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당했더니 살 것 같네요

2화

청현국의 국경 초소는 대유국의 것과 다르게 돌로 쌓은 벽이 낮고 투박했는데, 그 안에 갇힌 이세아는 오히려 그 투박함이 낯설어 자꾸만 벽을 훑어보았다. 돌과 돌 사이의 이음새가 고르지 못해 손끝으로 만지면 거칠거칠한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고, 벽 틈으로는 바깥의 찬 공기가 가늘게 스며들어 왔다. 대유국의 감옥은 화려했다. 성녀의 대역이 갇힐 곳조차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이유로 벽마다 금박을 두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정작 그녀를 가둔 사람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그 방을 세아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벽은 그저 벽이었고, 그 단순함이 세아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겉치레로 사람을 속이려 들지 않았다. 나무 의자 하나와 탁자 하나, 그 위에 놓인 낡은 등잔이 초소 안의 전부였는데, 그 소박함이 세아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혀 주었다. 취조를 맡은 것은 중년의 기사였는데, 이름은 강태오라 했다. 국경을 지키는 자로서 낯선 이방인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한 듯, 그는 심문보다는 사정을 묻는 듯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그의 갑옷은 청현국 특유의 짙은 남색이었고, 어깨에 새겨진 문장은 오래 닳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구속구를 스스로 끊었다는 건, 상당한 마력을 가졌다는 뜻인데." 그가 손끝으로 탁자 위에 놓인 사슬 조각을 두드리며 말하자, 세아는 잠시 숨을 골랐다. 사슬 조각은 여전히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력의 잔재인지 그녀의 손이 떨리는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대유국의 성녀 대역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이용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명예를 되찾겠다는 생각과, 다시는 누구의 손에도 잡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떠돌이 마법사였습니다." 그녀가 짧게 답하자, 강태오는 그 말을 믿는 것도 아니고 의심하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서류에 몇 줄을 적어 내려갔는데, 그 손놀림이 느릿하고 신중했다. "떠돌이 마법사가 국경을 넘는 일은 드물지 않지." 강태오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다만 구속구를 차고 넘어온 떠돌이는 처음 본다." 그의 말에는 가시가 없었으나, 그 안에 담긴 질문은 명확했다. 세아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구속구는 대유국이 성녀 대역에게 씌운 것이었고, 그것을 스스로 끊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다급하게 도망쳐 왔는지를 드러내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 사연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옷깃 사이에서 흑연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박쥐를 닮은 얼굴에 붉은 눈이 반짝이는 그 모습을 본 병사 하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악마다! 저게 방금 옷 속에서 나왔어!" 그 외침에 초소 안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병사들도 창을 겨누며 세아를 둘러쌌고, 강태오의 표정도 순간 굳었다. "저건... 청현국 북부에서 최근 실종된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소문의 형상과 닮았는데." 그가 낮게 중얼거리자, 세아는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입술을 꽉 깨물었고, 목구멍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흑연은 그저 백하린이 귀찮다는 이유로 넘겨준 정령일 뿐이었으나,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 형상 하나로 죄를 뒤집어씌우기에 충분한 근거였다. 흑연은 그런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아의 목덜미에 몸을 기대며 나른하게 눈을 감았는데, 그 무심함이 오히려 세아의 속을 더 타게 만들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세아가 다급히 말했으나, 그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이 오히려 의심을 부추겼다는 걸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병사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누군가는 "죽여야 한다"는 말을 낮게 내뱉기까지 했다. 강태오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이상하게도 완전히 그녀를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그가 손을 들어 병사들을 물러서게 했다. "일단 물러서라. 조사관이 올 때까지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의 말에 병사들이 창끝을 내렸으나,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북부 마을의 실종 사건이 벌써 세 건째다. 당신이 그 시기에 국경을 넘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조사관들은 당신을 의심할 이유를 갖게 되겠지." 강태오가 담담하게 말했는데, 그 말에는 동정과 경고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게다가 그 짐승 같은 것까지 데리고 있으니." 그가 흑연을 흘긋 바라보며 덧붙였다. 명예 회복이라는 말을 세아는 입 밖에 낸 적이 없었으나, 그 순간 그녀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이곳에서마저 죄인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혐의를 벗겨내야 했다. 대유국에서는 성녀의 대역이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었고, 이곳에서는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는 이름으로 갇힐 판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녀에게는 그녀 자신의 이름이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저는 아무도 해친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지만, 그 말은 대유국에서도 수없이 해왔던 말이었고, 그때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일까, 세아는 자문했다. 강태오는 대답 없이 서류를 정리하며 초소 밖으로 나섰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남긴 한마디가 세아의 귀에 오래 남았다. "왕도의 조사관이 도착할 때까지, 당신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문이 닫혔고, 세아는 다시 좁은 벽 안에 홀로 남겨졌다. 흑연이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와 몸을 웅크리며 낮게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위로하려는 듯한 그 소리에 세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눈송이는 처음에는 가늘게 흩날리다가 점점 굵어지며 초소의 낮은 지붕 위로 쌓여 갔다. 그 눈발 사이로 멀리서 화려한 마차 행렬의 불빛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불빛은 마치 눈 속에서 피어난 작은 등불처럼 흔들리며 국경 초소를 향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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