는 왕비 사건을 조사하는 왕도 조사국에 임시 차출되었다. 세아의 호송 역시 그의 새로운 임무가 되었다. 왕도에 도착한 뒤, 세아는 궁정 소속 조사국의 임시 감호소에 배치되었다. 회색 돌벽과 좁은 창, 그리고 바깥으로 잠긴 철문 하나가 그 방의 전부였는데, 대유국의 화려한 신전 별채와는 사뭇 다른 삭막함이 오히려 세아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구석도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성녀의 그림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런 헛된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청현국의 권력 구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이 나라는 왕권보다 조사국과 신전의 힘이 강하게 얽혀 있어, 초자연적 사건은 곧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북부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들 역시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성수나 정령과 관련된 금지된 계약의 흔적으로 의심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심의 화살은, 국경을 넘어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줄곧 세아를 향하고 있었다. "당신이 데려온 저 정령의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조사국의 관리 하나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며 흑연을 가리켰다. 관리의 뒤에는 서기관인 듯한 이가 종이를 든 채 세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마치 재판정의 그것과 닮아 있어 세아는 숨이 가빠 왔다. 흑연은 세아의 어깨 위에서 심드렁하게 눈을 굴리며 하품을 했는데, 그 태평한 모습이 오히려 조사국 관리들의 신경을 긁는 듯했다. "저 짐승이 지금 하품을 한 겁니까." 다른 관리가 언성을 높이자 흑연은 귀찮다는 듯 꼬리로 세아의 목을 한 번 감았다. "쟤 원래 대유국 백강 백작가에서 부리던 정령입니다. 나한테 떠넘긴 건 백하린이고요." 세아가 사실대로 말했으나, 조사국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이 없었다. "떠넘겼다는 표현이 재미있군요. 성녀가 자신의 정령을 아무에게나 떠넘길 리가 있습니까." 관리가 비웃듯 되물었다. "그 말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세아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증명이라는 것은, 애초에 이름조차 가져본 적 없던 그녀에게는 너무 먼 개념이었다. 대유국에서 그녀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백하린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을 것이고, 이곳 청현국에서는 그 그림자조차 의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날 밤, 감호소의 창을 통해 세아는 왕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가스등이 줄지어 켜진 거리가 대유국의 왕궁과는 다른 방식으로 화려했는데, 그 낯선 화려함이 오히려 이 도시가 자신을 어떻게 삼켜버릴지 짐작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창에 서린 입김을 닦아내며 세아는 생각했다. 이곳에서도 결국 나는 누군가의 증언이나 필요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겠지. 그리고 그 불빛 사이로, 다음 날 있을 백하린과의 공식 대면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강태오의 입을 통해 조용히 전해졌다. "공식적으로는 국경 사건에 대한 증언을 듣기 위한 자리라고 합니다만." 강태오가 말을 흐리며 문을 닫았고, 그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감호소의 벽을 울렸다. 세아는 그 말에 담긴 불길함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공식적으로는, 이라는 단서가 붙는 모든 자리는 결국 그 뒤에 숨은 진짜 목적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백하린이 이 왕도까지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가, 단순히 국경에서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일 리 없었다. 창밖의 불빛은 여전히 반짝였지만 세아의 눈에는 그 빛이 어느 순간부터 감시의 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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